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서로 묶여야 할 때

by 노란고구마


저녁부터 거센 비가 예고되었다. 이런 날씨에 걸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아직 바람이 잠잠한 이른 오전에 문 밖을 나섰다. 긴 코스는 무리일 듯 싶어 숙소 앞 서귀포의 새섬과 천지연을 잇는 새연교를 다녀오기로 했다.


벌써부터 제대로 서 있기 힘들 만큼 강풍이 몰아친다.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갈매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날개를 접고 앉아 있다. 이런 강풍 속에서는 갈매기들도 날아오르기가 버거워 보인다.

아직 날개를 접지 못한 몇몇 갈매기들이 하늘을 떠다닌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바람에 밀려갈 뿐이다. 갈매기들은 바람과 맞서지 않고 그저 날개를 펼치고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다. 자연에 적응하며 터득한 저들만의 노하우일 것이다.


흔히 기회가 오면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물살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반대라면 갈매기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듯이 그때는 잠시 노를 내려놓고 쉬어야 한다. 거친 물결에 저항하며 힘을 빼기보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물결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힘을 모아두어야 한다.


그 앞 항구에서는 어부들이 배 사이를 오가며 밧줄을 묶느라 분주하시다. 바람이 강해지고 파도가 높아지면 배 한 척은 파도에 쉽게 흔들리지만 여러 척을 하나로 묶어두면 그만큼 무게가 무거워져 세찬 물결에 떠내려가지 않게 서로를 지켜준다고 한다.


서로를 단단히 묶어두면 서로 부딪쳐 부서지는 것도 막아준다. 그냥 두면 배들이 각자 제멋대로 움직이다가 서로를 세게 들이받을 수 있다. 배 사이에 타이어 같은 완충제를 끼우고 단단히 밀착시켜 묶으면 배들이 한 몸처럼 같이 움직이면서 충격을 흡수한다.


살다 보면 태풍과 같이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있다. 그럴 때는 때로 처음 보는 타인과도 기꺼이 손을 잡고 뭉쳐야 한다. 배 사이에 끼는 타이어처럼 서로 부딪쳐 상처 입지 않도록 완충제를 사이에 두고,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홀로 떨어져 버티다가는 결국 혼자 부서지고 만다. 함께이기에 예상할 수 없는 거친 흔들림도 기어이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섬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다리 아래를 보니 아까보다 더 많은 갈매기들이 모여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다.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에너지를 아끼는 모양이다. 이런 날씨에는 혼자보다 여럿이 낫다는 걸 갈매기들은 본능적으로 체득했나 보다.

나 또한 모든 일정을 멈추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올레길을 걷는 여행자들과 함께 따뜻한 저녁을 먹으며 거센 바람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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