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맛본 ‘진짜 이국적인 빵’은 마들렌이었다. 일곱 살 무렵 우리 이웃집에는 빵을 맛깔나게 굽는 솜씨를 가진 아주머니가 계셨다. 그때 난생처음 ‘마들렌’이라는 구움 과자를 먹었었다. 아는 빵이라고는 단팥빵, 슈크림빵, 소보로빵, 머핀 같은 심상한 빵이 다였던 나에게 이름부터 이채로운 그것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사실 쌀의 민족인 한국인에게 토속적인 빵이 어디 있겠냐마는 모두 알지 않는가. 슈퍼에서도 푸근한 동네 빵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빵들―왕단팥빵과 우유식빵과 카스테라―과 유럽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빵의 차이를.
마들렌은 노릇노릇한 갈색이 감도는 노란색에 조개 모양이 귀여웠고, 한 입 베어 물자 촉촉하고 부드럽게 감겨왔다. 맛 자체는 특별하지는 않았다. 조금 더 달고 식감이 단단하다는 것 말고는 머핀이나 카스텔라 같은 빵과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고급스럽고 생경한 먼 나라의 빵에 나는 푹 빠져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국 동화책을 읽으면서 티타임을 동경하던 그 시절의 나는 다과라는 게 무슨 맛인지 궁금했다. 시판 과자는 당연히 아니고 둥근 양철통에 든 버터 과자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얇은 금테가 둘러진 유럽풍 접시에 놓이기에는 고상함이 부족했다.
그러던 차에 마들렌을 만났고, 난 ‘이거다!’ 하고 확신하게 됐다. 진하게 우려진 홍차에 살짝 적셔 먹으면 오후의 단잠마저 달아나게 할 것 같은 이 기분. 밍밍하고 텁텁한 버터 과자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구석을 확실하게 채워주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분명 획기적인 맛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레몬 향이 더해진 전통적인 레시피였다면 신기하긴 했을 거다. 새콤달콤한 빵이라니. 하지만 그때 먹은 아주머니의 마들렌에선 레몬 향이 나지 않았다. 나는 달기만 한 마들렌이 좋다. 레몬을 비롯한 너무 신 것은 싫어하기도 하고, 내 추억의 마들렌은 새콤하지 않았으니까.
우리 집에서 반응이 좋아선지 아주머니는 마들렌을 자주 나눠 주셨고 때로는 바나나 맛이 진하게 나는 빵과 초코 쿠키도 주셨다. 어릴 때부터 단 것에 환장까지는 아니지만, 준다고 하면 즐겁게 먹는 축이었던 나는 그때가 참 행복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주머니가 왔다 갔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가장 들뜨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마들렌이었다. 내 생애 최초의 외국다운 외국 디저트여서 그랬던 걸까. 누구에게 처음 받아본 수제 간식이어서 그랬던 걸까. 언젠가, 그 댁에 놀러 가 알록달록한 스프링클을 얹은 초코 머핀을 함께 만들었던 기억도 있다. 내가 한 것은 반죽 휘젓기와 틀에 붓기 정도였지만 완성된 머핀을 먹고 이걸 내가 만들었다니! 하고 감탄했던 것 같다. 갓 구워서 따뜻한 머핀은 말도 못 하게 맛있었다.
그때 경험한 홈베이킹이 꽤 인상적이었나 보다. 지금의 나는 빵과 과자를 구워서 가족과 같이 먹고, 때로는 주변인에게 나눠 주는 것이 취미니까. 너무 맛있다고 말해 주거나 팔아도 되겠다고 엄지를 치켜세워주는 것도 고맙지만, 내가 만든 달콤함이 누군가에게 찰나의 행복을 선물해 주었다는 사실이 더 기쁘다. 아주머니께서도 이런 마음으로 마들렌을 나눠 주셨겠지- 생각하니 가슴이 따뜻해진다.
내게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자리 잡은 마들렌은 본고장인 프랑스에서도 향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한몫했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을 보면 주인공이 따뜻한 차에 마들렌을 적셔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과거 어린 시절 추억 속으로 빠져드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프루스트의 마들렌’은 프랑스인들에게 찬란한 과거에 대한 향수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프랑스인 친구는 없지만, 잘 기억해 놨다가 만에 하나 프랑스인(한국말도 능통한)과 만날 기회가 생기면 얘기를 꺼내 보아야겠다. 마들렌 하나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지 않았다면? 조용히 크렘 브륄레 맛집이나 가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