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휴일 D+7

2017년 2월 1일 (수)

by 최용경
# episode 1. 우피치 박물관에서 맞이한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아침
# episode 2. 우여곡절 끝, 로마에 도착하다.
# episode 3. 여행에도 쉼이 필요하다.



# episode 1. 우피치 박물관에서 맞이한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아침


역시 시차 적응은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아침에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6시쯤 눈을 떴다. 어제 못 간 우피치 박물관이 못내 아쉬웠는데,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8시 반쯤 나와 우피치 박물관을 향했다. 내게 피렌체 길은 여전히 복잡해서 도보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30분을 헤매다가 겨우 도착했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미리 예약해둔 기차 때문에 서둘러 우피치 박물관을 감상해야 했다.


우피치 박물관은 여러모로 훌륭한 갤러리였다. 대학교 미술사 시간에 배운 유명한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었고, 아르노 강을 끼고 아름답게 펼쳐진 피렌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끄는 작품 중에서는 역시 보티첼리의 환상적인 색감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아름답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우피치 박물관에서 내려다보는 아르노 강


우피치 박물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유명한 세 예술가의 어떤 작품도 아닌, 갤러리 한 켠에 전시된 'Head of Sleeping Ariadne'이다. 한 건축물에 붙어있던 'Sleeping Ariadne'가 머리만 떨어져 분실됐다가 발견되어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한 것. 원래 가운을 입은 전신상이었다는 것은 작품이 붙어있던 건축물을 그린 다른 회화 작품을 보고 알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Sleeping Ariadne'의 이야기가 워낙 유명해 조각상이 다양한 버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충분히 추측 가능했겠지만, 카메라가 없던 시절의 훼손된 작품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나 했더니 결국 정답은 그 시대의 광경을 기록해둔 회화였다. 이래서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고 기록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피치 박물관에서 본 'Head of Sleeping Ariadne'


아리아드네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본인의 조각상이 머리만 따로 떨어져 전시가 되고 있는지, 연인 테세우스가 그녀가 잠든 사이 그녀를 버리고 떠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쌔근쌔근 평안하기만 했다.



# episode 2. 우여곡절 끝, 로마에 도착하다.


박물관에서의 관람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10시 40분이었다. 헉! 기차는 11시 24분 출발인데. 마음이 급했다. 평소에 신던 탐스가 비에 젖는 바람에 5센티 짜리지만 힐을 신고 박물관에 갔기 때문에 이미 발이 좀 아팠다. 통증을 무릅쓰고 잘 알지도 못하는 피렌체 길을 걷다가 뛰다가 했다. 11시쯤 되어 숙소에 도착하였고,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Sylvia와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서둘러 피렌체 역으로 향했다. 피렌체 역으로 뛰어가는 길에 온갖 생각이 스쳤다. 여행 첫날 저지른 SIM 카드 사기 사건도 떠올랐고, 내 인생에서 철없이 굴었던 기억도 스쳤다.


‘넌 또 철없이 35 유로를 날리는구나.' 반은 포기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다행히 피렌체 역에 도착했고, 시간은 11시 20분. 세이프였다. 기차에 올라타 자리를 찾아 앉으니, 이제야 벌렁거리는 심장이 안정을 찾았다. 땀으로 범벅된 이마를 닦고, 친구들에게 나의 성공적인 기차 탑승기를 알리다 보니 ‘기내식’이 나왔다. 뛰느라 배고팠는데 마침 잘 됐다 싶어 여유롭게 커피와 함께 레몬 쿠키를 먹었다.


트레인에서 준 '기내식'


곧 내려야 할 Tiburtina 역에 도착했다. 짐을 챙겨 내리려고 문 앞에 섰는데, 문이 안 열렸다. '이상하네?’ 문을 당겨보기도, 밀어 보기도 했다. 여전히 문이 안 열려서 잠시 기다려 보았는데 갑자기 기차가 출발했다. 하… 또다시 좌절의 순간이 찾아왔다. 다음 역인 Roma Termini 역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문 옆에 문열림 버튼이 있었다. 허망감을 추스르고 Roma Termini 역에 내려서 열심히 Tiburtina 역에 돌아가는 메트로를 탔다. 제법 무거워진 짐 덕에 로마의 중심가에서 크로스핏을 경험했다.


시련을 가져다준 트레인 문열림 버튼


Tiburtina 역에서 숙소까지 가깝겠지 생각하고 구글맵을 켰는데, 버스와 도보 합쳐서 30분은 더 가야 했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순간이었다. 기억을 돌이켜 보니 첫날 로마에서 묵은 숙소도 버스를 타고 더 들어갔었던 게 떠올랐다. ‘그래, 실망하지 말자.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숙소가 위치한 동네. 할렘 같은 그레피티가 더 많았지만, 길 찾느라 정신이 없어 사진을 못찍었다.


숙소를 향해 가는 버스는 점점 할렘을 연상시키는 동네로 나를 이끌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할렘 같은 동네에서 내려 숙소까지 가는 길. ‘MORE DRUG’라고 쓰인 그레피티도 간혹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했고,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Vittoria는 내 얼굴을 보고 걱정의 눈길을 보냈다. 알고 보니, 숙소는 내가 잘못 내린 Roma Termini역과 더 가깝단다. 굳이 Tiburtina 역에 돌아와서 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허망감이 몰려왔지만, 이제는 안도감과 함께한 허망감이었다. 이상하게도 격한 운동 후의 뿌듯함을 동반한 근육통 같았다.


# episode 3. 여행에도 쉼이 필요하다.


피렌체에서 로마로 오는 길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험난했기에 ‘나만의 침대’가 배정되자마자 고된 등을 침대에 허락했다. 저녁에 예약해둔 마이리얼트립 일정도 취소하고 휴식을 취하는 게 모든 면에서 나을 거라 판단했다. 역시 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마이리얼트립 가이드분이 내일 오셔도 된다고 친절하게 답변해주신 것이다. 벌써 7일째 휴일이자 여행인데, 내게도 여행으로부터 쉼이 필요했다. 오늘이 그 쉼의 날이었고, 여행 중간에 찍은 쉼표는 무엇보다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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