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지 Mar 08. 2022

이름 is 뭔들

그저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모나, 이준이 엄마 아니여?”

“어머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멀리서부터 긴가민가 했네. 오랜만이야!”


상가 학원 앞에서 마주친 반가운 얼굴!

우리 동네에서 저를 처음으로 집으로 초대해주신 태우(가명) 할머님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따님이 일하는 동안 손주를 봐주신다는 할머니는 어찌나 성격이 좋으신지 놀이터 첫 만남에서부터 단숨에 저와 친구가 되었어요. 한참 수다를 떨다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와 할머님 손주의 공통점을 발견하고는 그날 바로 집으로 초대를 해주셨지요. 한사코 괜찮다는 말에,

     

“아유 괜찮아. 잠깐 놀다 가.”


며 앞장서시는데, 어찌나 리더십이 넘치시지 어느새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할머님은 아이들이 노는 동안 손수 커피도 내려주시고 간식으로 먹으라며 달콤한 쿠크다스도 여러 개 가져다주셨어요. 혹시라도 자동차로 아이들끼리 싸움이 날까 봐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는 제게 그녀는 말했습니다.   


“이구, 그냥 내비 둬. 얼른 이 커피부터 좀 마셔봐.”    


@pixabay


그러고는 한동안 못 뵙다가 정말 오랜만에 딱! 마주친 겁니다.


"참, 저번에 멀리서 따님이 아이 손잡고 걸어가는 거 봤어요. 엄청 미인이시던데요?"


할머니의 동공이 커지더니 손사래를 치십니다.


"아이고. 아니야, 예쁘긴 뭐가 예뻐. 우리 이준이 엄마가 더 이뻐."


아닌데..? 할머님을 닮아 따님은 정말로 눈에 띄는 미인이었습니다.

그래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 저도 활짝 웃어봅니다.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두 아이는 같은 유치원에 갈 예정이었어요.

덕분에 새 학기가 되고 유치원 입구에서 반가운 얼굴을 곧 또 뵐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언제나 할머니께서 저를 발견해주셔요.

      

“오... 맞네 맞어! 이준이 엄마 맞지? 아이 기다리는 거야?”

"어머나! 네 안녕하세요! 태우 데리러 오신 거예요?"

"응"

     

훤칠한 키의 그녀는 오늘도 에너지가 넘칩니다.

아이들이 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자 먼저 한 말씀을 하십니다.


“아이코!! 힘들어.”     


놀라서 바라보니, 양팔 스트레칭을 하며 말씀하십니다.     


“아, 아니. 아이 데리러 오는 게 힘들다는 건 아니구, 오늘 운동을 너무 빡시게 했거든.”     


곧이어 아령 드는 시늉을 보여주시니 귀여우신 모습에 웃음이 나옵니다.

열심히 헬스 하시는 할머니! 정말 멋지지 않나요?

     

집에 들어온 남편에게 아 맞다! 하며 오늘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있잖아. 태우 할머니 기억하지? 나 초대해주신 분. 그분이랑 요즘 유치원에서 매일 만난다?”      

“오 정말? 잘 됐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있어. 나를 볼 때마다 이준이 엄마라고 부르셔.”     

“그래? 그럼 이든이 엄마라고 말하지 그랬어?”   

  

그러고 보니 그동안 한 번도 이준이 엄마가 아니라 이든이 엄마라고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할머니의 매력에 푹 빠져 정신을 못 차렸기 때문일까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말할 타이밍을 놓쳐서 일까요?


아마도.. 그럴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말씀드리겠지만 할머니께서 저를 이준이 엄마라 부르시든, 숏 엄마라 부르시든, 옆 동 엄마라 부르시든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만 하면 웃음 짓게 하는 태우네 할머께서

그저 오늘도 밝고 씩씩하게, 웃는 날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침 명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