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회사에 왔다. 나는 자리가 없어 우리팀에서 멀리 떨어져있다가 정리된 몇 사람이 회사를 떠난 후에야 팀의 자리로 들어올 수 있었다. 내 옆자리에는 나보다는 어린, 아니 그 당시에도 어렸던 한 사람이 나와 같은 직급을 가지고 앉아있었다.
처음에 그녀와 나는 함께 밥을 먹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와 먹었다기보다 그녀가 있는 무리에서 나를 끼워주었다. 처음 본 그녀는 찌개가 짜다며 인상을 찌푸리다고 찌개에 물을 부었다. 그 인상이 강하게 남아 그녀 옆으로 가기까지 꽤나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몇 번의 일로 인한 대화 역시도 그 인상을 지워주진 못 했다.
자리가 바뀌며 그녀 옆에 가고 얼마쯤이 지나,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주었다. 그녀는 내가 알던 이미지와 달리 참으로 발랄하고, 명랑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주는 밝은 기운에 낯을 많이 가리는 나도 그녀와 금방 친해졌다. 이후 회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가고 그녀와 내가 정들고 의지했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면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녀는 어린 나이지만 그 나이 또래에 비해 일을 잘했다. 꼼꼼하고 내가 배울 부분도 많았고, 내가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주었다. 그녀 나이의 사람들보다 직급이 한 단계, 두 단계 높을 때도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느낀 건 학력이나 지적 수준이 일과 반드시 비례하지도 않을 뿐더러, 평상시에 아주 멀쩡한 사람이 일만 하면 이상해지는 경우도 있었기에 그녀의 경우는 일을 잘해 상사들이 그녀와 일하기를 제법 좋아했다. 그녀와 나는 같이 진급하고 같은 타이밍에 같은 힘듬을 겪으며 지냈기에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가까이에서 공감했다. 그녀는 너무 어렸고, 진급을 너무 빨리한 까닭에 같은 직급이지만 연차는 낮은 사람이나 자신보다 직급이 낮지만 나이가 많은 남자 직원들을 그녀를 존중하는 척 했지만 은근 슬쩍 까내렸다. 그녀의 밝음이 그들에게는 만만해 보였던 것이다. 또 완전 윗 상사들은 그녀의 나긋한 어투와 밝음을 핑계삼아 말도 안되는 일 양을 그녀에게 떠넘기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의 밝음은 3년이라는 시간동안 점차 사라졌다. 밝던 그녀는 어느 순간 웃음을 잃었다. 그들은 나이있는 나에게는 덜 했지만 누구나 다 하기 싫어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 둘에게 동시에 주는 바람에 우리는 늘 같이 분노하고, 같이 울었다.
몇 번의 실랑이와 윗 사람들과의 대화는 더이상 진전이 없다고 생각됐다. 그렇게 우리는 회사들어온지 1년을 제외하고 2년을 싸워왔다. 그들은 늘 우리를 무마시키려고 했지, 정말 어떤 게 문제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이곳에서 많이 성장했다. 다만 성장의 고통이 맘을 도려내었다. 웃음을 도려냈다.
모든 성장엔 고통이 있기 마련이지만, 의지마저 앗아갔다. 의지를 다 잡을 때마다 불러내어 의지를 꺾어버렸다. 그렇게 몇 번을 참고, 또 참다 마침내 그녀는 결단을 내리고 이제 곧 사직한다. 이 늪과 같은 곳을 드디어 사직한다.
사직은 또 다른 시작.
그녀의 삶에 웃음이 다시 찾아오기를.
늘 고마웠어.
너가 없는 내가 슬프지만 잘 견디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