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일찍 잠들어 부엌 정리를 하려는데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열을 재달라고 했다. 체온계를 눌러보니 38도였다.
주말에 문 여는 약국을 찾아 달려갔다. 몸살 약을 받아와 물과 함께 건네주었다.
열을 한 번 더 재고는 성경책을 보러 가려는데, 갑자기 옆에 앉아 보란다.
어두컴컴한 거실에 둘이 마주 앉았다.
아파트 앞 동의 불빛만이 어렴풋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든이 뭐해?”
“자고 있지.”
“이든이 보고 싶다.”
“그럼, 가서 봐.”
너무 무뚝뚝했나?
잠시 후 남편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당장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언젠가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다면...
지금 이든이 모습이 계속 생각날 것 같아.”
다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계속되었다.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도 울고 있었다.
나에게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도 역시 아이의 해맑은 모습만이 떠오를 것 같았다.
“요즘 바쁘고 책임감이 크게 느껴져서 일에 많이 집중했는데
아프고 보니 별 생각이 다 드네.
걸어갈 힘조차 안 나니까 너무 속상하더라.
무엇보다 애한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슬펐어...”
나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는 으리으리한 호텔 79층에서 멋진 대화를 나누었더랬다.
바로 다음 날 이러한 시간을 주신 주님의 뜻이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하지. 바쁜 와중에 아이랑도 잘 놀아주고.
그러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 말이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조용히 전해주고는
다시 성경을 펼쳤다.
성경일독 오늘은 156일째의 날로 욥기를 읽고 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며 큰 부자로 건강하게 살던 욥은,
하나님의 허락 아래 내려진 사탄의 시험으로
하루아침에 자식과 재산과 건강을 모두 잃었다.
아름다운 언어로 늘 주를 찬송하던 욥은,
육신의 아픔을 느끼며 이제는 매일 주를 저주하고 있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믿고 순종해야 하지마는
욥의 처지에 놓인다면 나도 원망하며 울분을 토하지 않을까.
인간은 참 나약하구나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다가오는 모든 일에는 주님의 큰 뜻이 있음을.
훈련을 통해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며
오늘 하루도 감사하자고 생각했다.
이마 위에 올려둔 얼음이 모두 녹을 즈음 남편의 열도 떨어졌다.
체온계에 초록불이 켜지자마자 그가 건넨 말은
내일 아이와 근교로 놀러 가자는 것이었다.
마음이 짠 했다.
모성애가 강하냐 부성애가 더 강하냐를 떠나,
가족 부양에 대한 아빠들의 부담감과 사랑이 크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 아버지와 아버님의 무게까지 내가 모두 헤아릴 수는 없지만
다시금 그저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내일의 태양이 뜨고 하루가 다시 시작되면
무사히 오늘을 맞이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바로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어리석은 단기기억장치를 좀 극복해보겠노라
오늘의 눈물을 끼적여본다.
그대여, 아프지 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