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국물 요리 중 하나는 된장국이다. 그 구수한 냄새와 속을 달래 주는 순한 맛은 한 지역 토박이인 나에게도 푸근한 고향의 맛을 가늠케 한다. 맛으로만 따지면 맑은 소고기 국물이 일품인 갈비탕과 사골을 푹 우려 깊은 맛이 나는 설렁탕이 더 깊고, 매콤새콤하고 얼얼한 김치찌개, 먹어도 먹어도 안 질리는 감칠맛이 매력인 미역국도 빼놓을 수 없지만 다양하게 먹는 재미로는 된장국이 으뜸이다. 청국장은 냄새난다고 싫어하면서도 된장은 참 맛있다. 비슷한 장이지만 둘은 확실히 다르다. 청국장은 입에 넣기도 전에 콧속까지 거침없이 치고 들어오는 강렬한 향을 가졌고, 된장은 천천히 스며드는 수채화 물감처럼 은은하게 구수한 향을 가졌다.
만드는 법에도 차이가 있다. 된장은 우선 물에 불린 콩을 삶고 으깨서 네모지게 빚는다. 이것이 메주다. 그 메주에 소금물을 부어 장을 담그면 생기는 간장을 떠내고, 남은 건더기를 다시 으깨 간을 한 뒤 숙성시키면 된장이 된다. 청국장은 된장의 일종이기에 콩을 물에 불려 삶는 것까지는 같다. 하지만 콩을 으깨지 않고 볏짚을 깐 시루에 통째로 담아 발효시킨다. 이때 소금도 들어가지 않는다. 더운 곳에 두고 이삼일 발효시키면 끈끈한 실이 생기는데 주걱으로 뒤섞어 주고 하루 정도 더 둔다. 그리고 알갱이가 남도록 적당히 빻아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등을 넣고 간을 맞춰 주면 청국장이 만들어진다. 발효 과정을 몇 달은 거쳐야 하는 된장에 비해 짧은 기간만 두어도 완성되므로 속성 된장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한다.
된장국을 먹을 때 가장 맛있게 먹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밥을 말긴 마는데 그냥 마는 게 아니라 죽처럼 되도록 마는 것이다. 밥을 말 때는 국물이 넉넉하면 안 된다. 꼭 밥 아래로 자작하게 국물이 고이는 정도로 말아야 한다. 그래야 국물이 밥알에 잘 배어 더 맛있고, 조금 되직해지면서 식감이 부드러워져 술술 넘어간다. 어릴 때는 배추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으며 ‘된장죽’이라는 별명을 마음대로 붙이곤 했다. 그리고 된장죽의 참맛을 역설하며 국물을 더 넣으면 어떻냐는 주변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었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된장죽을 만들어 먹으면 소화에도 좋으니 항상 넉넉한 국물로 먹어왔다면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다.
배추 된장국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된장국은 변형이 참 다양하다. 배추 된장국, 아욱 된장국, 시금치 된장국, 애호박 된장국 등등. 조개류를 넣어 시원하게 끓일 수도 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애호박 된장국이다. 애호박을 좋아하기보다는 함께 들어가는 양파를 좋아한다. 양파의 달콤한 맛이 국물을 달콤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쌀밥과 애호박 된장국 한 그릇이면 그날은 필승하는 한 끼를 먹게 된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애호박 된장국은 국물을 말아먹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 왠지는 모르겠지만 밥을 말지 않고 그대로 떠 먹어야 가장 맛있다. 밥 한술에 국 한술을 곁들여 먹는 식이다. 국물 자체가 맑고 점도가 낮아 그런 걸까? 단맛이 강해서 밥을 말아 다 먹기엔 부담스러운 걸까? 아직 정확한 이유는 밝혀내지 못했다.
또 고기를 좋아하는 나지만 된장국에 고기가 들어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가끔 된장국에 소고기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고기가 들어가는 순간 국물은 느끼해져 버린다. 느끼하고 기름진 된장국이라는 건 담백하고 구수한 된장국 특유의 매력,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일과 같다. 다행히 우리 집에서는 된장국에 고기를 넣지 않는다. 고기가 없는 된장국에 익숙해진 입으로 바깥의 고기 된장국을 먹으면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다. 학생 때는 급식에 된장국이 나온 것을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숟가락을 담갔는데 소고기가 나타나 실망했던 적도 더러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으니, 고깃집의 차돌 된장찌개는 맛있게 먹는다. 된장국이 아니라 된장찌개여서인지 국물이 비교적 더 매콤하기도 하고 기름이 많은 고기인 차돌박이를 넣었음에도 불구, 기름지기는커녕 살짝 얼큰한 느낌이 나면서 맛이 좋다. 고깃집 된장찌개에는 보통 쌈장과 청양고추가 적절히 들어가 있어 그럴 것이다. 매운 걸 싫어하고 못 먹는 나에게도 맵지 않고 딱 느끼함만 가시게 만든 차돌 된장찌개는 맛있다.
끝으로, 얼마 전 알게 된 ‘된장 짜글이’라는 음식을 언급하고 싶다. 요리 관련 미디어에서 종종 보이기에 새로 개발된 음식인 줄 알았는데 충청도의 향토 음식이라고 한다. 짜글이는 양념한 돼지고기에 채소를 듬뿍 넣어 끓인, 찌개류 중에서도 국물이 적은 찌개다. 보통은 찌개보다도 국물을 자작하게 해서 끓인 국물 요리를 통틀어 짜글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당장 짜글이를 검색했을 때 두부가 들어가면 두부 짜글이, 돼지고기가 들어가면 돼지고기 짜글이, 감자가 들어가면 감자 짜글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그렇다. 하면 국과 찌개와 짜글이의 차이는 결국 국물의 점도라고 할 수 있겠다.
된장 짜글이의 존재를 알고 무척 솔깃했다. ‘된장죽’을 위해 일정하게 국물을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한데 조리 단계부터 국물이 걸쭉하다면 밥을 말 때마다 국물의 양을 맞추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짜글이는 비벼 먹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걸쭉한 것 같아 그건 좀 아쉽다. 더 찾아보니 된장 국물에 밥이 말아진 채로 나오는 ‘술국밥’도 있었다. 술을 마신 뒤 해장할 때 먹는 음식인 모양인데, ‘된장죽’을 대체하진 못하겠으나 밥을 만 채로 끓여 나온다면 밥알이 얼마간 풀어지면서 먹기 좋을 것 같다.
사소한 재료의 차이, 먹는 방법의 차이로 다른 음식처럼 느껴지는 걸 보면 신기하다. 그리고 그 오묘한 차이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은 우리 삶과도 닮아 있다. 나는 수많은 사람 속의 일부가 아니라 그중에서 단 하나다.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는 건 누구나 하지만, 국물을 조금만 말아 ‘된장죽’이라 이름 붙이고 차돌된장찌개 맛집에 방문할 계획을 진지하게 세우고 된장찌개의 다양한 형태를 찾아보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믿음은 자신을 긍정하게 한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내가 정말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은근히 맛이 다 다른 된장국처럼, 다른 사람과의 작은 차이와 독특함이 나를 이루고 있으니까. 스스로 전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을 잘 들여다보시라. 미묘한 차이를 알아내는 데서부터 나의 발견도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