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惡)의 문제 (악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

정달용

by 마니피캇

정달용 악의문제 (1976)


- 악의 의미 :

1) 선(善)의 결핍

2) 적극적인 '선()'의 거부 또는 대립

스콜라철학은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통에 따라 '악'을 현실적인 실재라기 보다는 '선'의 결핍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는 '악'의 적극성과 능동성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실제로 '악'의 현상에는 '선'과 마찬가지로 어떤 의도와 의지가 들어있다. 즉, '선'과 '악'은 각자 적극성과 능동성을 내포한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선'에 대한 의도적, 적극적 대립 상태이다. 밥을 굶는 현상은 가치중립적이지만 누군가 그 사람의 밥을 빼앗았기 때문에 굶는 것이라면 악이다. 돌을 던지는 행위는 가치중립적이지만 누군가를 겨냥했다면 악이다. 이처럼 '악'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행위의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의 나약함이나 선의 결핍으로 '악'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은 핵심에 다가가기에 부족하다. 결론적으로 '악'이라는 현상은 '선'의 결핍의 차원을 넘어 '선'에 대한 적극적인 거부라고도 할 수 있다. 악은 어떤 의지에 따라 발현되는 것으로 보인다.


- 악의 모순

'악'이 적극적인 사람의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말은 한편으로 모순적이다. 인간의 모든 의지는 본질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인간 의지가 본질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는 말은 인간의 본질적 의지가 향하는 방향이 '선'이라는 뜻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것이니까 말이다. 다만 개개인이 무엇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지의 차이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그로 인해 상충하는 갈등이 악을 발생시키는 의지로 이어질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마따나 "강도, 변태, 살인자, 폭군들이 생각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라. 악인들이 누리는 즐거움은 참된 선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철학적 통찰이 아니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추구는 구체적인 내용을 분리하고 행복하고자 하는 의지 그 자체만 두고 먼저 판단해 보자는 말이다. 그러면 인간의 행복추구의 본능 또는 행위 그 자체가 선한(좋은) 일이라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만일 어떤 사람의 의지가 '악'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면 적어도 그는 나름대로 자기가 생각하는 '선'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우스운 논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본질적으로 좋은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의지로부터 '악'이 가능하게 되는가. 어떻게 '악'이 나올 수 있게 되는가. 어떻게 적극적으로 '선'을 거부하거나 '악'을 의도할 수 있는가.

먼저 인간의 의지가 무엇인지 이해해 보자.


- 인간 의지의 초월적 본질

베른하르트 벨테는 인간 의지는 '악'을 의도할 수 없다고 하였다.(B. Welte, 1959)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인간의 의지는 '선'과 관련한다는 의미에서만 의지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인간 의지가 추구하는 '선'은 초월적인 방향으로 열려있다. 즉, 의지는 정신적인 어떤 것이기 때문에 '있는 것'과 '있을 수 있는 것'을 포괄하는 무한한 원의와 욕구를 가질 수 있다. 뇌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은 뇌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이상 제한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지는 상상하는 욕구까지 추구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인간의 의지를 가리켜 "정신적인 존재"라고 하면서 "어떤 의미에서 모두이다"라고까지 하였다. 인간의 의지는 이러한 이유로 제한된 존재를 뛰어넘어 한없는 차원을 추구하려는 본질을 가진다. 이는 단순히 '선'을 행위한다는 것을 뛰어넘어 '선'그 자체가 되기를 추구하는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본질이다.


- 인간 의지의 존재양식 : 무한함과 유한함의 공존

인간의 정신적 의지와 구분되는 자연의 의지는 일정하고 한정된 '선'을 향한다. 소위 잘 먹고 잘 사는 생물학적 목적을 향하는 의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적 의지는 과학으로 정량화할 수 없는 무한의 영역이다. 정신적 의지는 한정되지 않고 제한되지도 않는다. 인간의 의지는 자연 의지가 가지는 제한된 의미의 '선'의 목적을 넘어 '선'의 근원 자체까지 지향할 수 있다. 즉, '선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선의 본질을 알고 싶어 하는 의지도 인간이 가지는 정신이다. 인간의 의지는 이런 초월적이라는 이유로 신(神)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이 제한적 존재이면서 무한한 존재라는 특별함이 설정된다. 그러나 이 초월적 특성이 인간을 신격화하는 범신론적 오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초월적 성격을 가진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신이 아닌 이유는 인간 의지의 존재양식 때문이다. 인간이 소유한 의지는 무한으로 열려있으나 인간은 자기의 본질인 이 의지를 남김없이 실현할 수 없는 제한적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 가능성이 반드시 실현될 수는 없다. 즉, 인간의 의지는 본질적으로 무한한 존재적 특성을 부여받았으나 그 무한성은 성취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가능성의 상태로 주어졌다. 벨테는 이를 두고 '한정된 무한한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 악의 가능성과 근원

정신적 의지라는 무한의 가능성을 부여받은 인간은 삶 속에서 그 가능성을 실현해 나가야 하는 과업을 또한 부여받았다. 이러한 과업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 내면에서 형성되어 발현되는 일종의 '존재 목적'이거나 '욕구'다. 다시 말해 행복의 추구는 누가 시키거나 외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자체로 타고난 의지다. 그래서 인간의 행위 하나하나가 행복을 추구하는 자기 의지의 실현이다. 의지가 행복이라고 규정하면서 가리키는 '선' 또는 '좋은 것'을 달성하기 위해 행동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행위 하나하나는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언제나 의미를 갖는다. 그 사람의 정신적 의지의 완성도에 따라 결함이 적은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신이 아닌 인간은 반드시 행위의 결함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은 완전한 '선'을 실현할 수가 없다. 바로 여기에 '악'이 존재할 가능성이 발생한다.

유한하면서 동시에 무한한 본질을 가진 인간은 이 두 본질의 존재양식의 차이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을 그르칠 수가 있다. 또한 인간은 스스로가 설정한 것을 '선' 그 자체로 삼고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심리학자들의 여러 연구를 살펴보면 범죄자들도 자신의 도덕적 수준은 평균 이상이라고 대답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보통 사람들도 자신의 도덕성을 타인에 비해 높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에서 이를 두고 '도덕적 우월성 편향'이라고 부른다. 바로 이 때문에 인간은 '악'한 행위를 하면서도 자신이 향하는 방향이 '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심지어 그것을 절대적 '선'이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진짜 절대적인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설정한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설정한다. 자신이 설정한 좋은 것, 행복, 선의 기준을 달성하기 위해 사랑이나 평화나 존중 등의 보편적 가치의 목표를 파괴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를 악의 고차원성이라고 한다.


- 악의 현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간 이해

1) 인간은 정신적 의지라는 무한한 본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현실적으로 한정된 존재이므로 필연적으로 결핍 가능 상태에 있다. 이 결핍 상태란 결국 인간이 현실적으로 자기 본질의 완성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완성되어 있지 않으나 완성으로 향하는 개방적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2) 정신적 존재로서 인간은 한계를 뛰어넘어 무한한 자기 본질을 추구해나간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에게는 본성적으로 무언가 무한으로 열린 가능성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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