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 때 잡아줄 수 있는 사람
우연히 다가오는 카이로스의 선물
오늘따라 아이가 일찍 일어났습니다. 두 시간은 더 자야 하는데... 벌떡 일어나 “아침이다! 아침이 됐다!”를 외친 아이는 “엄마! 일어나! 아침이야!” 하고 거실에서 저를 부릅니다.
마음은 ‘그래. 먹을 거 뭐 줄까?’ 하고 있는데 몸은 한없이 이불에 묻혀있습니다. 기다리던 아이가 머리맡으로 다가와 블라인드를 휘익 열며 말합니다.
“엄마! 이것 봐. 아침이야. 얼른 일어나. 뽀뽀해주까?”
“어.... 엉.... 근데 엄마 넘 졸려서... 쫌만 더 자면 안 될까?”
“엄마 아빠 어제 늦게 자쒀?”
거실에 혼자 있는 아이를 생각하니 더 이상 누워있을 수가 없어 힘내어 나가 봅니다. 아침을 챙겨주고 식탁으로 가 오늘 자 성경 일독을 합니다. 블록에 푹 빠져있는 아이를 보고는 실내 자전거로 향했습니다. 30분 운동하고 나니 땀도 나고 기분이 좋습니다. 아이를 챙기면서도 오늘 세운 계획을 지킬 생각에 마음이 바쁩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는 골프 연습을 가야 합니다. 책 쓰기를 핑계로 몇 달 동안 안 갔더니 드디어 이든아부지의 잔소리가 등장했습니다. 저를 키운 건 남편의 잔소리가 8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쩌면 저는 마음 졸이면서 잔소리가 나올 타이밍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 등원을 해주고 곧장 달려가 연습을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야?” “응. 나 골프 연습.” “알았어. 금방 갈게.”
남편을 만나고는 곧이어 먼저 간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다음 일정이 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꾸만 기다려달랍니다. 세 번만 더 칠 테니 같이 산책을 하자고 합니다.
“진작 말하지. 나 오늘 스케줄 있는데.”
“아직 시간 있잖아. 30분만 걷자.”
정해놓은 계획대로 움직이고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야 마음이 편한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산책’이라는 일정이 오전 중에 훅 들어오니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좋아.” 하고는 오케이 하였습니다.
햇살이 좋습니다. 쓱 내미는 남편의 손을 잡고 장터를 지나 산책길로 갔습니다. 나무도 푸르르고 하늘도 예쁘고 흐르는 물도 아름답습니다. 옆에 계신 분도 어쩐지 경쾌해 보입니다.
“와 좋다. 그치?” “어. 좋네.”
매일 바빠 새벽 늦게나 보는 남편인데 그러고 보니 이 시간에 둘이 손잡고 산책하는 건 근래 들어 처음입니다. 몇 걸음을 걷다 보니 남편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일에 대한 근황도 들려주고 고민거리도 이야기합니다. 시시콜콜 웃으며 말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아이 같기도 합니다. 가만히 듣다 보니 이 순간이 좋습니다.
허나 무드 없는 아내는 한참을 걷다가 그래도 예정된 시간은 지켜야 한다며 중간에 큰길로 빠진다 말합니다. 남편은 그냥 같이 가자고 합니다. 수긍이 빠른 저는 또 시간을 보니 괜찮은 듯하여 경보 걸음으로 함께 돌아왔습니다.
언젠가 카이로스의 시간에 대한 목사님의 말씀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 할머니께서 젊은 시절 남편과 한 시간 동안 손을 꼭 잡고 걸었던 기억으로 평생 혼자서 자식을 키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남편이 손을 잡아준 그 한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할머니에게는 그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카이로스의 시간이란 이렇게 평생을 살아갈 힘을 주는 시간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 만약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과 산책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소소한 추억을 만들지 못했겠지요.. 지금 제 앞에 놓인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을 보며 정말 시간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란 누군가 손 내밀었을 때 기꺼이 쉼표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나에게 오늘 단 하루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당장 하고 무엇을 멈출 것인지.
저 하늘 위로 올라가 멀리서 바라봅니다.
카이로스의 선물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순간
이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