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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 Jun 04. 2022

말코 네 이름_더불어 사는 삶을 배웁니다.

TV를 거의 보지 못하지만, 요즘 꼭 챙겨 보는 드라마가 있다.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 ‘한 작품에서 이 배우들이 다 나온다고?’ 눈을 의심할 정도로 초호화 배우진들이 옴니버스 형식의 작품 안에서 주인공이 되었다, 조연이 되었다를 반복하고 자신의 이야기가 끝나면 조용히 퇴장하기도 한다. 그 화려한 배우들을 보는 눈요기의 드라마? 전혀 아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인생을, 제주도 푸릉마을 배경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밀도 있게 그려낸다. 단지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들만의 시선뿐 아니라 주변인, 반대편의 선 사람들의 시선까지 따라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다가, 이내 내 이야기가 되고 너의 이야기가 된다. 물론 그들의 따뜻함에 미소 짓기도 하고 껄껄 웃기도 하지만, 어느덧 눈물이 맺히고 가슴 저리게 아픈 얘기가 더 많다. 지난 다운증후군 동생의 에피소드가 특히 그랬다.


다운증후군. 염색체 이상 증상으로 일반인에게 2개 있는 21번 염색체가 3개 존재하는 질환이다(네이버 지식백과). 중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회사 다닐 때 1년여 시간 팀원들과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다운증후군 시설의 봉사활동 경험이 있다. 몇 차례 만난 후에는 당혹감이나 두려움이 없어졌지만, 봉사 첫날 나의 당황한 기색을 숨기기는 쉽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다른 모습도, 덩치는 산만한 어른들이 5살 정도의 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모습도, 불같이 화를 냈다가 푸르르 웃는 감정 기곡이 심한 모습도 모두 생소하고 불편했다. 사실 그건 너무도 당연했다. 나도 살아오면서 그들을 이런 시설 방문이 아니고서야 만난 적이 없었고 더군다나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었다. 생물 교과서에도, 도덕 교과서에도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인 영옥에게 다운증후군 쌍둥이 언니 영희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갑자기 그녀를 마주한 정준에게 드리웠던 ‘당혹스러움’은 죄스럽기 그지없는 것이 아니라, 그의 항변에서처럼 어쩌면 당연했다.

내가 영희 누나 보고 놀랬어 근데
난 그럴 수 있죠.
다운증후군을 처음 보는데 그럴 수 있죠.
 놀랠 수 있죠.
 그게 잘못됐다면 미안해요.
그런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집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몰랐다고요.
그래서 그랬어요. 다시는 그럴 일 없어요.
- 우리들의 블루스 14화 중 -

정말 그렇다. 배운 적이 없었다. 나도 정준도...


『말코, 네 이름』은 스페인 그림작가 구스티가 자신의 다운증후군 둘째 아들과 겪은 솔직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담았다. 구스티라는 작가는 국내에선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이번 이수지 작가와 한스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자(Short List) 7인에 올랐던 작가이다. 그리고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책은 볼로냐 라가치 특별상을 수상했다.


148쪽에 이르는 이 책은 켜켜이 쌓인 말코와 함께한 가족의 시간이다. 그 시간은 일기, 끄적임, 낙서, 만화, 그림, 사진들의 화려한 색상들로 버무려져 있다. 후루룩 책을 넘기다 보면 만화인가? 그림책 노블인가? 갸우뚱할 수 있지만, 장르, 물성은 일단 내려놓고 한 장 한 장에 담긴 작가의 글과 그림에 집중하면 좋겠다. 우리가 집과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그리고 만나지 못한 ‘다운증후군’을, 가장 가깝고 따뜻한 아빠의 시선으로 그린 이 책이 알려줄 테니 말이다.

아들 말코는 세상에 너무 일찍 나와버렸고 남들과 달랐다. <조금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너에게>라는 책의 부제에서처럼 다른 속도로 살아가야만 하는 다운증후군. 아빠인 구스티는 아내인 '아네'와 달리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계속해서 부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의 “그대로 괜찮다는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라는 말과 함께 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차오른다. 말코를 받아들이는데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아내의 마음을 배우고, ‘다른’ 동생의 탄생으로 힘겨울 수 있는 첫째 태오가 ‘내 동생이 최고야’라고 말해주는 모습에서 삶의 교훈을 얻는다. 가족은 그야말로 말코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한다.


