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지금 내 앞의 이 눈빛들. 언젠가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몇 해 전 초등학교에서 3, 4학년 아이들 네 명과 글쓰기 수업을 했던 날. 인생의 중요한 사건들을 점으로 찍고 연결해 인생 곡선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늘 정신없던 아이들이 그날따라 얌전해서였을까. 나는 미리 그려놓은 내 인생 곡선을 예시로 보여주다가 웬만해선 입 밖에 꺼내지 않는, 중학교 3학년 때 아빠에게 대들다가 크게 혼났던 일을 아이들 앞에 툭 내놓았다. 스무 살 이전까지의 삶에서 맨 밑바닥을 찍을 만한 부끄러운 가족사였다. 말을 해놓고 내가 더 놀랐다. 까불이 아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분위기가 여느 때보다 진지했다. 이야기 속의 중학생 아이가 상처받았을까 봐 걱정하는 표정들. 여리고 슬프고 따뜻한 그 눈빛들에 감동해 나는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 다 큰 어른이 아이들 앞에서 운 것은 어쩌면 민망한 기억이지만, 지금도 이따금 그 얼굴들이 떠오를 때면 마음이 잔잔하게 흔들리면서 힘이 생기곤 한다.
지금 이 강의실에서 다시 그 눈빛을 마주한다.
“한 주 잘 보내셨나요? 사실 저는 좀 피곤한 상태예요. 주말에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거든요...”
이혼 결정과 알바, 곧 닥칠 이사 이야기를 이어 가는 동안 강의실의 빈자리가 하나둘 채워진다. 온통 나에게만 집중된 눈동자들. 의자를 당기고 가방을 내려놓는 사소한 움직임조차 절제된 요가 동작처럼 고요하고 조심스럽다. 무거운 듯하지만 마냥 가라앉는 분위기는 아니다. 우리는 지금, 가장 예민하고 섬세한 소통을 하고 있다. 상처받기 쉬운 순간, 다행히도 말을 멈춰야 한다는, 혹은 멈추고 싶다는 감각은 생기지 않는다. 내 이야기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오히려 나를 더 투명하고 자유롭게 한다.
여느 날처럼 과제 글을 발표하는 시간. 발표자가 부모님 이혼 후 궁핍했던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읽는다. 낭독 도중 몇 차례 멈추는 순간이 있었지만 끝내 읽기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수고한 발표자에게 나는 너스레로 위로한다.
“오늘 이혼이 주제인가 봐요. 아까 제 이야기랑 너무 잘 어울리는데요? 근데 우리 미리 짠 거 아니에요, 절대로요.”
웃으니 기운이 다시 올라온다. 이 분위기를 타고 한 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한부모 가정으로 아이를 키워온 자신의 삶을. 또 한 사람이 말을 받는다. 결혼하지 않고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상을. 침묵하던 어떤 이가 속삭인다. 저도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서 요즘 알바 알아보는데 자꾸 떨어져요.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자꾸 침을 삼킨다. 그러지 않으면 그날처럼 눈물을 쏟을 것 같아서. 울어도 되지만, 오늘만큼은 웃고 싶다. 연민의 눈물보다 공감의 미소가 필요한 순간이 있으니까.
이상하다. 아침의 지친 나는 어디로 갔을까. 더 이상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시간, 나는 솔직해지지 않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었다. 수강생들이 써온 글을 집중해 읽었고 투박한 문장 속에 숨어든 그들의 진심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친 후 인사하는 내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순하지 않았을까.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 하늘과 햇볕은 똑같이 밝고 환했다. 느티나무 그늘도 싱그러웠다. 그러나 나는 꽤 달라져 있었다. 시원했고, 편안했다. 힘들면 힘들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외로우면 외롭다고 말하면서 앞으로도 이렇게 살면 되겠지. 새로운 삶 속으로 드디어 한 발 내디딘 기분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 때였다.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점장이었다. 더없이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혜진 씨, 어제 손님한테 택배 받은 거 있죠? 그거 어디에다 뒀어요?”
“아.. 그거 택배 바구니에 잘 뒀는데요?”
“그걸 거기에 두면 어떡해요! 벽쪽 보관함에 갖다 놔야지! 택배가 잘못 갔잖아요. 그거 어떻게 찾을 거예요? 정신 똑바로 안 차려요, 정말?”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점장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저만치 지하철이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