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버틴 것을 자축하며
2011년 3월부터 글을 써서 먹고 살았으니 만으로 10년이 되었다. 그 이전의 난 글 쓰는 삶이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계기가 된 건 아는 언니 대타로 참여했던 10주 과정의 집단상담 프로그램이었다. 상담사 포함 일곱 명이 다 같이 자신의 과거를 나누며 감정의 움직임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시간. 나는 상담을 하며 되살려진 기억과 감정들로 무척 힘들었다. 특히 3-4주차에 접어들면서 슬픔과 무력감으로 일상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학원 강사와 시민단체 일을 병행하던 난, 단체 일을 잠시 쉬기로 했다. 학원 강사 일은 딱 먹고 살 만큼, 최소한으로 줄였다.
하지만 정말 힘든 건 그 다음이었다. 5-6주차에 접어들면서 각자 상실기(무언가를 잃어버린 순간)에 대한 글을 적어오라고 했다.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았을 때, 갑자기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 생각났다. 난생 처음 혼자 집을 지키던 날, 무서워 울던 내게 외출에서 돌아온 아빠는 “간식 사먹을 돈을 안 주고 가서 운다”고 했다. 내가 정말 그래서 울었나? 아빠의 말이 맞는지, 내 감정이 맞는지 혼란스럽던 어린 나. 글을 쓰면서 그토록 모진 말을 던진 아빠를 원망했지만, 아빠는 이미 3년 전 돌아가신 터였다.
상담실에서 글을 읽고, 돌아가며 공감의 말을 듣고, 상담사의 이런저런 질문에 답을 했다. 그러다 어느 말 끝에 상담사가 말했다.
“그동안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을 택하며 살아오신 것 같아요.”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원하는 것보다 타인 또는 사회가 원하는 삶을 살 가능성이 크다고.
지난 내 선택들이 떠오르면서 역대급으로 눈물을 쏟았다. 완전히 지쳐 전철을 탔다. 인천에 도착하니 저녁 해가 누그러져 있었다. 노을 지는 하늘을 보는데, 갑자기 이 기분을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기분’만이 아니었다. 나는 오랫동안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스스로 나는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며 욕구를 밀어냈다. 국문학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등단을 한 것도, 유명인도, 책에 담을 지식이나 특별한 경험도 없었다. 내가 무슨 글을 쓰겠어? 근데 그 순간엔 정말 글을 쓰고 싶었다. 난 글을 쓰겠어. 돈이 되든 안 되든 그냥 내 이야기를 써보는 거야. 무겁고 우울했던 머릿속에 작은 빛이 스며드는 듯했다.
며칠 후 어느 시끌벅적한 술자리에 갔다가, 아주 오랜만에 동아리 선배를 만났다. 그는 지역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혹시 시민들 글도 실어 주나요?”
그냥 툭 내뱉은 말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우리 신문사 시민기자단 운영하고 있어. 글 실리면 원고료도 줘. 근데 무슨 글 쓰려고?”
그날 집에 돌아와 밤새 고민했다. 무슨 글을 쓸까.
다음날 아점을 먹고 낮 12시에 책상에 앉았다. 자료를 찾고 썼다 지웠다 하는 사이 어느새 어수룩 해가 져 있었다. 과학에세이 두 편을 완성한 순간이다.
당시 학원에서 중학생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고 있었고, 과학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다. 일상 속 숨어 있는 과학 이야기를 쓰면 나도 재밌고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다행히 신문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나는 연재를 하게 되었다. ‘사소한 과학이야기’ 1회가 4월 1일자 신문에 실렸다. 10년이 지난 지금, 220회의 사소한 과학이야기가 세상에 나왔고, 그 중 56편은 2019년 <일상, 과학다반사>(홍익출판사)라는 책으로 묶였다. 그리고 지금 난 다음주엔 마감할 221회차 과학에세이 주제를 고민한다. 처음부터 200회를 쓰겠다고 작정했다면 이렇게 오래 이어갈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지난 10년 사이 6개월 정도 글쓰기를 멈춘 적이 있었다. 글은 취미로만 여기고 직장을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차선책이 아닌 최선을 선택하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했다. 왜일까. 아직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글을 쓸 때 나는 조금 더 사려 깊어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애쓰고, 나의 최선의 표현을 내놓기 위해 집중한다. 그런 나를 만나는 순간이 좋다.
여전히 무명이지만, 그래도 이전에 없던 책 두 권이 내게 남았다. 여전히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새로운 주제가 퐁퐁 솟아나는 것에 감사한다.
내게 집단상담 대타의 기회를 준 선배는 어쩌면 내 수호신이 보내준 귀인이었을지 모르겠다. 내 운명을 뒤바꿔 놓았으니. 앞으로 20년은 더 글을 쓰고 싶다. 10년 지나고보니, 그까이꺼 후딱이다. 물론 그때 내 나이는 환갑을 훌쩍 넘겠지만 손가락관절염이 방해하지 않는 한,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있는 한, 계속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