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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한 닢, 나의 프라다백

by 이윤지

나의 첫 명품백은 프라다 사피아노 가방이었다.

2012년부터 틈날 때마다 백화점 명품관을 서성였다.

명품 가방이 갖고 싶었다.

고민 끝에 해가 바뀌자마다 24개월 할부로 검은색 프라다백을 구입했다.

일 하면서 들기에 깔끔하고 예뻐보였다.


성공하고 싶었다. 부자가 되고 싶었다.

품위 유지를 위해 최소한 이 정도 투자는 정당하다고 합리화했다.

가방 크기의 두세배나 되는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 가족에게 새로 산 백을 조심스레 보여주었다.

엄마가 먼저 들어야 하는데 미안했다.

이 가방을 들고 성공해서 엄마에게 더 좋은 백을 사드리겠노라 다짐했다.


그날 부모님은 경제적인 이야기로 서로 얼굴을 붉히셨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무슨 명품백을 들겠냐며 환불하겠다고 울며 말했다.

엄마는 처음으로 크게 소리치며 절대로 반납하지 말고 잘 들고 다니라고 했다.

그 일이 있고 한 달 후 엄마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학창 시절에도, 어른이 되어서도 내 마음은 늘 행복과 감사로 가득차 있었다.

“세상은 아름다워.”라는 말을 자주 했고 그때마다 엄마는

네가 세상을 아름답게 봐주어 행복하다고 했다.

엄마와 삼청동을 걸으며 알록달록 예쁜 수제 가방과 구두를 사는 시간이 즐거웠다.

몇몇 진열된 상품들이 명품의 카피인 줄은 전혀 몰랐다.

대학생 때 친구가 들고 오는 바둑판무늬 가방을 보며

어른 가방 같은 백을 왜 드는지 궁금했었다.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게 루이뷔통이었다는 걸.

엄마와 제일평화에서 산 옷들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며 입고 다니던 나는

진짜 명품을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열 벌 살 돈을 모아 한 벌 제대로 된 옷을 샀고

명품 매장을 거닐며 적어도 좋은 옷을 알아는 보기 위해 노력했다.

고급스러운 향기와 세련된 인테리어 속에서 미래를 꿈꾸는 시간을 보냈다.


악착같이 노력하여 간절히 원하던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CEO와 직급이 높은 정치인들을 많이 만났다.

리더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부자의 눈빛과 마음가짐, 습관은 어떠한지 열심히 관찰하며 배웠다.

매일 새벽 6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전신 거울을 보며 운동을 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혼잣말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힘들어 주저앉고 싶은 날의 연속이었다.

잠시만이라도 엄마 품에 쏙 들어가 새우처럼 웅크리고 누워 쉬고 싶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땐 바위 밑에 숨어서 살아만 있자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맡은 일에만 집중했다.

엄마 생전 마지막 날 인사동에서 산 저렴한 코트를 입고 속상해하며 나가던 그녀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잡초처럼 일어나서 버텼다.


바위 아래서 견디던 날도, 수면 위로 올라와 빛나던 날에도

내곁엔 항상 검은색 프라다백이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들다보니 점점 빛깔이 바래갔다.

그때마다 압구정역 가방 수선집에 갔다.

새 것처럼 변신해준다는 말에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염색칠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가방끈을 잡은 손바닥이 까맣게 물들었다.

밝은 옷을 입은 날엔 팔을 멀리 들어야 했다.

가방이 옷에 조금이라도 부대끼면 금세 물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겐 이 녀석뿐이었다.

실은 다른 가방도 없었다.


그렇게 프라다백과 5년을 함께 했다.

매일 들고 다녔으니 대략 1800번 이상은 마주한 셈이다.

이 녀석과 전국 방방곡곡 촬영을 다녔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빛이 바랜 손잡이는 구두에 부르튼 내 발과도 닮아 있었다.


2017년 봄 결혼식을 앞두고 나는 멋진 디올백을 선물 받았다.

남편은 편하게 들으라고 큼지막한 쇼퍼백도 사주었다.

가격으로는 프라다백보다 아래인데,

이 녀석을 어찌나 오래 들었는지 중저가 쇼퍼백이 훨씬 빛나 보였다.


혼자 지하철을 타고 오던 날,

나는 녀석을 커다란 휴지통에 처박아 버렸다.

그러고는 집에 오면서 엉엉 울었다.


미안하고 고맙고 아련했다.

그런만큼 앞으로 잘 살아보자고 굳게 마음 먹었다.


내게 프라다백은 동전 한 닢었다.


그 쥐어보고 싶던 동전 한 닢과 긴 여행을 하며

비바람도 마주치고 함께 앉아 예쁜 무지개도 보았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는 녀석을 꼭 쥐고 버티면서

깨어나고 다시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지금 나에겐 고야드백도 샤넬백도 있다.

그런데 거의 들고 다니는 건 사은품으로 받은 검은 천가방이다.

수납도 넓고 편하고 아이 짐 넣는 데는 그만이다.

디올 백은 자주 들지 않아 마전에 팔았다.

샤넬백은 무척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그뿐이다.

지금은 검정 봉다리를 들고 다녀도 창피하지 않다.


살면서 가져보고 싶은 동전 한

어떻게든 쥐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다.

치열하게 가져보고 나니,


없어도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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