“얼굴이 초록색이든, 빨간색이든, 파란색이든,
머리칼이 은색이든, 키가 작든, 뚱뚱하든
난 아무렇지 않아요.
말코는 내 사랑스러운 동생이에요. "
출처_『말코, 네 이름』 형 테오 이야기 중

말코와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빠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가 다운증후군 아이(물론 어른은 좀 다를 수 있을지 모른다)의 일상이, 어떤 다름이 있을지, 어려움이 있을지 알 수 있다. 말코가 모자를 수없이 썼다 벗었다 하는 18컷에 담긴 모습에서 그들을 인내심 있게 기다려야 함을, 친구들을 껴안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걸핏하면 풀썩 쓰러지는 것은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근육이 약해 몸이 부드러워서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심장이 약하고, 하루에도 먹어야 할 약이 7가지도 넘는다는 것을.


가볍게 산책하려 해도 절대 가볍지 않고, 가벼운 아침 식사를 하려 해도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아빠의 일기 제목은 ‘아침 먹기’ 이지만 독자는 ‘아침 전쟁’으로 읽힌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어 쫓아다니고, 머리칼을 잡아당기는 통에 아이들은 도망 다니고 울기 일쑤다. 하지만 아빠는 말한다. "말코는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라고.

아빠 구스티는 아이를 위해 탈것이 되고, 몇 시간이나 계속될지 모르는 얼을 땡 놀이를 한다. 그런 놀이를 하다 보면 다치기도 해 수술을 한다. 어느 때보다 예민한 아이를 위해 수술한 눈 부위에 똑같이 거즈를 대고 애꾸눈이 된다. 하나의 놀이처럼.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한다.


날마다 노는 일을 잊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말코는 놀이를 통해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출처__『말코, 네 이름』 말코 이야기 중


늘 말코가 세상과 조금 덜 힘들게 더불어 살기를, 그리고 자신의 아들과 비슷한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들도 그랬으면 하는 아버지 구스티의 바램이 책 곳곳에 묻어있다.




이 책은 다운증후군 ‘이 아이를 키우느라 우리 너무 힘들었어요.’라고 말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우리 말코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이런 걸 힘들어하는구나!’를 느끼는 모습을 담았다가 1인칭 시점으로 내가 이 ‘특별한’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담고 있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오래 살지 못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받아들인다는 것은 주어진 걸 기꺼이 받는다는 뜻이지요.” 마지막 구스티의 말에 눈물이 났다. 이 사랑은 대체 어떤 사랑이란 말인가.


길거리에서 다운증후군을 갑자기 마주쳤을 때 당황하지 않을 자신은 아직 솔직히 없다. 하지만 책이, 드라마가 무지한 나에게, 우리에게 그들의 모습을 담아주고 알려줘서 참 고맙다. 적어도 그들이 무엇을 싫어하고 불편해할지, 어떤 의미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이제 조금은 알았으니까 말이다.


한편, 만약 말코 같은 아이가 우리나라 학교에서 친구의 머리칼을 잡았다면 무슨 일이 그다음에 벌어졌을까 그림이 그려지니 씁쓸하다. 구스티가 말하는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더불어 산다는 것. 정상적인 사람들과만 더불다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다. 우리에게 내려져 있는 편견이나 두려움을 비난하거나 화살을 쏘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우리가 아직 무지해서이다. 나도 너도 우리도 더 배워야 한다. 자꾸 배워야 한다. 정준이 그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했다는 말을 우리 아이들이 하지 않도록, 『말코, 네 이름』이 책이 학교에, 가정에 더 많이 꽂혀 있으면 좋겠다.


말코는 구스티 작가가 책을 쓴 2014년에 6살이라고 했으니 벌써 14살 사춘기가 되어있을 것 같다. 사춘기 아버지 구스티는 괜찮으실까?

(단순히 같은 사춘기 아들 맘으로서 궁금해짐 ^^)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2&v=5R9n1Nh3nqQ&feature=emb_l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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