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그 자리에 있어 아름다운 것

by 노란고구마


우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섬에서 섬으로 배를 타고 가는 길밖에 없는데 성산포항에서 15분 남짓이면 우도에 도착한다. 갑판 위에서 멀어지는 성산일출봉을 뒤로하고 소처럼 평온하게 누워있는 우도를 바라보며 이번에는 또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설렜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항구 앞 렌트 가게로 관광객들이 몰려간다. 미니 전기차나 자전거를 빌려 해안도로를 따라 두세 시간 동안 주요 명소를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광 코스다. 북적거리는 가게를 지나 옆길로 들어서니 한적한 올레길이 나타났다.


제주 올레 1-1코스는 섬 안의 섬을 걷는 길이다. 본섬의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정규코스의 부록처럼 만들어진 길이다. 우도를 한 바퀴 크게 도는 순환코스로 느린 걸음으로 여유롭게 걷다 보면 대략 네다섯 시간이 걸린다.


소머리를 닮은 우도봉에 오르니 성산일출봉과 제주 본섬이 푸른 바다와 함께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검은 모래가 깔린 검멀레 해변에서는 병풍처럼 둘러싸인 거대한 기암절벽에 압도당하기도 했다. 소박한 마을 어귀를 지나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코스의 막바지인 서빈백사에 다다랐다.

눈부시게 하얀 몽글몽글한 알갱이들이 일반적인 모래나 산호 파편이 아니다. 바닷속에서 자라는 홍조류가 하얗게 굳어 만들어진 ‘홍조단괴’다. 거친 파도에 수백 년 동안 휩쓸리고 구르며 조금씩 커진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한다. 홍조단괴로만 이루어진 해변은 우리나라에서도 이곳이 유일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드물어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마치 지중해의 어느 해변을 옮겨놓은 듯했다. 왜 제주도민들이 이곳으로 여름휴가를 오는지 알 것 같다. 본섬에서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다. 모래보다 굵고 단단한 단괴를 밟을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가 났다. 그 생경한 감촉과 소리가 재밌어 해변을 아이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해변 곳곳에 돌 하나라도 가져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외부로 유출하다 적발되면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파도에 밀려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지만 그 규모가 점점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주요원인으로 기후변화와 해안가 인공구조물 설치, 관광객의 무단반출 등이 꼽힌다.

수천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풍경이 수십 년 안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니 다음에는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 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것이 있다. 어릴 적 기념이라며 바다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는 며칠 책상 위에 놓여있다가 결국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그 풍경을 간직하고 싶다는 순간의 욕심으로 주워왔지만 제 자리를 잃은 자연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자연은 그 자리에 머물 때 본연의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사람의 손길에 훼손되지 않은 온전한 자연이 아닌가 싶다.

여러 각도로 사진을 실컷 찍고 나서 가만히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며 눈과 마음속에도 가득 담아두었다. 사진을 볼 때마다 한없이 평화로웠던 그날의 감정이 생생히 떠오른다. 굳이 자연의 자리를 빼앗지 않아도 사진 한 장이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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