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일상
연말이 되니 일년 동안 한 일들을 되새기게 된다. 내 방에 이층침대를 들여 놓은 것과 세 군데의 서로 다른 장소에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 것은 두고두고 기념하게 될 좋은 이벤트였다. 사회과학 분야의 책도 꽤 읽었다. 공부하고 싶은 영역이 자꾸 늘어간다는 건 읽고 쓰는 게 일인 내겐 좋은 징조(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올해의 성패를 결정하는 데에는 그닥 힘을 미치지 못한다.
어떤 글을 얼마나 썼느냐. 무엇보다 내겐 이것이 중요하다.
글을 기준으로 보면 올해는 완전 낙제점이다. 1월부터 신문 연재가 3분의 1로 줄었고 작년에 비하면 강의도 많이 하지 못했다. 바쁘지 않았으니 분명 쓸 시간은 충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상 앞에 앉아지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잠시 지쳤나보다 했다. 2019년 한 해에 책이 두 권 나왔고 역사박물관 구술 작업에다가 매달 열 편이 넘는 에세이와 기사를 써댔으니 올 1, 2월에는 정말이지 자판을 쳐다보기만 해도 손목이 시큰거렸다. 하루라도 마감의 압박 없이 푹 쉴 수 있길 얼마라 바라왔던가. 그 꿀같은 휴식의 시기가 3월부터 시작되었다. 쉬고 쉬고 또 쉬었다. 문득 글 쓰고 싶은 소재가 떠오르면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 놓았다. 글감들이 줄줄이 늘어갔지만 그중 글이 된 것은 거의 없다. 책 리뷰라도 쓰자 싶어 책상에 앉으면 마음 속에서 온갖 핑계가 올라왔다. 이 책이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을까, 내가 책을 제대로 읽었을까, 기껏 썼는데 원고료 적게 주면 어쩌지, 글은 다른 정보 좀 더 찾아본 후에 쓰고 일단 넷플릭스부터 보자, 영상 보는 재미에 비하면 글 쓰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잖아... 나는 글을 안 쓰는 것에 익숙해졌다. 마감이 정해진 글 이외에는 그 어떤 글도 점점 쓰기가 어렵게 되었다.
시간은 구름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지금 난, 공적 글쓰기를 해 온 지난 9년 중 가장 적은 양의 글을 쓴 해의 마지막 달을 맞이하고 있다.
어제도 그랬다. 누가 쓰라고 하진 않았지만 '쓰면 좋겠다' 싶은 글이 있었다. 내가 글을 쓰면 누군가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싶어, 쓰긴 써야겠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했다. 침대에 누워 무력하게 고양이 등을 쓰다듬다가, 이러다가 영영 마감이 없는 글은 쓰지 못하는, 타율적이고 수동적인 인간이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워졌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한숨을 쉬다못해 이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 글이 세상에 꼭 필요할까? 사람들이 내 글 재미없어 할까봐 글을 못 쓰겠어."
결국 아무 것도 쓰지 않은 채 저녁을 먹다가 나도 모르게 툭 내뱉은 말이다.
그제야 내 무기력과 두려움의 실체가 어슴푸레 보이는 거 같았다.
아, 내 마음이 이랬구나...
아마도 책 때문인 거 같았다. 내 책 두 권은 일 년이 넘도록 아직 1쇄도 다 팔리지 않았다. 베스트셀러가 되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출판시장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적잖이 실망했다. 열심히 썼는데, 왜 독자들은 내 글을 몰라봐줄까...
결국 탓할 건 내 실력이었다. 독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글을 계속 쓸 필요가 있을지, 나는 나에게 질문의 화살을 날리고 있었던 거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줄기차게.
풀이 죽은 나에게 남편은 자기만 알고 있던 나의 숨은 독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누구누구의 딸래미가 내 책을 밑줄 그으며 읽고 좋아했고, 누구는 신문에서 내 글만 찾아 읽는다고 했고, 나의 새로운 책이 나오길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고...
힘이 됐다. 고마웠다. 얼굴을 알 수 없는 '누군가'들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밝아졌다.
남편의 격려에 힘입어, 오늘 정말 오랜만에 일찌감치 책상 앞에 앉았다. 주말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의 복직투쟁 응원 다녀온, 뒤 늦은 참관기를 써 보았다. 남편이 이야기한 어떤 '독자들'를 떠올리지는 않았다. 사실 글을 썼을 때, 가장 기분이 좋은 사람은 그 글을 읽은 독자가 아니다. 이번에도 예전에도, 행복한 건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그냥 잊혀지고 말았을 사건을 엮어 서사를 만들고, 나의 진짜 욕망과 감정을 마주하고, 이전에 몰랐던 진실을 발견하고, 반성과 성찰에 이르는 과정. 글 쓰기가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통해 나를 투명하게 들여다 보고, 이전보다 나은 나, 진보한 삶을 꿈꿀 수 있을까.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건 충고나 내 자랑이 아닌, 오로지 끈질기고 치열하게 나를 탐구하는 과정 그 자체인 것을. 그러니 내가 쓴 글의 최대 수혜자는 언제나 나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글 쓰는 삶을 살겠다 결심했던 것도, 이 충만함 때문이었다. 글 쓰는 노동이 고되고 늘 만족스럽진 못하더라도 이 행복감만 주어진다면 난 계속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초심을 잃는다는 말은 내게도 유효한 모양이다. 깨닫고 나니 허탈했다. 고작 책 두 권으로 세상이라도 구할 줄 알았던 건가.
자신감이 없어질 때마다 떠올려야 할 생각 두 가지를 정했다.
오직 글을 쓰는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세상에 나와 글자만 남은 것 같은 몰입의 즐거움.
글 쓴 후 반드시 찾아오는, 무엇과도 바꾸기 싫은 충만함과 행복감.
나는 안 쓰는 불안보다는 고된 행복을 자주 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