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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 Sep 05. 2022

엄마의 카스테라 경단




생일날 먹던 수수팥떡을 추억하는 박완서의 「생일날의 수수팥떡」은 음식에 서린 지난날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한다. 나에게도 어릴 적 동지 때마다 먹던 추억의 음식이 있다. 동지 하니 동글동글 새알심을 넣은 팥죽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이번에 이야기할 음식은 카스테라 경단이다. 항상 동지에만 먹었던 건 아니고 이따금 날이 따뜻한 봄에도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건 운수가 좋을 때의 일이고, 동네 떡집에서는 동지 때가 아니면 소량의 찹쌀가루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 그때에 맞추어 만들어 먹었던 간식이 바로 카스테라 경단이었다.

카스테라를 체에 곱게 갈아 만든 가루를 동그랗게 빚어 삶은 새알심 위에 솔솔 뿌리면, 연노랑 옷을 입은 자그만 병아리들이 떠올라 참 앙증맞다고 생각했다. 특히 쫀득한 찹쌀 경단이 포슬포슬 부드럽고 달콤한 카스텔라 가루와 어우러지는 것이 별미였는데 어린애 입맛에는 팥죽 새알심보다 잘 맞았던 덕택에 이 경단을 더 많이 먹고자 팥죽을 덜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맛이 좋고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던 간식이다.


아무래도 가장 좋았던 건 고사리손으로 열심히 경단을 만들고 가족들과 단란하게 모여 앉아 나누어 먹던 순간이리라. 엄마는 우리 자매들을 불러 모아 함께 카스테라 경단을 만드셨다. 정확히는 이름이 불리기도 전에 우리가 달려갔다. 카스테라를 체에 문질러 향긋한 달콤함이 퍼질 때, 가루를 한 움큼 쥐어 입에 넣고픈 유혹을 떨치며 경단을 둥글리던 우리들. 이상하게도 카스테라는 원래 모양대로 있을 때보다 가루로 만들어졌을 때 더 먹음직스럽다. 나만 그런 걸까. 내 ‘최애’ 빵인 카스테라 생크림빵도 이 카스테라 가루가 솔솔 뿌려져 있다.

손바닥에서 연신 굴려 흠집 하나 없이 매끈하게 빚어진 경단은 평평한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인다. 작은 언니와 내가 특히 이 작업을 좋아했다. 눈덩이를 뭉칠 때처럼 소중하게 감싸 데굴데굴. 한 판이 다 채워지면 엄마가 그것을 가져가 끓는 물에 투하한다. 보글보글 끓는 물에서 둥둥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경단을 지켜 보고 있노라면 마치 춤을 추는 듯 보였다. 잠깐 서서 보고 있으니 뜨거운 김이 훅 끼쳐왔다. 엄마는 불이 위험하니까 가서 앉아 있으라고 말했고, 나는 얌전히 식탁 앞에 앉았다.


경단이 다 익기만을 기다리며 억겁의 세월을 견디던 어린 자녀들의 얼굴을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사랑은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종합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에도 세 자매의 삼시세끼를 꼬박 챙겨 주고 간식 한 번 깜빡한 적이 없는 우리 엄마. 그렇게 하면서도 힘들다는 말 한 번, 피곤한 표정 한 번 하지 않아 나는 엄마가 그렇게 바쁘게 살았던 줄을 몰랐다. 우리에게 일말의 부채감도 지우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따뜻한 보호와 관심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늘 애정하고 염려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엄마는 사랑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얼마나 벅차고 아릿하고 기쁜 것인지 알게 된 건 전적으로 엄마 덕이다.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엄마는 엄마의 푸근한 사랑을 받아본 일이 없다고 했다. 늘 냉정했고, 따뜻한 포옹과 격려는커녕 딸에게 눈길조차 안 주는 엄마 아래서 엄마는 어떻게 사랑을 키울 수 있었을까. 받아본 적 없는 마음을 가슴속에서 꺼내어 다른 이에게 흠뻑 적셔 주는 일은 분명 보통 일이 아닐 터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


언젠가 엄마에게 물었을 때, 엄마는 내가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사랑을 내 아이에게는 꼭 느끼도록 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무한하고도 포용적인 사랑을, 갈구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사랑을, 다정히 안아주는 품을, 단단히 믿고 기댈 수 있는 등을. 그때 생각했다. 결핍은 누군가를 아프게 좀먹지만, 어떤 결핍은 더 큰 사랑을 낳는다. 당신이 겪었던 일을 우리에게는 겪지 않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모성애'라는 당신이 받지 못한 감정을 우리에게는 알려 주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속이 울렁인다.

엄마는 변명하고 도망가지 않았다. 나도 못 받아봤다고,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고, 성토하거나 으름장을 놓는 일이 없었다. 그저 포근하고 정답게, 가르쳐야 할 때는 단호하게 세 자매의 엄마로서 든든한 어른이 되어 주었다. 솔직히, 나라면 억울하고 힘겨워 드러내 놓고 불평했을지도 모른다. 왜 나는 주기만 해야 하는지 속이 다 상하고 울분이 터지지 않겠나. 사람이라면. 엄마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우리의 탓으로 돌린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부터 이미 엄마는 훌륭한 어른이고 최고의 엄마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래도 다행인 건 유년의 엄마에게 당신을 아껴주는 마을 어른들과 선생님이 계셨다는 것이다. 예쁘고 공부도 잘한다는 칭찬을 자주 해 주었다고 했다. 방학 때는 배차간격이 상당한 시골의 버스를 타고 한 친척분 댁에 찾아갔다. 그분은 엄마를 ‘아기’라고 불렀고, 다정하게 엄마를 챙겨 주었다.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좋아 두루 잘 지냈던 엄마는 다른 관계에서 사랑의 원천을 찾은 모양이다.



카스테라 경단을 직접 만들어 먹던 전통은 우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점점 커가면서 자연히 줄어들게 됐다. 더 자란 뒤로는 학교 실습시간에도 카스테라 경단을 만든 적이 있었지만, 집에서 만들던 그 맛에는 비할 수가 없었다. 단란한 가족의 정다움은 마법의 재료와도 같으니까. 나는 동지가 가까워질수록 카스테라 경단이 생각난다. 그리고 어린 날이 그리워지곤 한다. 마냥 즐겁기만 하지는 않더라도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과 미래를 향한 기대감이 넘쳐나고, 가족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면 그게 곧 하루치 목표 끝이던 때 말이다. 그러면 과거의 아름다움에 젖게 되지만, 동시에 지금을 살아가는 순간순간 그리워할 수 있고 잠시 꺼내 보며 웃을 수 있는 추억이 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다시 그 맛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이번 동지에는 엄마의 카스테라 경단을 만들어 보고 싶다. 시간이 흘렀더라도 그때 느낀 엄마의 정과 함께 만든 추억은 찬란함을 머금은 채 온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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