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 쓰는 불안

글 안 쓰는 일상

by 그냥

새벽까지 마감을 하고 이메일로 원고를 보내고 나면 그 즉시 세상은 천국이 된다. 늦잠을 자고 낮 12시에 일어나 지인을 불러내 동네 맛집에서 청국장을 먹는다. 바로 옆 스벅에서 디카페인 카페라떼와 생크림 카스테라를 시켜 놓고 밖이 컴컴해지도록 수다를 떤다. 별 총총 달 둥근 밤 하늘을 보며 집에 와 고양이 두 마리와 한가롭게 논다. 양치질을 하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가 잠이 든다.


평화로운 나날이 언제까지고 이어지면 좋으련만. 마음의 평화는 이틀을 버티지 못한다. 하루 푹 쉰 바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불안이 밀려온다.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과 좀 더 쉬고 싶다는 욕구가 팽팽히 맞서기 때문이다. 글 쓰는 걸 업으로 삼은 사람은 자고로 매일 원고지 4-5매는 꾸준히 써야 한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는다. 매일 쓰는 사람은 반드시 글에서 그 티가 난다는 것이다. 소설가 김훈은 '필일오(必日五)'라는 문구를 책상 앞에 붙여 놓았다지. 날마다 반드시 원고지 다섯 장을 쓴다는 뜻이란다.


'필일십'을 해도 모자랄 무명 작가 주제에 침대에서 몸이 떨어지지 않다니. 성실함이 글에 묻어난다면 게으름 역시 들키지 않을 도리가 없겠지. 글 수준이 몇 년 째 제자리를 맴돈다든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든지, 공허한 말을 잔뜩 쏟아내고 있다든지.


불안을 누르고 어떤 날엔 연속 이틀을 꿋꿋하게 쉰다. 그런 밤엔 불안이 더욱 증폭된다. 핸드폰이 손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만큼 내 미래는 상상 속에서 점점 어두워진다. 이것도 써야 하고, 저것도 써야 하는데, 책 읽고 서평도 쓰고, 엄마 얘기도 쓰고, 칼럼 소개도 하고, 아무도 청탁 안 했지만, 그래도 써야 할 글 많은데, 대체 왜 시작도 안 하고 있니... 나를 매섭게 나무라는 내가 나타나 막강한 파워로 나를 짓누른다. 무기력한 나는 핸드폰을 생명줄처럼 더욱 세게 쥔다.


이대로 침대에 눌러붙을까 두렵다. 어쩌지. 벌써 어두워졌는데, 지금 책상에 앉아서 뭘 쓰겠다는 거지. 나는 무기력이 무서워 억지로 일어난다. 불안으로 터질 것 같은 마음으로 의자에 앉는다. 노트북을열고 아무 글이나 일단 쓴다. 아무거나 생각나는 걸로. 아무렇게나 쭉 써. 아무렇지 않아 보이게... 흠흠. 시간이 새벽으로 넘어가도록 썼다 지웠다 몇 번이고 반복한다. 글이 더디게 써지고 내용도 잘 풀리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불안 때문에 불안하던, 그 불안이 사라졌으니까. 불안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노트북 화면 불빛인 걸 내 진즉 알았지. 글 쓸 때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글을 안 쓸 때 가장 불안한 건 맞다. 날마다 놀고 싶어 안달하며 게으름과 싸우는 난, 행복하기보다는 불안하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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