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유튜브를 보며 일주일 동안 동작을 반복했더니 늘 달고 살았던 오른쪽 고관절 통증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순간적인 효과일지, 일하고 나면 도로아미타불이 될지는 몰라도 기분만큼은 훨씬 나아졌다. 퉁퉁 부었던 발을 위해 쿠션 좋은 운동화도 거금을 들여 새로 샀다. 원판이 부실하니 장비빨이라도 받아야지.
드디어 혼자 일하는 첫날. 오전 내내 걱정과 긴장으로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머리론 일하는 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하면서, 몸은 싱크대 앞을 서성이며 오이 김밥을 싸고 물병에 물을 담았다. 핸드폰 충전기도 챙겼다. 인수인계 때 찍은 영상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거의 외울 지경이다. 그래도 모르는 게 있으면 점장에게 전화로 물어보면 되겠지. 근무 중 틈틈이 스트레칭도 하고 의자에도 앉고... 이 정도면 정말 준비된 알바생 아닌가 싶지만, 실은 나를 이렇게 만든 건 간절함이다. 나는 이혼 후에도 어떻게든 무난하게 삶을 일궈내고 싶다.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다. 버스가 유난히 빠르게 달리더니 20분이나 일찍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 놓았다. 저 앞에 편의점이 보인다. 이제 연습은 끝났고 실전만 남았다.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한구석에 단단히 몰아넣고 편의점 문을 열었다. 근무자에게 인사를 하고, 매장 안쪽에 걸려 있는 편의점 조끼를 입었다. 장갑을 끼고 계산대에 섰다. 교대하기 전, 돈통의 현금이 포스기 숫자와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지폐와 동전 세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몇 번 헤매다 겨우 시제를 맞췄다. 교대자는 바로 퇴근하지 않고, 워크인이라 부르는 음료와 주류 냉장고를 채우느라 30분 동안 더 머물렀다.
“수고하세요.”
짧은 인사를 남기고 그는 떠났다. 이제 정말 혼자 남았다. 이후 시간은 대체 내가 뭘 했고 뭘 못했는지 또렷하 게 구별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포스기 다루는 일이 너무 어렵고 복잡했다. 점장의 시범은 수십 가지 상황 중 한두 가지에 불과할 뿐, 얼마나 돌발 상황이 많았는지 긴장으로 얼굴 전체가 돌처럼 굳어 “어서오세요.”라는 인사도 잘 나오지 않았다.
가장 적응이 안 됐던 건, 할인도 적립도 결제도 모두 바코드 리더기로 찍기만 하면 되는 프로세스였다.
예를 들어 새우깡 한 봉지를 계산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새우깡 봉지의 바코드를 스캐너로 찍는다
2. 포스기의 현금/카드 버튼을 누르고 현금을 받거나 카드를 단말기에 꽂아 결제를 마친다.
그런데 1번과 2번 사이에 손님이 휴대폰을 열어 내게 바코드를 보여준다. ‘이건 뭘까?’ 궁금하지만 생각할 틈이 없다. 일단 그냥 찍는다! 찍어야 할 것 같으니까. 화면에서 숫자 몇 개가 바뀌는데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할 수도 없다. 손님이 카드를 단말기에 꽂는다. ‘띠리릭’ 소리가 나더니 화면이 바뀐다. 손님이 카드를 빼고 나간다. ‘끝났나?' 내가 찍은 건 무엇이었을까. 계산은 제대로 된 걸까. 멍하고 찜찜한 상태로 다음 계산을 이어간다.
“통신사 할인할게요.” 어느 손님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찍은 것이 통신사 할인 바코드였다는 걸 알았다. 새우깡 바코드를 찍은 그 상태에서 손님이 내민 할인 바코드를 찍으면 자동으로 ‘알아서’ 할인이 됐다. 이어서 카드를 넣거나 모바일페이 바코드를 찍으면 계산이 끝나버린다. ‘할인’이나 ‘계산’ 등 버튼을 통해 기계에 명령하는 과정이 생략된 초간단 프로세스였다.
바코드를 찍는 단 하나의 행위로 결제가 빠르게 진행되니 손님도, 직원도 모두 편하긴 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초보 알바생인 나는 편하지 않았다. “통신사 할인을 하시겠습니까?” “카드 결제를 하시겠습니까?” 이런 문구를 눈으로 읽고 “예” 혹은 “아니오”를 누를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손님이 보여 준 바코드가 무엇인지, 내가 뭘 찍었는지, 질문을 통해 상황을 알 수 있으니까. 스쳐 지나가는 화면을 붙들 수도 없고, 바코드의 정체를 손님들에게 일일이 묻기도 어려워 일하는 내내 허둥댔다.
두 번째로 나를 정신없게 한 건 담배였다. 내가 아는 건 솔, 장미, 88... 오래 전 아빠가 좋아하던 것들뿐인데 언제 이렇게 종류가 많아졌을까. 백 가지가 훌쩍 넘는 담배들이 계산대 뒷벽을 꽉 채운 것도 모자라 옆면, 계산대 아래쪽까지 점령했다. 이 담배들의 위치를 어떻게 외울 수 있을지 막막했다. 점장은 하다 보면 저절로 익숙해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 했지만, 나는 손님들이 빠르게 내뱉는 담배 이름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다행히 손님 대부분은 자신이 피우는 담배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편의점에 들어설 때부터 이미 담배가 놓인 한 점을 향해 돌진하는 손님도 있었다. 그들은 어리바리한 내 앞에서 손을 척척 뻗으며 “저기 빨간색이요” “왼쪽에서 두 번째 노란색이요.” “그 옆에 옆에요.” 이렇게 말하며 담배 찾기를 거들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나는 흡연 인생에서 만난 무수한 초짜 알바생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
도시락으로 싸 간 오이 김밥은 꺼내지도 못했다. 일 배우랴 손님 응대하랴 바쁘기도 했지만, 깔끔하게 포장된 물건들 사이에서 투박한 김밥을 꺼내려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대신 유통기한이 지난 참치김밥을 하나 먹었다. 편의점 공간에 내 일상이 편안하게 스며들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까.
다시 또 퇴근길. 걱정했던 고관절에서는 미미한 통증만 느껴지고, 이번엔 발바닥이 더 아팠다. 종종걸음을 많이 친 탓일 거다.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다. 적어도 지난번처럼 로봇이나 펭귄 같지는 않잖아. 버스 의자의 등받이가 간절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