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다. 발밑에 엉켜있는 나무뿌리들을 넘어가는데 집중하며 걸어왔더니 어느새 올레길 표식을 놓쳐버렸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숲 한가운데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왔던 길조차 가늠이 되지 않아 일단 그대로 뒤를 돌아서 직전의 길을 되짚어 가보았다.
올레 11코스의 곶자왈에 있다. ‘곶’은 숲을, ‘자왈’은 가시덤불을 뜻한다. 화산활동이 남긴 거친 돌밭 위에 식물들이 자라 있다. 땅이 온통 울퉁불퉁한 돌밭이라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덕분에 태고의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바위틈을 뚫고 자란 식물들이 경이롭다. 그러나 길을 잃는 순간 그 신비로움은 순식간에 두려움으로 변했다.
한참을 되돌아갔지만 올레 표식이 보이지 않는다. 평소라면 나무에 매달린 파란색과 주황색 리본, 혹은 돌담에 그려진 화살표가 지도가 필요 없을 만큼 친절하게 길을 안내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이 길로 갔다 돌아오고 또 저 길로 갔다 돌아왔다. 이렇게 길을 잃어본 적이 처음이라 당황하기 시작했다.
숲의 해는 유독 짧다기에 오전 일찍 길을 나섰는데 숲 속에 들어오니 시간 감각도 잃어버리게 된다. 울창한 나뭇잎들이 정오의 햇살을 가로막아 숲 안은 벌써 늦은 오후처럼 스산했다. 갈림길 앞에 멈춰 서서 지도를 보며 현재 위치를 가늠해 보려 애썼지만 헷갈린다.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도 하나 없어 물어볼 곳조차 없었다.
결국 지도에 적힌 올레지기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바로 연결이 되었다. 곶자왈에서 순방향으로 내려오던 중이었다고 설명하자 침착한 목소리로 대략적인 위치를 짚어주셨다. 통화를 하며 다시 한번 왔던 길을 천천히 돌아가 보았다. 방금 지나왔던 길이었는데 어떤 표식도 보지 못했다. 혹시나 위치가 잘못 전달되었나 하던 차에 거짓말처럼 나무에 달린 표식을 발견했다.
왜 방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는지 허탈할 정도로 눈에 띄는 곳에 있었다. 딱 한 걸음만 더 가보았으면 스스로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길을 잃고 당황해서 조급한 마음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픈 마음부터 앞서게 했다.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고 했던가. 조급함이 시야를 좁게 했고 불안감에 표식을 놓치고 말았다. 분명 거기 있었을 리본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이 민망하면서도 안도감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다시 전화를 거는 일은 없었다. 길을 잃었을 때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믿고 당황하지 않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럴 땐 잠시 멈춰 서서 가빠오는 숨을 고른다. 그리고 자신에게 해결 방법을 떠올릴 시간을 주어야 한다. 스스로 길을 찾아보려는 노력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낼 수 있는 법이다.
지금은 스마트폰 앱으로 위치를 쉽게 확인하고 길을 찾을 수 있지만 웬만하면 앱을 켜지 않는다. 여전히 종이 지도를 보며 주요 지점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을 파악해 본다. 길을 많이 잃어봤기에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제는 길을 잃어도 제법 여유로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