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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 May 10. 2022

나는 소식가입니다

들어가는 글




오랜만의 외출. 사람을 만나고 밥을 먹는다. 신나게 식사하고 있으면, 마주 앉은 사람이 내게 하는 말. 먹고 있는 거 맞지? 자신의 그릇과 이쪽의 그릇을 번갈아 본다. 내 그릇에 담긴 음식은 먹어도 먹어도 줄지를 않느냐는 뜻이다. 그렇다. 나는 소식가. 하지만 먹는 즐거움을 아는 소식가. 소식가에도 종류가 있으니까. 먹는 것을 즐기지 않아 ‘안’ 먹는 소식가와 먹고 싶은데 배가 허락해 주지 않아서 ‘못’ 먹는 소식가. 나는 망설일 것도 없이 후자다. 

증거를 제출한다. 나의 휴대폰 메모장 안엔 ‘냠냠리스트’라는 것이 있다. 내 행동 반경에 걸치는 동네 맛집, 소위 핫플레이스라고 불리는 서울 명소의 맛집이며 디저트 가게, 특정 음식을 잘하기로 소문난 낯선 동네 맛집을 쭉 나열한 목록이다. 쉴 틈 없이 갱신되는 이것은 약속을 잡기 전 꼭 한 번은 살펴보는 나만의 데이터베이스다.


누가 나한테 말해 준 적은 없지만, 나는 스스로 미식가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많이는 못 먹어도 제대로 먹을 수 있도록 맛있는 것만 골라 먹으니까. 나약한 위장을 타고난 자는 한 치의 맛없는 음식도 허락할 수 없다. 한정된 위 용량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 한 끼 한 끼, 간식 하나하나 얼마나 신중하게 결정하는지 남들은 모를 것이다. 그렇게 적은 양을 먹어도 만족스럽게 먹으려는 즐거운 고민을 나는 매일 해 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음식’에 대해 가지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그냥 한 끼 먹는 건데, 매일매일 하는 일인데 이렇게까지 진지할 필요가 있나 싶은 거다. 하지만 역시 그러고 싶다. 해야만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즐거운 일, 오히려 기다려지기까지 하는 일이 바로 먹는 일 아닌가! 아침, 점심, 저녁 맛있는 걸 먹고 입가심으로 달콤한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는 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기분이 축 처질 때도 맛있는 게 있으면 다시 힘을 낼 수 있다. 음식은 나를 끌어올려 준다.


세상엔 맛있는 음식이 너무나 많지만, 그중에서 내게 특별한 음식은 따로 있다. 추억이 있는 음식이다. 가슴 따뜻한 순간 그 음식이 함께였을 수도 있다. 온통 되는 일이 없던 날 먹은 음식일 수도, 처음 먹고 짜릿한 충격을 느낀 음식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모두 추억이 함께한 음식이다. 우리에게 집밥이 최고로 맛있는 건 어릴 때부터 입맛이 길들었기 때문이라는 합리적인 이유도 물론 있지만, 다르게 보면 이렇다. 어린 시절부터 가랑비 옷 젖듯 차근차근 서린 추억이 세상 어느 음식에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을 내는 거라고.


이건 내 삶과 동고동락해 온 수많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다. 웃음도 울음도, 다툼도 화합도, 만남도 헤어짐도, 자랑도 반성도 있다. 기상천외한 모험담은 아닐지라도 똑같은 얘기는 다른 어디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람, ‘나’의 한 겹 한 겹을 아름 따다 모아 둔 기록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추억을 함께 떠올리며 읽어 주시길. 당신과 나는 닮은 듯 달라 당신만의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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