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 준비 중
어느 밤,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머리가 녹아 흘러내릴 듯 무거웠다. 사실 그날 낮부터 조짐이 있었다. 강의하면서 유난히 덜 웃었고, 수강생들이 노력을 다해 쓴 글에 이전처럼 마음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내가 이러는 이유를 모르는 게 아니다. 불안할 때 난 시야가 좁아지고 안으로 침잠한다. 그럼 나는 왜 불안한가. 살아갈 날들, 생존 자체가 나를 겁박하기 때문이다. ‘넌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들 거야.’
혼자 생활하는 데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얼마나 되기에 이토록 두려움이 큰 걸까. 마지막까지 생활비 계산을 미룬 건 앞으로 그만큼 벌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큰, 무능한 나를 마주하기 두렵기 때문이다. 돈이 부족한 만큼 불안은 커지고 나는 작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젠 피할 데가 없다. 나는 남편에게 이혼을 말했고, 혼자 살 전셋집도 구했다. 날짜는 훅훅 지나가 어느새 한 달 후면 이 집을 떠난다. 그때부턴 내 삶을 오롯이 내가 돌봐야 한다.
한숨을 쉬며 일기장 맨 뒷장을 느리게 펼쳤다. 관리비, 전깃세, 식비, 고양이... 목록 옆에 숫자를 적어나갔다. 대략 100만 원 정도면 생활은 가능할 것 같았다. 옷을 사거나 여행을 가거나 경조사를 챙기려면 추가로 돈이 들겠지. 곧 열 살이 넘어갈 고양이들 병원비도 대비해야 하고. 역시 만만치 않구나. 이 돈을 불안정한 강의에 기대려니 불안할 수밖에 없지. 생활비의 얼마만이라도 고정적으로 벌면 좋을 텐데...
결국 내겐 고정수입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주중엔 강의하고 글도 써야 하니 주말에 할 수 있는 일을 구하면 좋을 것이다. 하루 8시간씩 이틀 일하면 한 달 70만 원 안팎으로 벌 수 있으니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다. 정신의 안정을 위해 이왕이면 이사 가기 전, 그러니까 바로 지금 시작하고 싶었다. 어떤 일이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식당 설거지였다. 주말 설거지 알바로 80만 원을 벌어 혼자 살아가는 이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종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몸에 피로도 많이 쌓일 테고 어쩌면 골병이 들 수도 있다. 그래도 이틀이니까! 그 정도 노동쯤은 내 몸이 버텨주지 않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구인 앱 두 개를 핸드폰에 설치했다. 지역과 원하는 동네를 설정한 후 ‘설거지’로 검색했더니 의외로 몇 군데 뜨지 않았다. 실망. (나중에 알았지만, 설거지 알바는 ‘당근마켓’에 많이 올라온다)
이번엔 ‘주말’로 검색해 보았다. 화면 상단부터 주르륵 뜨는 것이 바로 편의점 알바였다. 시간대도 다양하고 근무 요일도 하루 이틀, 5일 등 저마다 달랐다. 세상에나, 편의점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었다니! 나만 모르는 세계를 이제야 발견한 것 같았다. 마침 이사 갈 동네 편의점 서너 군데에서 구인 광고를 올렸기에 자세히 보았다. 이중 세 군데는 밤샘 야간 근무, 그리고 한 군데에서 주말 오후 시간대 근무자를 모집 중이었다. 초보 가능, 주부 가능, 경력 단절 가능. ‘경력자 우대’라는 조건도 있었지만, 내겐 ‘초보, 주부’라는 문구가 나를 향한 응원가로 들렸다.
가슴이 두근댔다. 지원해 볼까. 잘할 수 있을까. 모집 공고에는 “문자 혹은 전화로 지원하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전화 통화보다는 마음의 부담이 적은 문자를 택했다. 일단 핸드폰 화면을 열었다. 간단한 문장을 몇 줄 쓰고 고치고 쓰고... 그러고도 한참 동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손에서 흐른 땀에 핸드폰이 자꾸 얼룩졌다.
‘나를 뽑아 줄까. 채용만 된다면 일은 어떻게든 배워나갈 텐데. 아무 응답이 없으면 어쩌나...’
‘그럼 다른 데 또 지원하면 되지. 이번엔 지원하는 경험을 해보는 거라 생각하자!’
망설임 끝에 갑자기 힘이 났다.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 얼른 전송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편의점 주말 알바 지원합니다. 이름 000, 나이 마흔일곱, 여성입니다. 편의점 경력은 없지만 일 잘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