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먼 미래, 인류는 우주 여러 곳에 식민 행성을 개척하고 개척민을 보낸다. 오필리아는 40년째 콜로니 3245에서 살아왔다. 그녀의 나이 일흔에 콜로니 3245를 관리하는 기업 심스 뱅코프가 거주민의 이주를 결정한다. 오필리아는 마음속으로 이주를 거절한다. 그녀에게 거절의 권리는 없지만, 회사에게도 그녀의 기본권을 좌우할 권리가 없다. 라고 오필리아는 생각했다. 그렇게 모든 이웃들이 떠나고 70대 할머니 오필리아는 홀로 남았다. 주변의 시선도, 남자는 어때야 하고 여자는 어때야 한다는 문화적 고정관념도, 젊음과 늙음의 차별과 생산능력의 차별도 없는 곳에 홀로 남았다. 할머니는 홀로 식량을 준비하고 홀로 집을 가꾸고 환경을 정돈한다. 남겨진 자원으로 그녀의 남은 생은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체계도 어떤 삶의 기준도 없다. 오필리아가 살아가는 것이 이 행성에서 유일한 인간의 살아감이다. 그래! 그것이 바로 '살아감'이다! 행성을 떠나지 않은 오필리아의 결정에 대하여 누군가는 묻는다. "이주 중에 죽을까봐 두려웠나요?" 오필리아는 속으로 생각한다. '언제나 죽음으로 돌아간다. 젊은것들은 죽음에 집착한다.' 오필리아는 다시 설명하려고 애썼다. "죽음 때문이 아니에요. 삶 때문이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살지 말고 살기 위해 살라는 지혜로움이 오필리아와 같은 용기 있는 자의 선택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홀로 있을 때 공포를 느낀다. 인격적 관계가 없는 삶은 자유를 빼앗긴 것만큼이나 공포스럽다. 오필리아가 혼자라는 공포에 직면했을 때 콜로니 3245의 원주민이 등장한다. 40년 만에 처음 발견한 그들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징그럽고 두렵게 느끼며 인간과 외계인이 조우한다. 엘리자베스 문은 다양한 성격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언젠가는 외계인과 조우할 인간의 심리를 예리하게 통찰한다. 오필리아가 있는 지점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인간은 또 다른 마을을 건설하려 했다. 그곳에 내린 우주선은 정체 모를 강력한 존재들의 공격을 받아 전멸한다. 우주선이 원주민 외계인들이 살던 마을 위에 착륙하는 바람에 마을이 파괴되고 많은 이들이 죽었기 때문에 그들의 분노를 산 것이었다. 오필리아는 우연히 이 사건이 일어날 때 주고받은 무전기록을 듣는다. 콜로니 3245에 그런 강하고 위협적인 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지금껏 몰랐다. 40년 만에 이 행성의 지적 생명체가 인간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인류의 공식적인 대표자가 아닌 할머니 오필리아에게.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낯선 존재 앞에서 두려움과 호의를 동시에 느낀다. 개인으로서의 우리는 쉽게 다른 동물을 의인화하고 그들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감정을 느끼리라고 기대한다. 그것은 자연의 일원으로서의 본성이다.
그러나 인간집단의 군중 속에 들어가면 입장이 달라진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자연이나 다른 종의 생명체를 어느 정도 훼손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대륙붕과 해군기지, 갯벌과 항구, 숲과 관광 케이블카, 핵폐기물과 바다, 그물 쓰레기와 고래, 샥스핀과 상어, 이산화탄소와 지구온난화,.....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도 군중의 어리석음에 휩쓸려 어리석은 선택에 무심하게 동참한다.
오필리아는 외계인을 점령할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인류의 공식적인 대표자들은 인간의 우월한 과학과 기술로 교섭의 우위를 점하려 한다. 지적 생명체가 발견된 이상 그들은 더불어 살아갈 존재가 아니라 경쟁자다. 인류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다른 피부색과 이민족들에게 그래왔던 것처럼, 높은 지능의 유인원들과 고래와 코끼리들에게 그래왔던 것처럼, 기술적 우월함이 존재의 우월함이라고 착각한다. 그런데 이 외계인들은 인류보다 과학기술이 뒤처져 있었지만 지능은 월등하다. 출발점이 다를 뿐 언제라도 추월할 수 있다. 그런 존재들이 인류에게 적대감을 품는다면 위험하다. 인류의 공식적인 대표자들은 이렇게 판단했다. '미개한 외계인들에게 인도주의적인 마음으로 기술적 시혜를 배풀자. 그러나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구속이 필요하다.' 그러나 외계인들은 전혀 그따위 태도를 '인도주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자 인류의 공식적인 대표들은 격분한다. '역시 이 미개한 것들은 위험해!' 누가 미개한 자들인가? 인간들은 지금도 지구상에서 이런 식의 폭력을 휘두른다. 인간 외의 자연 뿐만 아니라 인간끼리도 마찬가지다. 인종차별, 국적차별, 지역차별, 경제적 차별...
그러나 오필리아는 인간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벗어버린 사람이다. 그는 행성에 의탁하는 모든 생명들과 동등한 존재다. 능력과 힘에 의한 우열은 없다. 공평한 우주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타자의 삶의 자리를 자기 삶만큼 존중한다. 누구도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지 않은 삶. 이런 사고방식이 죽음을 피하기 위해 사는 방식이다. 삶 때문에 살아보자. 늙은 몸, 더 이상 사회적 생산성에 기여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되던 오필리아가 외계인들에게는 소통 가능한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녀는 편견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필리아의 능력은 나와 세상의 모든 살아감을 사랑하는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