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하는 이 한 줄은 세계 소설사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 중 하나다.
- 동시대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완벽한 예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소설
- 1878년 처음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후, 영화, 드라마, 발레,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여러 장르로 재탄생한 영원한 고전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이 위대한 책과 연결고리를 가진 소설이 있다. 바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면 책읽는 즐거움이 두배가 된다.
대단히 유명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안나 카레니나>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은 이유는 3권이라는 적지 않은 양 때문이었다. 러시아 이름은 왜 그리 길고 어려운지, 소설 속 등장인물만 해도 100명은 족히 될 것 같다. 하지만 한번 마음먹고 읽기 시작하자 점점 결말이 궁금해져 자꾸만 손이 가는 책이었다.
소설의 배경은 1870년대 러시아다. 정부 관료 카레닌의 아내인 안나는 친오빠 스테판의 외도로 인한 부부 싸움을 중재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온다. 모스크바행 기차에서 그녀는 젊은 귀족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고 둘은 서로에게 강렬한 끌림을 느낀다. 이후 둘의 사랑은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오지만, 안나와 브론스키는 서로에게 깊이 빠져든다.
붉은 입술 윤곽이 그리는 빛나는 미소와 맑은 눈동자 사이에서 퍼지는 생기 있는 표정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 스스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휩싸여 있는 듯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일부러 빛을 꺼 버렸지만 그 빛은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에는 주인공 커플인 안나와 브론스키의 이야기 외에도 레빈과 키티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목은 안나 카레리나지만 진짜 주인공은 레빈으로 느껴질 만큼, 소설 속에서 레빈의 비중은 매우 크다. 시골의 순박한 지주 레빈은 위선으로 가득 찬 상류사회의 등장인물들 중 거의 유일하게 신념과 성실함을 갖추고 있다.
레빈은 스테판의 처제인 키티를 사랑한다.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키티에게 구혼하지만, 브론스키와의 결혼을 기대하고 있던 키티는 그의 청혼을 거절해 버린다. 뒤에 키티는 브론스키가 안나에게 빠져있다는 걸 알게 된다. 키티가 브론스키와 안나의 사랑을 눈치채게 되는 것은 누구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두사람의 눈빛을 읽는 것에서 비롯된다. 리얼리즘의 거장으로 불리는 톨스토이의 섬세한 필력이 빛을 발하는 장면 중 하나다.
그녀는 그들이 이렇게 사람들로 가득 찬 홀에 있으면서도 자기들밖에 없는 것같이 느끼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토록 외연 하고 듬직하던 브론스키의 얼굴에 아까 그녀를 자극했던, 영리한 개가 나쁜 짓을 저질렀을 때 짓는 것과 같은 당황과 순종의 표정이 떠올라 있는 것을 보았다.
-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
타인과의 관계에서의 심리묘사뿐만 아니라, 한 인물의 경험에 대한 심리묘사도 탁월하다. 브론스키가 경주마를 타고 달리다가 낙마하는 장면이라던가, 레빈이 농부들과 함께 벼를 베는 장면 등에서 실제 그 인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특히 레빈의 풀베기 장면은 무아지경에 도달한 한 인간의 모습을 세세히 묘사하고 있으며, 이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중 하나이기도 하다.
레빈은 그들 사이에서 풀을 베었다. 가장 더울 때였지만 풀베기가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에 흐른 땀이 시원함을 느끼게 했고, 등과 머리와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팔에 쏟아지는 태양은 노동에 단단함과 끈기를 더해 주는 듯했다. 무아의 순간이 점점 더 자주 찾아왔고, 그럴 때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낫이 저절로 풀을 벴다. 그야말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레빈과 키티의 사랑은 행복으로 끝을 맺는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인간의 양면성과 이중성을 드러내며 그 속에서 살아 숨 쉰다.
하지만 이 책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안나 카레니나'라는 인물에 대한 가벼운 불륜 소설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고뇌를 통해 인생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레빈의 이야기가 주가 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레빈의 입을 빌려 죽음에 대한 자신의 고뇌를 소설 속에 담고 있다.
인생의 작은 한 가지 국면, 즉 죽음은 오기 마련이고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것, 그 무엇도 시작할 가치가 없다는 것, 이것을 구할 방법은 전혀 없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서 점점 또렷해졌다. 그래, 이것은 무섭긴 하지만 틀림없는 사실이다.
-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
'어차피 모든 사람은 죽을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이룰 필요가 있는 것인가?'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형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그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면서 레빈은 끊임없이 '삶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뇌한다.
저 할멈도 언젠가 땅에 묻히겠지? 능숙하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왕겨에서 알곡을 떨어내는 빨간 줄무늬의 저 여자도 땅에 묻히고, 반점이 있는 저 거세마도 얼마 안 있어 곧 땅에 묻힐 거야.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저들뿐 아니라 나도 땅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무엇을 위해 우리는 사는 것일까?
-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
이러한 고뇌들을 통해 레빈은 결국 인생의 의미에 대해 답을 찾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나는 이 소설이 왜 그토록 칭송받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세 권의 책의 가치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하면서 그러면서도 나는 계속 기도를 할 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의미 없지 않아. 내 힘으로 내 삶에 불어넣을 수 있는 명백한 선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에 바치는 오마주 같은 소설이 있다. 바로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이 소설에도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와 프란츠 두 커플이 나온다.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인 토마시는 무거운 책임감 따위는 필요 없다고 여기며 모든 관계에서 한없이 "가벼움"만을 추구한다. 그는 여자들과의 관계를 '에로틱한 우정'이라 부르며, 동시에 여러 여자를 사랑하는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오직 한번밖에 살 수 없으므로 가벼움과 무거움 중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답이 없다는 말이 맞는 듯하기도 하다.
"물리 실험 시간에 중학생은 과학적 과정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므로 체험으로 가정을 확인해 볼 길이 없고, 따라서 자기감정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
하지만 토마시의 애인 테레자는 그와의 무거운 관계를 원한다. 술집 종업원인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고 <안나 카레니나>를 들고 의사인 토마시를 만나러 간다. 이 책은 그녀가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토마시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입장권 같은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수화물 보관소에 짐을 맡긴 뒤 '안나 카레니나'를 겨드랑이에 끼고 프라하의 거리를 쏘다녔다. 그녀는 책을 놓지 않았다. 그것이 마치 토마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인 양. 자기가 가진 통행증이라곤 이 비참한 입장권밖에 없음을 깨달은 그녀는 울고 싶어 졌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
테레자는 기차를 타고 프라하로 가고, 토마시와 같이 살게 된다. 고향을 등지고 토마시를 향해가는 수단이 기차인 것이다. 이 장면에서 소설 <안나 카레니나>가 오버랩된다. 안나는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기차에서 브론스키와 재회한다. 안나가 남편 카레닌을 떠나 브론스키에게로 향하는 수단이 기차인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토마시는 테레자에게 강아지를 선물로 주고 그 강아지의 이름을 "카레닌"으로 짓는다. 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의 남편 이름 "카레닌"과 같다.
카레닌은 소설 말미에서 많은 의미를 주고 생을 마감한다.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카레닌의 미소’는 가벼움이나 무거움이라는 잣대 보다도 그냥 현재에 집중하며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안나 카레리나의 레빈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