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구체적 사랑>
때로는 가벼운 에세이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은 그 속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들이 담긴 문장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 보물들을 발견하면 무척 반갑기도 하고, 나의 일상에 적용도 가능하다. 나에게 조근조근 인생 조언을 해주는 언니 같은 에세이집이 있다.
책이 아니면,
어디서 이렇게 지적이고 멋있는
인생의 통찰력을 가진 언니들을
만날 수 있을까?
취향에 관한 에세이를 읽고 싶다는 생각으로 책을 찾아보다가 연노랑색 표지의 예쁜 책을 발견했다. 신미경 작가의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 책은 '내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취향 수집 에세이'라는 부재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작가는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게 되었고, 물건보다 경험과 배움, 깨달음을 얻으며 충만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적게 가지고 바르게 생활하기라는 모토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과도 맞닿아있다.
물건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자 내 몸과 마음을 편안히 돌보는 데 신경을 쓴다. 친절과 긍정을 가져온 운동과 좋은 식사, 규칙적인 생활이 이어지는 이유다.
-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신미경 -
왜 커피를 마시지 않아?
술은 마시다 보면 느는 거야.
과자를 왜 안 먹어?
쇼핑 안 좋아해?
작가가 자주 듣는 질문이자, 나 역시도 자주 듣는 질문이다. 어릴 때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카페인에 약해서. 잠이 오지 않아서. 술이 약해서. 과자를 안 좋아해서. 쇼핑은 피곤해서" 등등 일일이 해명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질문들이 크게 신경 쓰이지 않고 애써 해명하지도 않는다. 그건 그냥 나의 취향일 뿐이고, 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크게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른 이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서로의 인생에 오지랖은 부리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되, 도움은 줄 수 있는 관계, 내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관계다.
이타심을 키우고 가꾸는 건 매일 하는 숙제다. 여전히 남을 살피는데 서툴지만 이제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눈치보기에서 벗어나 나는 저 사람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로 생각의 방향을 바꾸면 서다.
-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신미경 -
책을 좋아하는 작가는 서점과 도서관을 배회하며 책 읽기에 몰두하는 자신을 '서적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불치병은 미국 문예 비평가인 헨리 루이스 멩켄이 창안한 '비블리오 바이불리'라는 개념과도 비슷하다.
‘비블리오 바이불리'는 그리스어로 책을 뜻하는 비블리오(Biblio)와 라틴어 어원으로 '취한다'는 의미의 바이불리(Bibuli)의 합성어로 책에만 빠져있는 책 중독자를 뜻한다.
같은 불치병에 시달리고 있는 나로선, 이 부분의 내용이 많이 공감 갔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시나리오를 공부했던 언니들도 이런 불치병을 앓고 있는 것 같고, 지금 브런치를 읽고 쓰고 있는 당신도 어쩌면 비블리오 바이불리 일지도 모른다.
서적 병에 걸리면 일생 책을 읽거나 쓰는 것을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고 작가 스티븐 영은 전한다.
-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신미경 -
무엇이든 배워두면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책의 작가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내가 읽은 책들이나 경험한 것들, 배운 것들은 당장은 쓸모가 없더라도 내 안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에 그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나는 물건을 사는 것보다 무언가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어쩌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건 인간이 가진 가장 큰 특권일지도 모른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더욱더 많이 보고 배우고 흡수해야 하고, 그건 지겨운 의무의 일종이라기보다 고도의 지적 생명체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재미다.
-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신미경 -
요즘 시스루가 유행이던데 하얀 시스루 같은 청순한 표지를 가진 책이 있다. 바로 이서희 작가의 <구체적 사랑>이다.
제목만 보고는 사랑에 관한 에세이인가 싶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삶을 살면서 만나는 다양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와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 자식과의 사랑도 모두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너무 한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뿐인가. 나는 여러 방면에서 아직도 좁은 생각에 갇혀있다. 책의 서문이 이런 나의 고정관념을 두드린다.
삶이 확장되고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면서 정상의 기준으로 규정되지 않는 환경 속 사람들을 곳곳에서 만났다. 빛에 스스로를 비추는 각각의 모서리를 지닌 보석처럼 그들은 제 모습으로 다채롭게 빛났다.
- 구체적 사랑, 이서희 -
작가가 첫 번째로 말하는 관계는 엄마와의 관계다. 그녀는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어린 시절을 솔직하게 그리며, 그 안에서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지나치게 자유롭고 사랑을 갈구했던 어머니의 모든 것을 받아주려 노력했지만, 결국 엄마의 욕망과 엄마의 삶을, '그 여자'의 삶으로 놓아두기로 한다. 세상에서 가까울 것 같은 엄마와 딸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법이다.
그녀를 삶의 주인공에서 끌어낼 자도. 엄마 역시, 나를 그녀 삶과 욕망의 배경과 도구로 불러들일 수 없다. 사랑했으나 멀어져야 온전한 관계도 있음을 그렇게 배웠다.
- 구체적 사랑, 이서희 -
작가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치명적인 느낌을 토마토에 비유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토마토라는, 야채이기도 과일이기도 한, 알 수 없는 그 맛. 알 수 없으니 알 때까지 맛보아야만 하는 그 맛. 내가 토마토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식감과 맛을 이토록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 또 있을까?
물컹한 빨강의 달다고 하기에는 무겁고 시다고 하기에는 두터운 맛, 탄력 있는 껍질 너머 자리 잡은 마냥 부드럽지만은 않은 발간 육질. 그 안에서 몽글몽글 떠오르는 알갱이들.
- 구체적 사랑, 이서희 -
작가는 우리의 생명이 영원하지 않듯, 우정에게도 흔들림을 허락할 수 있다고 말한다. 흔히들 사랑은 변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우정은 흔들림 없는 것, 진실한 것, 영원한 것의 가치를 더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정 역시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많이, 오래 슬퍼할 까닭은 없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그것의 진정성을 따지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이 않은가. 그들은 나를 버티게 했고 지탱해줬고 기쁨을 줬다. 필요한 시기에 곁에 있었고 그것만으로 충분했기에 나는 감사하고 싶다.
- 구체적 사랑, 이서희 -
책에 따르면 사회 활동가인 아미타 쇼딘은 치유를 우리가 다다라야 할 하나의 목적지가 아니라 반복해서 실습하고 실천해야 하는 행위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 안의 우울이나, 슬픔, 혹은 고통은 당장 없애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 존재 안의 무늬처럼 흐려지기도, 진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계속 나를 치유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여의치 않을 때, 나와 결이 비슷한 에세이를 읽으면 친한 언니를 만나 수다를 떠는 것 같은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