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러 갈 때마다 나는 점자블록을 유심히 보게 된다.
예전에 장애인 관련 기사를 보는데, 거기서 어떤 분이 다신 댓글을 보게 됐다.
그분은 점자블록을 따라가다 보면 개찰구 출입 방향이랑 점자블록이 맞는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분은 역무원에게 가서 말씀을 드린다고 한다.
댓글을 한참 동안 되뇌어 읽었다. 충격이었다. 점자블록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있어도 개찰구 방향까지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 댓글을 본 후 종종 개찰구를 본다. 방향이 점자블록과 맞는지 확인한다.
점자블록은 보통 한 줄로 이어져있어 양방향이 다 열려있어야만 한다.
마주친 다른 시각장애인 아저씨는 한참을 카드를 찍기 위해서 손을 휘휘 저으셨다. 그래서 살짝 손을 뻗어 찍어드렸더니 "감사합니다."하신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어떤 분이 케인(시각장애인용 지팡이)을 휘휘 저으신다. 사람들을 바삐 제갈길을 간다. 출, 퇴근 시간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한참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분이 계단을 다 내려가실 때까지 옆에서 따라내려 갔다.
횡단보도에서 시각장애인이 케인을 저으며 지나간다. 마주치는 행인은 케인을 피하려 조금 떨어져 걸었지만 시각장애인 분의 케인 반경이 생각보다 커서 걸려 넘어질 뻔했다. 서로의 감각의 크기가 다른 것을 보았다. 비장애인이 피할 수 있는 반경과 시각장애인의 반경은 차이가 있었다.
몇 번의 그런 일들이 지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하나는 나 역시도 아직 시선이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가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멀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수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정말 큰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보이지 않으니까 자연스럽지 않아 시선이 간다. 자연스럽지 않아 이해조차 할 수 없다. 내 주변에, 나한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안 한다기보다 오히려 몰라서 못 한다. 이게 제일 큰 문제다. 이해할 수 있는 접점이 없다.
점자블록의 재질은 가끔, 너무 매끄러운 소재로 되어있는 경우가 있다. 바닥도 마찬가지다. 매끄러운 재질로 광이 날 정도의 매끄러움을 가진 공간들이 있다. 도면을 많이 보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값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여전히 그런 소재가 많이 쓰인다. 그런 소재의 바닥은 물기가 있으면 미끄러지기 쉽다. 내 눈으로 볼 수 있어도 미끄러운데, 보이지 않는 이들은 어떨까. 노약자들은 어떨까. 대로의 신호등은 보행시간이 너무 짧다. 다리를 다쳐 깁스한 동료와 함께 지나갈 때면 어쩔 수 없이 뛰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걸음이 느린 사람들은 어떨까. 생각해보면 배려가 아니라 그들이 시민으로서 받아야 하는 당연한 권리이다.
점자블록과 매끄러운 바닥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매끄러움은 아름답다. 매끄러움은 표면의 울퉁불퉁함을 제거한다. 최대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깎아낸다. 그래서 보이고 싶은 부분만 보여준다. 우리 사회도 아직 그런 것 같다. 볼 수 없는 건, 만질 수 없는 건 감각을 차단시킨다.
한병철의 책. 아름다움의 구원에서는
오늘날 우리는 왜 매끄러움을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매끄러움은 미적 효과의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의 사회 전반적인 명령을 반영한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긍정 사회를 체현하는 것이다. 매끄러운 것은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좋아요 Like를 추구한다. 매끄러운 대상은 자신의 반대자를 제거한다. 모든 부정성이 제거된다.
매끄러움은 전반적인 사회명령. 나는 이 부분이 사회에서도 소수자에게 적용되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이 모여 도시나 건물의 물리적인 부분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존중받을 권리가 있지만 값과 효율을 우선하며 항상 뒤로 가는 것들. 디지털 시대로 갈수록 주변엔 매끄러운 것들이 넘쳐난다. 다가오는 세상에선 개찰구 표시 같은 일들이 더 넘쳐나겠지만, 그러지 않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사는 세상은 아직 보이는 이들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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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널드에서 알바를 한 경험이 있다.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꼈다. 맥도널드는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했다. 내가 일하던 지점엔 두 분의 발달 장애인이 계셨다. 한분은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일하셔서 잘 모르지만 다른 한분은 주로 청소와 정리를 담당하셨다. 구석구석 꼼꼼히 그리고 빨리 잘 하셨다. 나중에 보면 매장 내의 청소를 혼자 홀과 외부, 주방과 기계까지 다 하셨으니 안 한 게 없었다.
어느 지역에 지역주민의 특수학교 반대를 눈물로 호소하는 장애어린이들의 부모님들을 기사로 봤다.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하는 게 아닌 당당한 시민으로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도 있지만 최근 페이스북에서 좋은 영상을 봤다. 허핑턴포스트에서 올라온 영상인데 발달장애인을 위주로 한 회사. 그리고 창업가의 인터뷰 영상이다. 그 영상에서 그들은 이런 회사가 없어져야 좋은 나라라고 한다. 그러길 바란다. 이런 회사들이 많아지길 바라기보다 우리가 서로 어울리는 게 자연스러운 날이 오길 바란다. 그래야 서로가 더 이해할 수 있으니까. 언젠가 그들의 도시를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aa1f21ee4b07047bec4cd2a
그리고 또 하나는 비정상회담으로 알려진 알베르토 몬디가 만든 비누회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