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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혜진 Dec 05. 2019

따뜻한 말

30일 글쓰기

12월 4일 - 따뜻한 


“이 수업 들은 게 올해 제일 좋았어요. 전부 다 재밌어요."

내 옆에서 이리저리 서성이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Y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건가? 언제나 수업에 성실했던 Y. 그 말이 믿기지 않아 뭐가 그리 좋았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우선은 감사 인사부터.

“와, 정말이야? 다행이다. 고마워 Y야.” 짧게 말했지만, 실은 머리가 팽팽 어지러울 만큼 좋았다. 지난주에 학교 앞에서 붕어빵을 나눠 먹은 것 때문인가? 그에 비하면 이건 너무 큰 찬사다. 선물 같은 말을 건넨 Y는 꾸뻑 인사를 하고는 교실 밖으로 나갔다.

5, 6학년 아이 세 명과 함께 하는 수요일 수업에서 Y는 제일 말수가 적은 아이다. 오늘 Y가 그린 인생곡선에서 가장 아래에 찍힌 점에는 ‘7살. 엄마 돌아가심’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은 할머니, 아빠, 형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그땐 힘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좋아요.” 늘 소곤거리는 Y였지만 “괜찮다, 좋다”는 말은 또렷했고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이 정말 진심이란 걸 알았다. 괜찮다는 걸 믿어달라는 호소 같기도 했다.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정상 가족의 틀로 바라보면 Y는 온전치 못한 가족 안에서 쓸쓸히 살아가는 불우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만족도’와 ‘정상 가족’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만 해도 허구한 날 맹수처럼 다투는 부모님 아래서 살폿한 정을 느끼며 자라지 못했다. 중학생 때는 집안을 전쟁터로 만드는 아빠가 무섭고 미워서 퇴근길에 사고라도 났으면 했다. 차갑고 야박한 엄마의 독설에 찌든 탓인지 요즘도 난 엄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넬라치면 우선 심호흡이 필요하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한 데 뒤섞어 자식들에게 막무가내로 쏟아낸 탓에,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 둘을 구분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완벽한 부모를 바란 게 아니었다. 내 존재를 지지해주고, 불안과 공포를 보살펴주고, 슬픔에 귀 기울이는 한 사람. 내게 필요한 건 그 한 사람이었다. 그는 부모일 수도 있지만, 친척일 수도, 이웃이나 학교 선생님일 수도 있었을 거다. 돌이켜보면 나는 날 이해해주는 존재가 단 한 명도 없다고 느꼈던 초등학교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 부모가 해주는 밥 먹고, 학교 잘 다니고, 공부도 곧잘 했지만, 마음에 온기가 없는 삶은 쓸쓸했다. 쓸쓸한 삶에선 따뜻한 말이 잘 내뱉어지지 않았다. 내 주위에선 늘 냉기가 흘렀을 거다.

부모가 이혼하진 않았으니 나는 ‘결손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다. 분명히 뭔가 결손한, 폭력 가정이었음에도 부모가 이혼하지 않았단 이유로 ‘정상 가족’범주에 속했다. 그러니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가정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불편한지, 나는 잘 모른다. 그렇더라도 부모가 없으면 불행하고, 있으면 행복하다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을 만드는 건 이들을 다르기 보는 시선이며 편견이다. 열세 살 Y는 그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말아 달라고, 나는 정말 괜찮다고, 내게 말하는 듯했다.

올해 가장 좋았던 건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고, 나는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Y 곁에는 내겐 없었던 ‘그 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 안의 따뜻함을 내어줄 줄 아는 사람. Y는 내게 그런 존재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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