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다음 날

1부

by 그냥

처음으로 토, 일 연속으로 일한 다음 날. 하필이면 월요일 아침 10시에 강의가 잡혀 있었다. 알람은 울리는데 눈은 계속 감기고 입에선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룻밤 사이에 피로가 풀릴 리 없으니 몸은 천근만근. “읏차”하는 작은 기합으로 침대에 들러붙은 등을 겨우 떼어 냈다.


강의실로 이동하는 전철 안. 유리창에 눈 밑이 푹 꺼진 내가 비친다. 도무지 아침의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다. 금요일 밤 막차 타고 귀가하는 직장인의 낯빛이 이러하지 않을까.


아니다. 분명 그것만이 아니다. 지금 내 상태는 머리 꼭대기부터 등허리, 팔다리, 피부의 솜털까지 전부 편의점과 줄기차게 교신 중인 것 같다. 귀에는 삑삑 바코드 찍는 소리가 쟁쟁하고 다리는 과자와 컵라면이 있는 창고 쪽으로 계속 뻗는 중이다. 매대에 올려놓은 바구니, 담배와 삼각김밥, 손님들의 목소리. 어수선했던 첫 출근의 잔상이 이 아침 나를 더욱 지치게 하고 있다.


이날 강의는 한 중학교의 학부모 독서 동아리 대상 글쓰기 수업이었다. 수강생들이 내 또래여서인지 두 번 만났을 뿐인데 벌써 친근감이 들고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이날 아침엔 기분이 달랐다. 편의점 알바에서 강사로 모드 전환이 안 됐달까. 수강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떤 인사로 수업을 시작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런 얼굴로, 이런 몸으로, 이런 기분으로 수강생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웃을 수 있을까. 애써 쓴 글에 무덤덤한 얼굴로 피드백하고 싶지는 않은데. 아마도 피곤해서 그렇겠지. 막상 강의실에서 사람들 얼굴 보면 기분이 괜찮아지지 않을까. 현장에서 생생하게 살아나곤 하는 내 기질을 믿어보기로 했다.


지하철역에서 학교까지 가려면 키 큰 느티나무가 늘어선 공원을 지나야 한다. 그날따라 하늘이 파랗고 구름이 선명하게 예뻤다. 나뭇잎 사이로 아침 햇빛이 스며드는 길을 천천히 걸었다.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날씨 때문인지 햇빛 덕분인지,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듯했다.


이 아침, 이 길을 걷고 있는 이유. 오로지 내 선택이기만 한 건 아니다. 글을 쓰다 보니 책이 나왔고, 책이 나오니 강의도 하게 되었을 뿐, 이 모습을 꿈꾸거나 바란 적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글 이야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저절로 내게 온, 사람과 세상에 깊이 맞닿는 이 삶에 오래 머물고 싶다. 하지만 이 작은 만족감조차 나는 오래 붙들지 못했다. 길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그럴 수 없을까 봐 두려운 마음에서 오는 것일 터. 언젠가 길이 끊기면? 낭떠러지 앞에서 오도 가도 못하면? 이제 삶의 고비를 함께 넘을 사람도 없는데. 편의점 일을 하게 된 건 어쩌면 외롭고 척박한 삶의 예행 연습인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마음이 다시 흐트러졌다.


그제야 알았다. 지금 기분이 착 가라앉은 이유가 단지 피곤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나는 수강생들이 내 피곤한 기색을 알아채고 이유를 물어볼까 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대답을 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뭔가가 까발려질지도 모른다. 그들이 모르길 바라는 내 상황이란 무엇인가. 이혼? 어느 정도는 맞지만, 핵심 이유는 아니다. 그보다 나는 불안하고 조급해진 내 사정을 들키기 싫은 것이다. 먹고 살 염려 때문에 편의점 알바라는, 그리 안정적이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노동을 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이 생각하는 작가란 적어도 편의점 조끼를 입은 모습은 아니지 않겠나. 무능한 무명 작가에게서 앞으로 계속 강의를 듣고 싶어 할까. 어쩌면 나는 다음 주에 텅텅 빈 강의실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불안이 불러온 망상일까. 이도 저도 확실하지 않다는 게 나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복닥거리는 마음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는데 저만치 교문이 보였다. 용기가 생기기는커녕 되돌아가고만 싶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겨우 힘을 내 교문을 들어서려는데, 주차장 쪽에서 동아리 회장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교문 옆 기둥으로 몸을 숨겼다. 아직 강의 시간이 30분이나 남았는데, 이렇게 일찍 나오시다니. 아마 수강생들과 함께 마실 커피를 내려놓고 책상과 간식을 세팅하려는 거겠지.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를 위해 머그컵에 차를 우려 놓고 간식 접시도 따로 마련해 주실 것이다, 지난주처럼.


바삐 걸어가는 그를 보니 이러고 있는 내가 더욱 우습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 수업이 뭐라고, 아니 내가 뭐라고 이렇게 정성을 쏟으실까. ‘진짜 나’를 알고도 이 수고를 들이실까.


아직 누군가를 마주할 힘이 올라오지 않아 교문 근처에서 조금 더 머물다 가려는데, 이번엔 다른 수강생이 주차장에서 나왔다. 동아리 회장 옆에서 늘 분주히 움직이던 분이다. 첫 시간에 딸 아이가 내 책을 읽었다며 사인을 요청했던 사람. 말투가 상냥하고 미소가 유난히 따뜻했던 그.


이들이라면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조끼 입은 내 모습에 실망하며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상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내가 그들의 정성을 배반하는 것 같다. 그들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시간, 여기에 모일 사람들을 위해 바지런히 움직이는 것이다. 나 역시 주어진 시간과 사람에 충실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진실하게 쓰고요, 진심을 나눠요. 내가 첫 시간에 했던 말이다. 어렵지만 그래서 더욱 유념해야 할, 쓰는 사람의 태도라 생각해왔다. 지금 이 순간 내 진실과 진심은 무얼까.


‘그냥... 말해버릴까.’


화장도 안 하고 다니는 내 얼굴에선 피곤한 티가 팍팍 날 테고, 지금 내 머릿속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건 편의점에서 본 장면들이고, 그것의 여진이 아직 내 몸과 마음을 흔들고 있다. 다른 어떤 이야기를 한들 빙빙 겉돌 게 분명하지. 피로와 경계심으로 잔뜩 예민해진 에너지가 엄한 데로 튈 수도 있다.


차라리 솔직해지자. 긴장을 털어 놓고 각진 마음을 허물어 버리자. 나는 지금 이혼하는 중이고, 곧 이사를 할 예정이고, 그래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지난 주말 첫 근무를 했다고. 나는 이혼을 앞둔 편의점 시간제 노동자라고.


학교 현관으로 들어서는 동아리 회장의 뒤를 쫓아 힘을 내 발걸음을 옮겼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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