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말

20년이 흘러도 용기를 주는 한마디

by 이윤지

치열하게 공부던 중학교 시절 부푼 꿈을 안고 외고 시험을 준비했다. 교 일등을 했었기에 노력만 하면 당연히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시험 전날 많은 후배들과 동네 지인들로부터 합격 기원 선물을 받았다. 두들 잘 될 거라며 마음만 편하게 먹으라고 했다. 피아노 위에 치도록 쌓여있던 색색깔 꾸러미들은 마치 합격 선물인 양 빛나고 있었다.


시험날이 되었고 나는 열여섯 살 인생 처음으로 허망한 경험을 했다. 를 쫑긋 열었으나 어가 들리지 않았고 눈을 크게 뜨고 읽어보려 노력했으나 문장 해석이 잘 되지 않았다.


결과 발표던 날 학교는 시끌벅적했다. 공부를 좀 한다는 친구들의 합격 소식이 줄줄이 들려왔다. 명단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낙방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어머 웬일이니. 너는 당연히 될 줄 알았는데"라고 했다. 그날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진 이 상황이 너무 버거워 양호실로 내려갔다. 슬픔과 부끄러운 감정을 끌어안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며 쌤통이라고 놀리는 것 같았다.


집에 와서도 줄곧 거나 책상에만 앉아 있었다. 온 열정을 쏟아내고 나니 딱히 매진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속상한 마음을 부여잡고 끼적끼적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지야 이리 와봐! 엄마랑 이거 하자!”


이게 무슨 소리지? 방으로 가보니 엄마가 컴퓨터로 한게임 사이트를 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휘둥그레진 나를 보며 엄마는 흥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인생에 이런 일 아무것도 아니! 공부하지 말고 엄마랑 고스톱 하자! 이거 한번 해봐!”


얼떨결에 처음으로 고스톱 게임을 해보았다. 연이어 테트리스도 했는데, 수업 시간에 땡땡이를 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몇 번 하고는 정말 재미있다고 말씀드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때 나는, 눈물이 나려 했던 것 같다.


못지않게 속상하실 텐데 신 웃으며 말을 건네는 엄마를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마음으로 전해준 엄마의 응원에 힘을 내어,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시 천천히 공부를 시작했다. 축 쳐 저 있던 내게 엄마가 들려주었던 ‘새옹지마’, ‘전화위복’ 한자성어를 되새기며 조금씩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내가 커서도 엄마는 한결같았다.


아나운서 카메라 테스트에 떨어지면 면접관들이 시력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최종 면접에서 낙방하면 빽이 없어서 안된 거라고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나는 삭발을 해도 예쁘고, 키만 컸으면 이미 미스코리아가 되고도 남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번도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엄마의 요상한 말들이 내 귓바퀴를 지나고 나면 늘 똑같 메시지로 변환되었다.


"사랑한다. 힘내거라."


서럽게 울다가도 나를 믿어주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면 힘이 났다. 머스매처럼 팔뚝으로 퍽퍽 눈물을 닦아내고는 다시 걸어 나갔다. 엄마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의 사랑만으로도 충분히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얼마 전 업무 하다 속상한 이 있었다. 고객사와 클라이언트, 영상팀 등 여러 해관계자들이 모인 프로젝트에서 출연자의 스피치 칭을 맡게 되었는데, 진행 중 고객사의 의견으로 코칭이 중단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결정에 클라이언트 측에서 어찌나 미안해하셨는지 담당자분께서는 통화 중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셨다. 진심이 느껴졌고 나 또한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변수의 상황들을 겪었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한결 같이 웃으며 통화를 마치고는 쿨하게 일상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만큼은 속상한 감정이 쉽게 떠나가지 않았다. 억울고, 자만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누군가어디선가 또 쌤통이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둥지를 튼 이 생각을 날려버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주여, 제게 어떤 가르침을 주려 하시옵니까. 알량한 지식을 자랑하지 않고 낮은 자세로 임하겠습니다.' 통렬하게 반성하며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 주님을 통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윤지! 이런 거 아무 일도 아니. 엄마랑 고톱이나 치자!”


순간, 최선을 다해 꾹 눌러두었던 서러움이 발했다. 실은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고. 바보 같이 말도 못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웃고만 있었다고 주절주절 털어놓았다. 그렇게 눈물, 콧물 쏙 빼고 나니 정말이지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다시 씩씩하게 걸어 나갈 준비를 마쳤다. 20년 전 그날처럼 말이다.




사람을 살리는 말이란 무엇일까?


말하기에 대한 글을 쓰고 코칭을 진행하면서 가슴속엔 늘 이 질문이 자리고 있다.


그런데 사람을 살려주는 말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이 참 지가 않다.

때론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으로도 힘이 되고,

오랜 세월이 흘러 이미 사라질 법도 한 빛바랜 말 한마디가 평생의 힘이 되어주기도 하니 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람을 진짜로 살려주는 말에는,

그 어떤 기교나 스킬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디립따 폼 잡으며 말하기를 가르치고 있는 나는,

누군가에게 20년이 흘러도 힘이 되어줄 그런 말을 건넨 적이 있는가? 그리고 있을까?



조용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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