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데이션으로 살아가자
세상에는 흑과 백만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처럼 인생을 살면서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에는 시작과 결과. 성공과 실패. 딱 두 가지만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그라데이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결과가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하지 못하다고 해서 망한 것도 실패한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목표까지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도 없으며 움츠려들 필요도 없는 것이다. 모든 것에 완벽을 요구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나는 삶을 살아가고 인생을 만드는데에는 결과만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때는 그게 다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걸지도 모른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해"라고 말해놓고 정작 본인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세상에는 결과만 중요한 게 아닌데..
이러한 생각들은 사실 모든 것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성우가 꿈이었던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잘해야 돼. 잘해야만 해. 그래야 인정받을 수 있어. 그래야 내 꿈을 이룰 수 있어.'라는 생각들이었다. 우리 가족은 내가 선생님이나 공무원 같은 안정적이고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 있는 직업을 갖길 원했는데 나는 그게 싫었다.
내 인생은 내 것인데 왜 나에게 꿈을 강요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까 무슨 일을 해도 더욱 완벽해야 했고 완벽해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항상 자기 자신을 벽으로 몰아세우게 되고 칭찬보다는 채찍질을 하게 되었다. 못하면 왜 못하는 거지? 잘하면 더 잘해야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은 날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그렇게 살다가 문득 나 자신을 되돌아봤더니 나는 인생을 이분법으로만 나누어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보는 세상에는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세상에서 꿈을 잃은 나는 그저 실패자일 뿐이었다. 무엇을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건 완벽하지 못한 거였고 실패한 거였다. 과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가는 길에는 성공과 실패 두 갈래만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주위를 둘러보니, 세상엔 흑과 백도 있지만 그 안에 그라데이션이라는 것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라데이션이라는 과정을 즐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도 꿈으로까지 가는 과정들도 그 무엇 하나 즐기지 못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항상 자신을 몰아세웠고 어떤 성과를 내도 만족하지 못했고 '아니야, 망했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서서히 지쳐가며 '아마 나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꿈을 접었다.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과정을 즐겨보지 못했다. 항상 어떠한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의 벽은 매우 높았으며 그 근처까지 가도 만족을 하지 못했기에.. 또 이렇게 되다 보니까 나중에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조차도 못하게 되면서 자신감을 잃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돼버리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누가 나를 믿을 건데.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내 인생이 그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데, 인생이 끝난 것도 인생의 실패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몰아세우고 조급했을까? 조금만 더 과정을 즐길 수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어쩌면 나는 지금도 계속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장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그 자리에 머물러있는 게 아니었다. 무언가를 조금씩 꾸준히 하고 있다면 내일의 난 오늘보다 더 성장할 테고 1개월 뒤, 3개월 뒤, 1년 뒤의 나는 더욱 성장한 모습이 될 거라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당장의 결과에만 연연하고 급급했던 것 같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말해도, 성격상 지금 당장의 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 조급해할 수도 있다. 나처럼 이분법으로만 세상을 본다면 아마 평생 모든 결과가 마음에 안 들 거다. 그러니까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고, 주위를 둘러보면 주변에는 의외로 그라데이션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하, 오늘 하루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 인생 망했네.'가 아니라 오늘 하루 아무것도 안 했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휴식의 날이었어!라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지금 당장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하루 정도는 자신을 옥죄는 마음을 내려놓고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왜냐면 그들은 차근차근 목표를 채우며 나아가고 있으니까.
완벽하지 못했다고 해서 망한 게 아니야.
그러니 부디 주눅 들지 말고 자책하지도 말자.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어.
나는 이제야 흑과 백의 세상에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다.
https://youtu.be/ZPoP1_Udav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