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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지 Apr 14. 2022

아이에게 배우는 엄마

토다닥! 화장실에서 소리가 납니다.  

잽싸게 달려가니, 아이가 세면도구를 꺼내려다 물건을 떨어뜨린 것 같습니다.     


“이거, 칫솔 누가 떨어뜨렸지?”     


땅바닥에 떨어진 칫솔을 보자마자 욱하여 짐짓 무서운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0.1초도 안 되어 아이의 맑고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든이가!”     


‘아, 그렇지... 여기 너 말고 떨어뜨릴 사람이.. 없지?’


다 알면서도 물어본 엄마의 거짓된 질문은,

한점 부끄럼 없이 정직한 아이의 대답에 KO 됩니다.


머쓱해진 엄마는 기꺼이 허리 숙여 주운 뒤 깨끗하게 닦아 올려두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질문이 좀 상합니다.




잠자기 전 아이에게 읽고 싶은 책을 들고 오라고 합니다.

얼마 전 아이는 노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고 싶은 바람을 담은 듯 

두꺼운 어린이 백과사전을 들고 왔습니다.     

보자마자 뜨악했지만 약속은 지켜야 하니 함께 앉아 책을 읽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팔도 아프고 잠도 쏟아지고 하여 머리를 좀 썼습니다.

중간중간 한 번에 두세장 씩 묶어서 슬그머니 넘기는 고도의 기술을 쓴 것이죠.

그런데, 그때마다 어찌 알았는지 딱 걸리고 말았습니다.

'헉. 예리한 친구구만.....'


페이크는 포기하고 기왕 읽어주는 거 최선을 다하자며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어랏! 반가운 페이지를 만났습니다.

가을에 제가 고이 넣어둔 낙엽이 까꿍! 하고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아주 납작하게 눌린(!) 그 모습이 어찌나 완벽하던지 저는 보자마자 탄성을 질렀습니다.

“와! 이것 봐! 넘 예쁘다!”

    

그런데, 원래 이쯤 되면 같이 우와! 하는 소리가 들려와야 하는데

옆에 계신 분의 공기의 흐름이 우째 예사롭지 않습니다.

급기야 조금은 화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엄마, 나뭇잎 이거 왜 여기에 뒀어? 밖에다 놔야지!”     


순간 당황한 것은 저였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다시금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는 낙엽이 있어야 할 곳은 본디 나무가 있던 그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굳이 그 친구를 데리고 와 빽빽한 책 사이에 낑낑 하고 끼워두었으니 아이로서는 황당했던 것입니다.

     

어젯밤 문득 이 낙엽이 생각났습니다.

혹시 한 달 사이 아이의 생각이 달라졌을까.. 싶어 해당 페이지를 펼쳐 물어보았습니다.

이거 낙엽 그대로 두어도 될까..?


     

여전히 아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습니다. 밖에다 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유치원 가는 길에 두 장의 낙엽을 흙에다 가져다 주기로 하였습니다.

혹시라도 잊을까 식탁에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한 번 분명히 들었던 아이의 의견을 왜 또 물어본 걸까요?

겉으로는 순수한 질문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조금은 더 내 뜻대로 끌고 가려는 마음이 있었음을 느낍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어본 횟수가 벌써 몇 번째인지,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행하는 부끄러운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습니다.     

    

오늘도 아이에게 배우는 엄마입니다.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의 지으신 것이니라 (잠언 20:11-12)                 



PS) 비가 내리더니 어느새 신록의 풍경이 되었네요. 벚꽃이 지기 직전 아이와 산책하며 담은. 어느덧 추억이 되어버린 짧은 영상을 함께 나누어봅니다. ^^ 모쪼록 오늘도 행복하고 웃음 가득한 나날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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