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골프를 시작하고 아이의 가정보육 시기로 휴회를 신청한 지 어느새 3개월이 흘렀다. 지난 주말 남편은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골프를 할 생각이 진정 있느냐고 말이다.
나는 생각은 백 프로 있으나 요즘 내가 일이 바쁘고 남는 시간에는 언젠가의 출간을 목표로 글을 쓰다 보니 골프를 배울 짬이 도저히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편이 침묵을 지켰다.
순간 나도 내가 말해놓고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러 잔소리 사이에 내 마음을 움직인 말이 있었으니 "이거 하나 못 맞춰주냐."는 것이었다. 사실은 노년이 될 때까지 같이 취미로 할만한 것으로 장기적인 생각으로 권했다는 것이다.
진작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을. 나는 또 그런 진심 어린 말에 약한지라 당장 월요일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고는 부지런히 시간을 쪼개어 다니고 있다.
이 한마디는 평소 남편에게서 듣기 매우 힘든(!) 감동적인 말이었고 그 외에는 대부분 회사 대표님이 하는듯한 발언이었는데 그중 하나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당신이 말한 여러 핑계들은) 되었고.
나는 나중에 한다는 말은 믿지 않아.
할 거면 지금 하고 말 거면 말아. 나를 위해서 하지는 말고.
할 거야 말 거야. 말 거면 같이 취소하러 가자."
이는 마치 20대 어느 날 갑자기 엄마를 떠나보내고 슬픔 속에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이분법 질문과도 같았다.
살 것이냐 말 것이냐.
세상에 없는 엄마의 첫 생일날 종일 잡혀있던 일정을 마치고 부들거리는 다리를 지탱하며 나는 그 어딘가에 서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답변은 분명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살 것이다'에 동그라미를 쳤다. 남은 질문은 하나였다.
잘 살 것이냐 못 살 것이냐.
역시 망설임 없었다. 기왕 살 거라면 잘 살아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단순한 수식은 살아가면서 벌떡벌떡 일어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잘 살기 위해서는 당연히 일어나고 또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편이 새로이 던져준 이 단순한 법칙은 요 며칠 나에게 큰 지침이 되고 있다.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지금"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였다.
3개월 동안 골프 연습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초심자일지라도 지금쯤 어쨌든 필드에 한 번은 나가볼 수 있었을 텐데 이 아까운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물론 그사이 다양한 일들은 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똑같이 내 기준 바쁘다는 조건 아래 월화수 3일 동안 다시 골프 연습을 시작하였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 중 1시간 30분이 소요되는 추가된 일정을 통하여 나에겐 생각지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오전 강의 후 바로 먹을 점심 식사를 미리 준비하게 되었고 연습장에 왔다 갔다 하는 동안 글 몇 편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한 시간여의 연습을 통해 어제의 나보다 골프 경험치가 1mm 나아졌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되었다.
뭐든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고 한번 멈추면 다시 시작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루틴에 단 한 가지만 변화를 준다는 것이 이 게으른 몸뚱이에게는 무척 거부감이 든다.
정말 해야겠다 싶은 일은 고민하지 말고 재지 말고 지금 바로 시작해버리는 것은 아무리 봐도 나 자신에게 손해 될 것이 없다. 정 아니면 하다가 그만두면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한 시간 반의 일정 덕분에 계단을 빠르게 오르내리며 일을 할 때 에너지는 더 솟게 되었고 초심자로서 배우는 과정을 통해 내가 코칭을 할 때 혹은 글을 쓸 때 더 낮은 마음가짐을 기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