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으로 암기 연습 사이사이에 뇌가 전혀 다른 일을 하도록 주의를 흩트린 뒤 다시 해당 대본을 연습해보시면 내가 지금 이 대사를 어느 정도 암기했는지 점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처음에는 1. 단계만 하셔도 완벽히 암기가 된 듯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줄줄 대사가 흘러나오거든요. 그러나 잠시 다른 일을 하며 뇌가 새로운 분야에 집중한 뒤 돌아오면, '이럴 수가!' 대사가 때로 전혀 생각나지 않기도 합니다.
따라서 1. 단계에 그친 뒤 무대에 올라가면 이렇듯 눈앞이 캄캄. 머릿속이 하얗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분명히 집에서는 완벽히 대사가 줄줄 나왔는데도 말입니다. 뇌는 웬만큼 반복해서는 내용을 꽉 쥐어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딴짓(!)을 반복하며 집요하게 암기를 하다 보면 5단계, 6단계쯤 되었을 때 비로소 해당 문단의 첫 단어만 툭 내뱉어도 뒷부분이 어느 정도 술술 나오게 됩니다. 이쯤 되면 이제 연습 시간도 즐거워지기 시작하는데요. 이제부터는 암기한 대본 위에 표정과 제스처, 자세까지 체크하며 점검해주시면 금상첨화가 됩니다^^
저는 정말로 대사가 많을 때는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무서운 장면을 떠올리면서 집중하곤 했습니다. 한 사람이 황소 같은 동물에 묶인 채 끌려가기 직전인 상황이었는데요. 악당이 그 짐승을 풀어놓으면 바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장면이었습니다. 방송 직전 대본을 받아 시간이 촉박하거나 미리 받더라도 대사가 많아 오랜 시간 고도로 집중을 해야 할 때는 내가 마치 그 절체절명 위기의 사람이라 생각하며 암기하곤 했습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내가 이걸 다 암기해야 우리 가족을 구할 수 있다!' 상황을 상상하며 없던 힘도 끌어내곤 했습니다.
우리가 무대에 서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 그냥 외우는 것이 아닌 씹어먹듯 외우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적어도 내용 인지와 암기만큼은 확실히 되어야 현장의 수많은 변수들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대에 도착하면 커다란 조명과 무대가 전해오는중압감에 머릿속이 하얘질 수 있습니다. 작은 강의실이라 할지라도 앞에 나와 서는 것만으로도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열일을 시작합니다.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청중들과 눈을 마주치면 갑자기 조용하던 심장이 요동칩니다. 시그널 음악과 담당자의 스탠바이 소리와 웅엉웅성 대기하는 관객들의 목소리가 오버랩되면 그야말로 암기한 대사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반복하고 반복하여 입에 물리듯, 애국가 수준으로 암기를 해 놓으면 내 안에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에 심호흡할 여유가 주어집니다. 커튼을 슬쩍 젖히며 관객이 얼마나 왔나 사람 수도 세어보게 되고요. 진행을 하면서는 관객들의 눈도 보다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대사를 지겹도록 외웠기 때문에 어느 부분이 핵심이고 어느 부분을 줄여도 될는지 바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덕분에 '이 부분은 좀 지루한 것 같은데?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 오 여기에서 사람들의 눈이 빛나네? 좀 더 에피소드를 전해드려야겠다!' 애드리브를 할 수 있는 여유까지감사히 누리게 됩니다.
바로 즐기는 단계인 것입니다.
그 지난한 암기와 준비의 시간은 '청중과의 소통'이라는 커다란 결실을 안겨줍니다.
즉, 프로페셔널한 말하기를 위한 수많은 현장 변수 체크, 청중 분석, 음향 체크 등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먼저 나 스스로가 말하는 순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조심스레 강조드리고 싶습니다. 이 시간만큼은 나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나와의 무한 화이팅이 필요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자칫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기에 강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택시 안에서 후다닥 작성해보았습니다. ^^
상대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나의 말하기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고독한 인고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발표, 면접, 프레젠테이션 등 중요한 스피치를 앞두고 계시다면 꼭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힘내시는 여러분에게 팍팍! 으샤샤! 함께 응원드립니다!!^ㅡ^
여담으로, 저는 열정 가득 일을 하고 돌아가는 이 시간을 무척 좋아합니다.
오늘은 일을 하러 갈 때와 돌아오는 길 자주 듣는 노래 두 곡을 살포시 소개드리려 해요.
첫 번째는 Pat Metheny – Last Train Home이란 곡인데요. 언제나 제게 영감과 열정을 주는 곡입니다.
두 번째 곡은 유희열 - 라디오 천국인데요. 몇 년 전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최종 면접 직전 이곡을 듣고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면접실에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청취자, 시청자분들과 진하게 소통하고자 하는 꿈을 이뤄준 곡이기도 합니다 :)
경력이 쌓여가도 매일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긴장감과 중압감이 함께합니다. 내가 오늘 얼마나 에너지를 많이 쏟아낼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안의 큐 사인이 시작되면 눈 깜짝할 새 카이로스의 시간이 흐릅니다. 일을 마치면 몸은 녹초가 되지만 마음에 차오르는 기쁨과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일과 스스로 선택한 길에는 책임과 노력이 따른다는 점. 고진감래를 떠올리며 요 며칠 지쳐있다가도 힘을 내었는데요.이렇게 일을 하고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그 자체에 깊은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