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이사 오신 날할머니를 처음 뵈었다. 할머니께서는 인사를 나눈 뒤 조심스레 물어보셨다.
“저기 혹시 줄자 하나만 빌려줄 수 있어요?”
그렇게 처음 인사를 나눈 인연으로 아이가 유모차 타고 다닌 시절부터 오고 가며 가족처럼 인사를 나누었다.
“이든아, 이든아…”
여름날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이따금 지나가시다 먹을 것을 전해주곤 하셨다. 멜론과 빵과 과자들... 그때마다 나도 꼭 무언가를 드리곤 했는데 답례를 받으시는 할머니의 영롱한 눈망울을 보며 이 눈빛이 기뻐하시는 건지 정말 괜찮다고 하시는 건지. 내가 지금 정말 잘한 일인지 헷갈릴 정도로 할머님의 선의가 너무나 순수하여 내가 혹시 이를 몰라준다고 오해하시면 어쩌나 보답을 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다.
“이든아, 이거로 까까 사먹어. 새해 복 많이 받거라.”
아이 손에 쥐어주신 세뱃돈에 한사코 사양하다 겨우 받은 날. 집에 있는 가장 좋아 보이는 선물을 들고 다시 찾아가 전해드렸더랬다. 그러나 내 계획은 실패였다. 다음날 아이가 아빠와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노오란 봉투에 담긴 용돈을 또 받아온 것이었다. 이걸 우연히 전해주려고 얼마나 복도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셨을까, 찡하며 일렁이던 날이었다.
한동안 마주치지를 못하다 정말 오랜만에 뵈었다. 할머니는 평소 고요한 표정과 겸손한 몸짓으로 종종걸음을 하시는데, 그러다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 눈망울이 반짝이는 호수로 변하셨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지요?”
“아이고 오랜만이네. 어떻게 지냈어요. 우리 이든이도 정말 많이 컸네.”
“네. 아고… 저 그런데 곧 이사 가요.”
호수의 물결이 너울거리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시며 잠시 이쪽저쪽 우왕좌왕하셨다.
“아이고. 아쉬워서 어쩌나...”
1층으로 내려와 다시 인사를 드리기 전 할머니는 지갑을 꺼내어 만 원짜리 두 장과 위에서부터 한사코 괜찮다고 말씀드린 과자를 아이에게 다시 주셨다. 못 이기는 척 받고 인사를 드리니, 다시금 겸손하신 몸짓으로 사라지신다.
유치원 가는 길. 아이가 말했다.
“엄마, 저 사람이 외할머니야?”
“응? 아니, 저분은 옆집 할머니야.”
다음날 장을 보며 할머니께 드릴 딸기를 샀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와 찾아뵌 처음 번엔 댁에 안 계셨다. 그러다 산책하고 돌아온 저녁. 불빛을 보고는 얼른 딸기를 들고 와 혼자 벨을 눌렀다. 아이와 같이 갈 때는 애를 앞세워 ‘이든이가 이거 드리고 싶대요.’ 하고 대화를 나누면 되는데, 혼자서만 대면하려니 어쩐지 좀 떨렸다.
“딸기가 맛있어 보여서 샀어요. 좀 드셔 보세요.”
“아이고 됐어. 뭐 이리 좋은 걸 사와.”
“에이 작은 거예요.”
“사과 좀 줄까?”
“아고 아니에요. 장 보면서 엄청 많이 사 왔어요.”
“아니 무슨 과일을 많이 샀는데, 그럼 훈제 계란 좀 줄까?”
“계란도 많아요. 진짜 괜찮아요. 편하게 드세요.”
언제나 최소한의 불만 켜있고 정갈하게 정돈된 할머니 댁은 그분의 성품을 짐작케 했다. 마스크로 더욱 시선이 가는 할머니의 눈망울이 더욱 투명하고 깊어 보였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도 모르게 뱃속의 아기도 이야기드리며 축하도 받고 축복도 받고 그러고 들어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우렁찬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외할머니 만나고 왔어?”
“아, 아니. 어어…”
언젠가 아이가 크면 눈망울이 깊고 맑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란다. 하고 말해줘야지 문득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정말 좋은 사람은 어릴 적부터 네가 기가 막히게 알아보더라고.그렇게 네 마음을 따르면 된다고…
그리 말해줘야겠다.
PS) 독자님들 작가님들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오랜만에 인사를 올립니다.. :)
그리웁고 드리고픈 말이 많이 낙엽에 부지런히 띄어보냈으면서도, 막상 마주하고는 말없이 포옹만 하게되는 그런 마음으로 편지를 띄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