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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에 피어난 편지

by 이윤지


“나 여기 있어 하면 되잖아. 왜 뒤에서 울고만 있어?”


드라마를 보다가 답답한 가슴을 칠 때가 많았다.

등장인물이 할 말도 못 하고 눈물 흘리는 모습은 보기가 힘들었다.

그로 인해 사랑하는 연인은 헤어지고

좋은 의도로 행동한 사람은 온갖 오해를 받았다.


“엄마! 사실은 래서 그랬던거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되잖어."


저렇게 바보 같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드라마니까 가능한 이야기라고 흥분하며 말하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잔잔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크면 다 알게 된다는, 이상한 이야기만 했다.


엄마가 말하는, 다 컸다는 게 정확히 언제인진 모르겠지만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게 되니 내가 그러고 있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용기가 없어서.

힘들게 마음은 먹었는데

타이밍을 놓쳐 흘려보내는 말이 많았다.


그걸 뭐 꼭 일일이 말로 해야 하느냐고.

초연한 사람인 양 바람에 날려버리곤 했다.




드라마를 볼 때는 센 척했지만

말도 못 하고 뒤에 숨어 우는 사람은 나였다.


학창 시절 카네이션과 편지를 정성껏 준비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적어 놓은 것이 쑥스러워

몇 번이나 네기를 망설다.

끝내 책 사이 깊숙한 곳에 숨겨 놓고

구석에 처박힌 편지가 퍼서

문 뒤에 숨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이따금씩 편지를 꺼내 속으로 읽어보곤 했.

이렇게라도 하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달되지 않을까 바에 실어보냈다.


말 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정작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 말도 못 하는

바보 같은 나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부치지 못한 편지가 많다.


편지의 내용은

원망으로 시작했다 연민으로 채워졌다가

그래도 내가 너무했지,

사과의 말로 마무리된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잘 지내나요?

오겡끼데스까 한 마디만 남는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나니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는

축복의 기도만이 남아

문득 생각날 때마다 마음을 전해 본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너도나도 바람에 실어보낸 편지들이

하늘에 가득 은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구름 우체부들이 마음의 편지를 싣고

미안해요. 사랑해요. 고마워요를

신인들에게 내려주는 것이다.



어느 날 비가 그치고 바라본

집 앞의 꽃 한 송이는,


누군가 빗방울로 건네온

못다 전한 편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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