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경, 어른의 어휘력

독서노트

by 마니피캇

유선경, 어른의어휘력


도발적이고 직설적인 제목. 그 느낌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어른다운 어휘력을 갖지 못한 나이 먹은 이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뚝뚝 떨어진다. 나도 좀 까칠한 성격이라 그런지 똑똑하고 까칠한 글에는 미묘한 동지 의식이 생긴다. 그리고 평소 맞춤법에 예민한 사람들도 이런 책을 좋아할 것이다. 대체로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읽었으리라 생각되는데 댓글 반응은 극과 극이다. 읽어보니 부정적 반응들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저자의 어휘력은 한국어 사용자 전체를 두고 보아도 상위 0.00001%의 계군고학일듯 하다. 아무리 수준 높고 아름답게 어휘를 쓴다고 해도 듣는 사람들이 못 알아들을 정도로 생경하면 이런 부정적인 반응도 생겨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십 분의 일 쯤 읽다가 내 형편없는 어휘력을 자책했다. 부정적 댓글들의 주인들도 나와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책의 풍부한 어휘를 외우려고 노력했다. 한국어에 이런 단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선 단어가 새끼 엮듯 끝도 없다.


노트에 옮겨 적다가 문득 '이걸 어디다 쓰냐.' 하는 생각에 이른다. 짜장면이 표준어로 등재된 것은 언중(言衆)이 그런 흐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점점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 '소나기밥을 먹었다.'라는 표현은 그나마 느낌으로 과식의 의미를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밤새 고상고상 했어.'라고 하는 표현에 '밤새 고상한 생각을 했다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단어를 살리고 싶은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변화는 어쩔 수가 없다. 사람들이 쓰지 않는 단어는 자연히 도태될 것이다. ('고상고상'은 '잠이 오지 않아 누운 채로 뒤척거리며 애를 쓰는 모양'이다.)


저자의 말대로 대중의 평균적인 어휘력은 솔직히 건강하지 못하다. 독서량이 줄어서 어휘력이 떨어지고, 어휘력이 떨어지니 문해력이 떨어지고, 문해력이 떨어지니 다시 독서량이 줄어든다. 이 악순환은 사고의 깊이도 갉아먹는다. 저자는 주 5권 이상 책을 읽는다고 적었다. 처음엔 오타인가 했다. '월 5권이 아니라 주 5권이라고?' 초능력자처럼 보였다. 물리적으로 가능한건가? 책을 빠르게 읽지 못하는 지인에게 "어휘력이 부족해서"라고 조언했다는 부분에서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읽기가 느린 편이기 때문이다. 내 책 읽는 습관이 천천히 곱씹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현듯 최근 물리학과 신경과학 서적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이 떠올랐다. 전문적 단어를 최대한 적게 쓴 대중서적이었지만 낯선 용어와 서술은 가뜩이나 느린 읽기 속도를 더 잡아끌었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가속도가 붙었다. 다음에 비슷한 카테고리의 책을 읽을 때는 조금 더 빨라졌고 게다가 더 재미있었다. 이것이 어휘력의 조화로구나. 이런 깨달음이 없었다면 나도 이 책을 흉보는 댓글을 달았을지도 모른다.

신경과학자들에 의하면, 뇌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어휘가 풍부하지 않거나 기록된 어휘들을 적절히 연결하고 활용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이해력도 떨어진다. 뇌신경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다. 이해력이 떨어지니 읽기가 느려지고 재미도 없다. 서울대 장대익 교수는 "독서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고,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활동이다."라고 하였다. 뇌는 우리 신체기관 중 에너지 소모가 가장 크고 독서는 뇌세포를 의도적으로 활성화 시키는 작업이다. 그러니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느긋하게 쉬면서 하는 독서란 없는 셈이다. 그래서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책은 빡세게 읽는 겁니다."라고 했던가! (농담임. 최재천 교수님은 열심히 읽어야 함을 강조했던 거였음.) 아무튼 그런 고에너지 소비의 과정을 여러 번 거치고 나면 일주일에 다섯 권의 책이 거뜬한 '뇌력'을 기르게 되는가 보다. 근육이 커지면 힘이 더 세지듯 말이다. 돌아보니 나는 형편없는 어휘 약골이었다.('무식하다.' 보다는 듣기 부드럽지만 독서를 자극하기에는 '무식하다'가 나으려나?)


"어휘는 내 인격을 드러낸다."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형편없는 표현을 선택하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는 지도 모르고 고칠 생각을 않는 사람들은 안타깝다. 아니, 사실 끔찍하다. 나는 혹시 저런 식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지 두려워지기도 한다. 누군가에 대한 모욕을 주제로 삼거나 어휘력이 부족하여 노상 욕을 추임새로 달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차라리 내 귀와 입을 다물게 된다. 이런 내가 지나치게 꼰대스럽고 사회성이 부족한가 싶었는데 저자도 나와 비슷한 것 같아 반가웠다. 부적절한 언어표현을 지적하거나 틀린 맞춤법을 바로 잡아 주는 것도 사실 지치는 일이다. 감정에 금이 갈 수도 있고 더구나 잘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이상 실수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행동이지만 상대가 기분 나빠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 대한 댓글들처럼 '니 잘났다!' 하는 시기와 비아냥이 돌아오기도 한다. 그것도 당연한 인간 본성이다. 그런 것을 헤아리는 것도 인격이기도 하고. 다만 이런 지적을 오해할 필요는 없다. 어휘력의 풍부함이 높은 인격과 같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휘를 많이 안다고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갖췄다고 할 수 없다." 어휘와 인격의 관계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대에게 어떠한 의도로 쓰는지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어휘력을 키우는 것은 품성과 품위의 계발하는 도구를 얻는 것이다. 처음부터 방향을 고약하게 잘못잡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휘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 고약한 품성이 화려하게 드러날 뿐이다.


저자는 책을 일주일에 5권 이상 읽는 다독가답게 뇌 과학과 심리학과 문학, 역사학 등의 해박한 지식 세계를 종횡하며 어휘와 우리 사고의 관계를 명쾌하게 정돈한다. 어휘력이 왜 중요한지, 책을 왜 읽어야하는지, 나는 왜 무식한지, 그는 왜 또 무식한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LED등 하나가 번쩍 켜질 것이다.(역시 직설적으로 무식하다라고 하는 게 맛은 산다. 아! 내 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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