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이 온다는 소식에 학교는 시끌벅적했다. 띵가띵가 놀던 시절에도 ‘정의란 무엇인가’ 저서만큼은 알고 있었으니, 다른 건 몰라도 이 강연회는 가야만 했다. 볕 좋은 오후 노천극장에는 학우들이 가득히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친구들과 강연 시간에 거의 맞추어 간 나는, 저 멀리 높은 계단 위로 올라가야 했다. 그래도 모든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꽤 운치 있는 자리였다. 연사가 영어로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점차 집중력이 흐려지면서 나의 시선은 마이클 샌델보다는 번역이 올라오는 모니터를 주로 향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문제가 하나 있었다. 교수의 유머에 다들 실시간으로 빵 터지며 웃을 때 키보드 속도를 기다려야 하는 나는 매번 한 박자 느렸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의 어깨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옳거니! 앞 사람의 고개가 젖혀지며 왠지 웃겠다 싶으면 나도 얼른 으하하! 낄낄! 따라 웃으며 겨우겨우 강의를 따라갔다.
솔솔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오후였다. 점차 노을져가는 햇살도 참 포근한 날이었다. 오홍 오늘 청재킷 코디 괜찮구먼. 강의 내용보다는 내가 대학생이 되어 이런 강의도 듣는구나 하는 요상한 자의식에 빠져있던 중, 귀를 사로잡은 마이클 샌델의 사례 발표가 있었다.
흥미로운 실험 연구 내용은 이러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정확한 사실 관계는 틀릴 수 있으나 커다란 골자는 이러했다.
유럽의 한 마을 사람들에게 이런 통보가 주어진다.
[연구 조사 결과 당신들의 마을이 쓰레기 매립장 건립에 가장 적합하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러고는 익명으로 설문을 실시한다.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선진국 다운 마인드 덕분이었을까.
결과는 많은 이들의 찬성표였다.
이어서 해당 기관은 이런 소식을 연이어 전한다.
[당신들의 결정에 감사하며, 쓰레기 매립장을 설치하는 대신 마을 각 가정마다 소정의 ‘비용’을 대가로 드리겠습니다.]
이 통보를 한 후로 마을 사람들의 의견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찬성률이 더욱 높아졌을까?
놀랍게도 매립지 건립에 찬성하는 비율은 뚝! 떨어져버린다. 심지어 그럴 거면 비용을 더 줘야 한다는 의견까지 등장한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사 오기 전 옆집 할머니와 참으로 감사한 추억을 많이 쌓았다. 마지막 헤어지기까지 할머니께서 얼마나 사랑을 많이 주셨던지, 이사 전날 가져다주신 호박전, 고기전을 먹으면서는 꼭 엄마가 해준 음식 같아 눈시울을 붉혔었다. 유난히 추웠던 이삿날에는 뜨거운 쌍화차와 유자차 열 개를 봉지에 넣어 가져다주셔서 결국 할머니의 눈을 보며 울고야 말았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나는 백화점에 가서 옆집 할머니께 드릴 겨울 장갑을 골랐다. 그 나이대 분들께 가장 인기가 좋다는 짙은 분홍빛 모직 장갑을 사서 포장하고는 아이 유치원 하원을 가기 전, 할머니 댁. 그러니까 내가 살던 집을 다시금 찾아갔더랬다. 그날 작은 선물 쇼핑백을 들고 가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볍고 행복했던지, 지금도 그날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침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린 날이었는데 임신 초기였지마는 그 위를 껑충껑충 뛰고 뱅뱅 돌며 춤을 추고만 싶었다. '이걸 받으면 기뻐하시겠지?' 이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벅차올랐다. 띵동! 선물을 드리고 나온 발걸음은 더욱 가벼웠다. 할머니의 미소를 마주한 점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기뻤던 것은 이제는 내가 이사 갔기에, 혹여라도 할머니께서 보답을 해주시지 않으셔도 된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만일 내가 이전처럼 바로 옆에 살고 있었다면 선물을 드리면서도 혹여라도 부담을 드린 건 아닐까 싶어 발걸음이 보다 무거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며칠 뒤 유치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할머니께서 우리 아이를 찾아와 엄마 번호를 알려줄 수 있는지 여쭈어보셨다는 것이다. 아휴. 정말 못 말리셔... 이번에도 사랑 더 드리기는 지고야 말았다.참기름과 과일과 깨와 드니 용돈까지.. 난 더 큰 선물을 받게 되었다. 그래도 덕분에 전화번호도 주고받고, 지금도 우리 옆집 할머님을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하고 따스해진다.
부족한 사람으로서 내가 참된 선의 100%를 행할 수 있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비록 내 안에서는 순수한 선의라고 믿는 일들 또한 깊이 들어가 바라보면 ‘나의 행복, 나의 위안’이라는. 알고 보면 나의 기쁨을 먼저 추구하는 바가 담겨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 내가 진정 사랑하여 아주 작은 것이나마 무언가를 전해드리고픈 분들만큼은 적어도 내가 전하는 작은 사랑을 그냥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받으시고. 자체로 행복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내'가 '너'에게, '네'가 '그'에게, '그'가 '그녀'에게가 아닌,
존재를 넘어서 사랑과 행복과 기쁨 그 자체만으로 서로 돌고 돌아 이름 모를 꽃들로 피어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