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글쓰기
엄마와 저녁을 먹고 헤어져 집에 오는 길. 횡단보도 앞에서 또 고민을 한다. 아파트를 가로질러 갈까, 빙 돌아서 갈까. ‘에이, 5분 더 걷지 뭐.’ 나는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 대신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고양이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 고양이를 처음 본 건 올해 초였다. 여느 때처럼 아파트단지 안을 걷는데 조그만 고양이가 다가와 눈을 천천히 끔뻑이며 울었다. 집사 3년 차인 난 그게 무슨 신호인지 안다. 배가 고프니 먹을 걸 달라는 거다. 낯선 사람에게 이런 요청을 하다니, 어쩌면 이 고양이에게도 한때 집사가 있었겠구나 싶었다. “미안, 지금 아무것도 없어. 담에 또 만나면 줄게.”
우리 집 미미, 코코와 같은 고등어 무늬 고양이어서였을까. 내가 ‘쪼매니’라고 부르는 미미보다 훨씬 작은 몸집 때문이었을까. 그 고양이가 자꾸 눈에 밟혔다. 나는 가방에 짜 먹는 간식을 넣어두었다.
몇 달 후 무더운 여름날, 같은 장소에서 또 그 고양이를 만났다. 고양이는 자동차 바퀴 옆에서 물을 먹고 있었다. 누군가 패트병을 잘라 물을 담아준 모양이었다. 물도, 고양이도 아주 깨끗해 보였다. 그날따라 간식을 챙기지 못해 아쉬웠지만, 아파트단지 사람들이 그 고양이를 돌보고 있단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한 달 전, 늦은 오후였다. 고양이는 한낮 노란 햇빛 속에 앉아 뭔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곧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텐데, 이 겨울을 어찌 날까. 그동안 몇 번인가 밥을 챙겨주었던 우리 집 근처 고양이들이 떠올랐다. 어느 순간 사라져 이젠 나타나지 않는 고양이들. 어쩌면 내년 봄, 이 고양이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데리고 살아야겠어.
새로운 고양이를 데려오려면 당분간 고양이가 혼자 있을 공간이 필요했다. 우리 집 방 두 개엔 미미와 코코가 격리되어 살아간다. 나는 미미와 코코를 합사하기로 했다. EBS ‘고양이를 부탁해’에 나온 것처럼, 남편과 편을 짜 간식도 주고 서로 방을 바꿔 생활하도록 했다. 둘은 쉽게 친해지지 않았다. 다행히 코코가 미미에게 쏜살같이 달려가 공격하는 일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코코는 큰 덩치로 위협하고 미미는 하악질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날이 차가워질수록 맘도 급했다. 하지만 미미, 코코에겐 더 시간이 필요했다. 패딩 점퍼를 꺼내 입으면서부터, 추위에 떠는 길고양이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아예 단지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고양이를 보지 않으면 마음이 더 불편해지지는 않겠지. 하지만 불편함 대신 죄책감이 커졌다.
시골에 사는 고양이들은 겨울만 되면 하나같이 온몸이 새카매진다고 한다. 군불을 때 따뜻해진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기 때문이다. 털에 그을음과 재가 묻으니 까매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호흡기에도 좋을 리 없지만, 매서운 추위를 피하는 게 최우선이다. 고양이는 쥐가 주식이고, 쥐는 사람들의 곡식 창고가 서식처였으니, 아주 오래전부터 고양이는 이렇게 사람과 함께 살며 고비를 넘기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러나 도시의 공간에 따뜻한 온기라고는 겨우 자동차 보닛뿐인지, 겨울이면 고양이들이 차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잦다고 한다. 간혹 차 안에서 죽기도 한다는데, 그들의 삶이 너무나 안쓰럽다.
집에 데려오지 못할 바엔 차라리 캣맘들처럼 따뜻한 고양이 집을 만들어 갖다 놓을까. 이러다 본격 캣맘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건 아닐까. 매이는 삶이 싫어 아이도 낳지 않고 사는데, 길고양이에 대한 마음 역시 집착이고 지나친 감정 소모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캣맘을 혐오하는 야박한 이웃을 마주할 자신도 없고, 무엇보다 길고양이들의 처절한 삶을 더 자세히 알게 되는 게 가장 두렵다.
더 추워지기 전에 미미와 코코가 사이가 좋아지려나. 결국 ‘고양이를 부탁해’에 사연을 보내야 하나. 오늘도 아파트단지를 빙 돌아 따뜻한 집에 돌아온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만 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