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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앞두고 편의점 면접을 봤다

by 그냥

편의점에 면접을 보러 갔다.


“편의점 일은 해보셨어요?”

“아니요... 아, 근데 비슷한 일은 해봤어요.”


10여 년 전 생협 매장에서 1년 정도 일한 적이 있다. 편의점과 생협 둘 다 먹거리와 생필품 파는 매장이니 일하는 건 거기서 거기 아닐까. 내 짐작이 맞았는지 (사실은 전혀 맞지 않았지만) 점장의 이마가 살짝 펴졌다.


나는 주말 낮 3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는 시간대에 지원했다. 점장은 내게 1년 이상 일할 수 있는지, 혹 쉬는 날 다른 근무자 대신 출근할 수 있는지 등 몇 가지를 더 물었다. 나는 고개를 확실하게 끄덕이며 무조건 가능하다고 답했다. 일단 붙는 게 중요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고민해도 되니까. 점장은 저녁까지 연락을 주겠다며 만일 연락이 없으면 불합격인 줄 알라고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걸어둔 가방을 집으려는데 등 뒤로 마지막 질문이 날아왔다.


“어디 아픈 데는 없으시죠? 허리나 무릎 같은 곳이요.”

“아 네, 그럼요...”


면접 보느라 긴장했는지 허기가 몰려왔다. 집에 오자마자 힘 없는 팔다리로 저녁을 차렸다. 밥을 내 입이 먹는 건지 핸드폰이 먹는 건지 모를 만큼 온 신경이 핸드폰으로 쏠렸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니 참을성이 더 없어지는 것 같다.


‘7시 반인데 아직 연락이 안 온 걸 보면 떨어진 거 아닐까? 몇 시까지가 저녁이지? 8시 넘으면 밤 아닌가?’


반쯤 포기한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초조한 마음으로 설거지를 하는데, 벨이 울렸다.


“비슷한 일 해보셨다고 하셔서요. 토요일에 오셔서 인수인계 받으세요.”


사무적인 이 몇 마디가 그렇게 달콤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설거지하던 것도 잊고 베란다로 달려갔다. 한참 자고 있던 고양이 미미와 코코가 방방 뛰는 나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봤다.


“미미, 코코!! 나 취직했어! 너희들 밥이랑 츄르 계속 사줄 수 있게 됐어!”


여전히 멀뚱한 미미와 코코. 고양이들을 가만가만 쓰다듬고 있으니 흥분이 가라앉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역시 고양이는 평화! 의욕이 차오르면서 얘네들과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생긴다. 몸이 꼿꼿하게 펴지고 정신도 맑다. 흐릿하던 나라는 존재가 또렷해진다.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이런다. 이게 직장, 아니 돈의 힘인가?


일할 곳이 간절한 이유가 있다. 내겐 돈이 필요하다. 먹고 살아갈 돈이. 지금 당장. 왜냐하면 한 달 후, 나는 이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


마흔일곱 살 작가이자 글쓰기 강사. 결혼 12년 차에 자녀 없고 고양이 둘 있음. 내 짧은 자기소개다. 최근 한 줄을 추가했다. ‘곧 이혼 예정’.


결혼 전부터 내 직업은 관공서나 지역 언론사에 글을 써서 돈을 버는 프리랜서 작가였다. ‘작가’라는 말은 실제보다 사람을 더 그럴싸하게 부풀리는 것 같다. 여기에 ‘프리’라는 말이 더해지면 쿨하고 강단있는 느낌까지 든다. 나는 그럴싸하지도, 쿨하지도 않은, 그저 근근이 먹고 사는 쪽이다.


글만 쓸 때 한 달 수입은 70에서 100만 원 남짓이었다. 책이 세 권 출간된 직후 강의와 원고로 살짝 잘 나갈 때도 있었지만, 요즘엔 책의 여운에 기대어 생활하는 중이다. 나는 남편과 생활비를 반반 나눠 냈다. 그래서 적은 수입으로도 책이나 옷을 사고 고양이들에게 츄르 주는 행복도 누릴 수 있었다. 이제 이혼하면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하는데, 누가 언제까지 내게 원고와 강의를 맡길지 알 수 없다. 가느다랗게 이어가고 있는 ‘책 빨’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런 생각만 하면 이혼에 품었던 희망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곤 했다.


나이는 쉰을 향해 힘겹게 뛰어오르는 중이다. 새로운 선택을 앞에 두고 망설임의 핑계 삼기 좋은 나이. 게다가 나는 미루기라면 국가대표급이다. 한참 전부터 꿈꿨던 이혼을 한없이 미룰 참이었다.


이런 내게 더는 버틸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 남편이 직장 문제로 이사를 계획한 것이다. 사실 정든 집도 나를 붙드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떠나야 한다면, 게다가 짐 싸는 수고와 이사비까지 들여 다른 집으로 가야 한다면, 그 에너지와 돈을 아예 새 삶을 만드는 데 쓰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남편과 각방을 쓰며 냉랭하게 지낸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경제적인 이유 이외에 그와 다시 살림을 합칠 명분(이를테면 자식, 정, 외로움 같은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다가올 50대마저 이렇게 시들시들하게 보낼 순 없다. 이사하느니 차라리 이혼을 하자! 남편의 이혼계획이 내리막길 꼭대기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나를 툭 건드렸다. 나는 이혼을 향해 빠르게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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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