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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지 Apr 26. 2022

손 내밀 때 잡아줄 수 있는 사람

우연히 다가오는 카이로스의 선물

오늘따라 아이가 일찍 일어났습니다. 두 시간은 더 자야 하는데... 벌떡 일어나 “아침이다! 아침이 됐다!”를 외친 아이는 “엄마! 일어나! 아침이야!” 하고 거실에서 저를 부릅니다.


마음은 ‘그래. 먹을 거 뭐 줄까?’ 하고 있는데 몸은 한없이 이불에 묻혀있습니다. 기다리던 아이가 머리맡으로 다가와 블라인드를 휘익 열며 말합니다.  

   

“엄마! 이것 봐. 아침이야. 얼른 일어나. 뽀뽀해주까?”

“어.... 엉.... 근데 엄마 넘 졸려서... 쫌만 더 자면 안 될까?”

“엄마 아빠 어제 늦게 자쒀?”     


거실에 혼자 있는 아이를 생각하니 더 이상 누워있을 수가 없어 힘내어 나가 봅니다. 아침을 챙겨주고 식탁으로 가 오늘 자 성경 일독을 합니다. 블록에 푹 빠져있는 아이를 보고는 실내 자전거로 향했습니다. 30분 운동하고 나니 땀도 나고 기분이 좋습니다. 아이를 챙기면서도 오늘 세운 계획을 지킬 생각에 마음이 바쁩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는 골프 연습을 가야 합니다. 책 쓰기를 핑계로 몇 달 동안 안 갔더니 드디어 이든아부지의 잔소리가 등장했습니다. 저를 키운 건 남편의 잔소리가 8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쩌면 저는 마음 졸이면서 잔소리가 나올 타이밍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 등원을 해주고 곧장 달려가 연습을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야?” “응. 나 골프 연습.” “알았어. 금방 갈게.”      


남편을 만나고는 곧이어 먼저 간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다음 일정이 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꾸만 기다려달랍니다. 세 번만 더 칠 테니 같이 산책을 하자고 합니다.     


“진작 말하지. 나 오늘 스케줄 있는데.”

“아직 시간 있잖아. 30분만 걷자.”     


정해놓은 계획대로 움직이고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야 마음이 편한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산책’이라는 일정이 오전 중에 훅 들어오니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좋아.” 하고는 오케이 하였습니다.      

햇살이 좋습니다. 쓱 내미는 남편의 손을 잡고 장터를 지나 산책길로 갔습니다. 나무도 푸르르고 하늘도 예쁘고 흐르는 도 아름답습니다. 옆에 계신 분도 어쩐지 경쾌해 보입니다.   

  

“와 좋다. 그치?”   “어. 좋네.”     


매일 바빠 새벽 늦게나 보는 남편인데 그러고 보니 이 시간에 둘이 손잡고 산책하는 건 근래 들어 처음입니다. 몇 걸음을 걷다 보니 남편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일에 대한 근황도 들려주고 고민거리도 이야기합니다. 시시콜콜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아이 같기도 합니다. 가만히 듣다 보니 이 순간이 좋습니다.      


허나 무드 없는 아내는 한참을 걷다가 그래도 예정된 시간은 지켜야 한다며 중간에 큰길로 빠진다 말합니다. 남편은 그냥 같이 가자고 합니다. 수긍이 빠른 저는 또 시간을 보니 괜찮은 듯하여 경보 걸음으로 함께 돌아왔습니다.      


언젠가 카이로스의 시간에 대한 목사님의 말씀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 할머니께서 젊은 시절 남편과 시간 동안 손을 꼭 잡고 걸었던 기억으로 평생 혼자서 자식을 키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남편이 손을 잡아준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할머니에게는 그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카이로스의 시간이란 이렇게 평생을 살아갈 힘을 주는 시간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 만약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과 산책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소소한 추억을 만들지 못했겠지요.. 지금 제 앞에 놓인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을 보며 정말 시간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란 누군가 손 내밀었을 때 기꺼이 쉼표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나에게 오늘 단 하루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당장 하고 무엇을 멈출 것인지.

저 하늘 위로 올라가 멀리서 바라봅니다.


카이로스의 선물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순간

이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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