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의 방광염

30일 글쓰기

by 그냥

12월 3일 - 미미의 방광염


어젯밤 미미가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소변은 보지 않고 모래만 잔뜩 파놓았다. 혹시 방광염인가. 벌떡 일어나 화장실에 가보니 모래엔 ‘감자’ 대신 손톱만 한 콩알들이 서너 개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고양이가 응고형 모래에 소변을 보면 작은 감자 모양으로 굳는데, 집사들은 이걸 그냥 감자라 부른다. 감자의 크기와 개수는 고양이들의 방광 건강을 가늠하는 척도다. 미미가 큼직한 감자를 여러 개 만드는 편은 아니었지만 워낙 덩치가 작고 물도 곧잘 먹어서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밤도 아니고 콩알이라니! 슬프게도 이건 방광염의 빼박 증거다. 최근 미미와 코코의 방을 서로 바꾼 게 미미에게 스트레스를 준 게 아닐까 의심해보았다.


이렇든 저렇든 진찰을 받아야 한다. 병원에 가면 두세 시간 링거를 맞을 테고, 오가는 것까지 하면 네댓 시간이 필요하다. 수요일까지 마감해야 하는 글은 두 개. 내가 다녀오는 건 무리다. 오늘 아침 날이 밝기가 무섭게 자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성격 강한 페미’와 함께 사는 무지렁이 꼴통 남편은 얼마 전부터 내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몸을 움직이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재작년만 해도 “고양이는 네가 데려왔으니 네가 알아서 해”라며 내 속을 뒤집어 놓았을 테지만 이번엔 순순히 응했다.


미미가 병원에 간 후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집안에 아픈 식구가 있으면 일상이 제대로 안 흘러가는 것과 똑같다. 마음이 붕 떠 주방만 왔다 갔다 할 때,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역시나 방광염이란다. 이제 미미는 약도 먹고 사료도 바꾸고 물도 많이 마셔야 한다. 몇 시간 후 미미가 왔다. 잔뜩 긴장해 커진 눈으로 방안을 빙빙 돌며 불안해했다. 평소 이불 속이나 숨숨집엔 잘 들어가지 않는 미미지만, 오늘은 왠지 그런 공간이 필요해 보였다. 치워 놓았던 숨숨집을 꺼내 방 한쪽에 두었다. 시간 맞춰 약을 먹이니 금방 비실비실한다. 그러더니 숨숨집으로 쏙 들어가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항우울제를 함께 처방했다더니, 약 기운이 도는 모양이다.


세상모르고 자는 미미를 보니 마음이 짠했다. 개나 고양이는 몸이 아플 때 몸을 숨긴다고 한다. 아픈 자신을 (무리의 일원인) 주인이 버릴까 봐, 다른 개체한테 공격당할까 봐, 이유는 여러 가지다. 어쩌면, 아니 아마도 미미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어딘가에 숨고 싶어 할지 모른다. 4년 전 나이든 강아지 리치를 보낼 때도 그랬다. 아직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땐 제 발로 이불속에 들어가 숨었지만, 쓰러져 눈도 뜨지 못하고 앓으면서부턴 가족들이 리치를 빙 둘러 지켜보고 있었다. 꼬박 하루를 누워 있다가 리치는 눈앞에서 쉬를 하고 세상을 떠났다. 죽음의 문턱에 조금씩 다가가는 동안, 혹시 리치는 곁에 있는 우리가 불편하지는 않았을지, 지금까지도 난 확신할 수 없다. 끝내 리치의 마음을 알 방법도 없다. 리치의 죽음 뒤 슬픔이 너무 커서 다시는 동물을 집안에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어쩌다 나는 두 냥이와 함께 살고 있다. 최소한 두 번의 예정된 죽음을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그때에도 미미와 코코 곁에 최후까지 머물고 싶고, 그러지 않을 자신이 없다.


미미, 코코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너희들을 절대 버리지 않을 거고, 너희들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 있고 싶으니 허락해 달라고. 그리고 앞으로 부디 물을 많이 먹어달라고. 삶도, 기쁨도 영원하지 않음을, 그러기에 함께 있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 조금 귀찮고 피곤해도 놀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간식을 주어야 한다는 걸 리치, 미미, 코코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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