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제주가 담긴 음식

by 노란고구마


멀리서 보니 길이 까맣게 변해 있다. 바다 옆길이 시커먼 해초류로 뒤덮여 있는데 바다에서 떠밀려왔고 하기엔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주머니들이 부지런히 해초를 널고 계신다. 줄기에 좁쌀 같은 알갱이가 알알이 맺힌 모양새가 톳인가 싶었는 아주머니께서 ‘몸’이라 알려주신다.


몸은 모자반의 제주어다. 바닷속에서 펼쳐진 모습이 마치 사람의 머리카락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육지에서 고된 일을 하다가 제주도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이 바로 모자반을 넣은 몸국이라고 한다. 제주에서 열리는 축제나 잔칫날에 몸국은 빠지지 않는 음식인데 제주 사람들에게 단순한 음식을 넘어 소울푸드다.


제주의 현무암 지대는 모자반이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해초도 식물처럼 계절을 타서 가을과 겨울 동안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영양분을 흡수하며 천천히 자라다가 수온이 오르는 봄에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특히 2월에서 4월 사이는 잎이 가장 부드럽고 영양가가 높고 수온이 더 오르면 잎이 질겨지고 녹아버려 이 시기에 수확해 바짝 말려야 한다.


몸국은 제주의 강한 공동체 문화가 빚어낸 지혜로운 음식이다. 옛날 잔치가 열리면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귀한 돼지를 잡았는데 적은 양의 고기로 마을 전체가 배불리 먹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 바로 모자반을 넣는 것이었다. 오래 끓일수록 양이 줄어드는 톳과 달리 양이 변함없는 모자반은 여럿이 나눠먹기에 좋은 재료였던 것이다.


톳은 오래 끓이면 흐물흐물해지면서 형태가 뭉개지기 쉬운데 모자반은 톳보다 단단하고 질겨서 돼지고기와 함께 긴 시간 푹 끓여도 오독오독하고 쫄깃함 식감이 살아있다. 돼지의 기름진 맛을 중화시켜 영양적으로 궁합이 잘 맞는다. 구수한 육수와 이 독특한 식감의 조화가 제주를 대표하는 향토색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행자들에게 제주는 평화로운 낙원이지만 이곳을 터전으로 삼은 이들에게 제주는 척박한 땅이었다. 대부분의 땅이 농사가 쉽지 않아 늘 먹거리가 부족했고 바다에 나가려 해도 비바람이 불면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그럴 때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이 몸이었다. 바짝 말려 보관하면 일 년 내내 비상식량이 되어주었다. 몸국은 맛 이전에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삶의 애환이 서린 음식이다.


살다 보면 어려운 환경에 놓일 때가 있다. 끼니를 잇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낙담할 법도 하지만 제주 사람들은 그 안에서 살아낼 방법을 찾아냈다. 기왕이면 더 맛있게, 기왕이면 더 많은 이과 나누며 그 고단함을 이겨내려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긴밤 까만 어둠 속에 갇힌 듯 느껴져도 결국 내일의 태양은 떠오른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제주도민의 긍정적인 마음과 강인한 생명력이 이 음식에 담겨있다.


자신보다 훨씬 큰 보자기 가득 모자반을 지고 온 아주머니들이 낫으로 일일이 베어낸 모자반을 정성껏 널어 말리신다. 바닷바람에 수분을 날려 보낸 모자반에서 진한 바다 냄새가 풍겨왔다. 쌀쌀한 바람에 마음까지 지치는 날이면, 그날 점심에 먹었던 따뜻한 몸국 한 그릇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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