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에저 스턴버그,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엘리에저 스턴버그

by 마니피캇

엘리에저 스턴버그,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뇌는 혼란을 용납하지 않는다. 혼란스런 상황이 닥치면 안 혼란스럽도록 모든 신경에 명령한다. 혼란을 다스리는 것일까? 전혀 아니다. 그냥 안 혼란스럽다고 인식하게 만든다. 스스로를 속이는 거다.


뇌는 어떻게든 모순되지 않은 상태를 만들려고 애쓴다. 실명하였으나 자신이 실명하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톤 증후군(Anton's syndrome)이라는 희귀 질환이 있다. 그들은 보지 못하지만 잘 보인다고 주장한다. 안톤 증후군 환자들은 실명으로 인해 실수를 하게 되면 주변이 어두워서 그렇다거나 안경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그렇다는 등의 이유를 댄다. 물론 사실과 다르다. 이들이 실명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시각을 받아들이는 뒤통수엽의 시각피질과 그것을 종합하여 영상화하는 왼쪽 마루엽(두정엽) 사이의 상호작용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시각정보를 받지 못한 마루엽이 아무런 영상을 만들어 내지 못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톤증후군 환자들은 명백히 자신들이 '보고 있다'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안톤증후군 환자들은 후천적인 시력의 상실이기 때문에 본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고 학자들도 그들이 실제로 이미지화한다고 인정한다. 시각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없어도 뇌는 영상을 만들어내고 우리로 하여금 인식하게 할 수 있다. 안톤증후군 환자들은 뇌가 상상해 낸 영상을 실제로 자신들이 보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들의 뇌는 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일까. 이것은 혼란을 평정하는 뇌의 무의식적인 절대 왕권이다.


안톤증후군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도 뇌의 이러한 작용을 자주 경험한다. 꿈에서 우리는 모순 투성이의 상황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대체로 이상하다고 느끼는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 자고 있던 다른 뇌 부위가 깨어났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이다.) 수면 상태에서 뇌 활동이 만들어내는 여러가지 영상과 음향이 꿈속에서 본인에게만 보이고 들린다. 실제 감각 기관은 뒤통수엽으로 아무 정보를 보내지 않지만 무언가가 다이렉트로 마루엽에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은 본능 또는 무의식의 주체로 여겨지는 뇌줄기 부위가 우리 안에 내재된 어떤 기억을 무작위로 쏟아낸 정보다. 상상이지만 뇌 안에서는 실제로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루엽이 보여주는 시각, 청각, 촉각 등은 모두 깨어있을 때 감각을 해석해서 우리가 느끼게 해주는 그것과 동일하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의 전개가 나타나면 뇌가 평소처럼 이상하다고 판단하지 않고 그것을 자연스러운 논리라고 인식하도록 강제한다. 그리고 자는 동안 우리는 대부분의 가짜 신호에 '진짜로' 속는다. 뇌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물리현상과 인간관계도 아무렇게나 우리 앞에 펼쳐둔다. 우리는 그것을 전혀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기까지 한다.


놀랍게도 꿈에서 활동하는 뇌의 신호는 깨어있을 때도 쉬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깨어있을 때에나 잘 때에나 쉬지않는 뇌 부위이기 때문이다. 만일 꿈을 일으키는 뇌 활동이 다른 뇌 활동을 압도하면 깨어있을 때에도 꿈같은 현실을 겪을 수 있다는 말이다. 꿈에서나 가능한 흐트러지고 통제받지 않는 행동처럼 현실에서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 본성의 온갖 편향이나 본능을 통제하지 못하는 행동들 말이다. 이건 상상이 아니다. 일례로 저렇게 꾼 꿈을 두고 뭔가 계시를 받았을 지 모른다는 희망 또는 두려움에 쉽게 빠지지 않는가? 꿈의 패턴을 해몽하는 네이버 지식인은 과학이 이토록 발전해도 여전히 인기 질문이다.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해몽을 무의식적으로 미리 정해두고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얽매인다. 이 책을 읽고나면 그런 무의미한 행동에서 벗어난다. 그렇지만 모든 꿈이 그렇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초자연적 현상이란 과학 한계 너머의 영역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꿈은 내 뇌줄기가 쉬지않고 만들어내는 정돈되지 않은 정보 뭉치다. 전문용어로 개꿈이라고 부른다. (단, 심리학적으로 의미없는 정보라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이해하게 된 세상 만사 또는 지식의 통섭>


- 예를 들어, 예쁜 여성이 지나가면 건강한 남성들은 대부분 시선을 빼앗긴다. 멋진 남성이 지나가면 건강한 여성들은 대부분 시선을 빼앗긴다. 그들의 영혼은 잘못이 없다. 유전자가 시킨 것이다. 그런데 훔쳐본 것을 누군가에게 들킬 것 같으면 뇌는 안봤다고 진심으로 우긴다. 우리는 스스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뇌는 사건이 일어난 후 합리를 만들고 스스로도 속여서 그 태도를 주장하게 만든다. 그러나 생물에게 이성에 끌리는 유전자가 없을 수는 없다.


- 뇌는 세상 만사에서 패턴을 읽는다. 심지어 전혀 인과관계가 없어서 패턴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데도 패턴을 만들고, 그렇게 만든 패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믿어버린다. 충분히 회의하고 합리적인 결과를 추구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그냥 원하는 바를 가장 잘 만족시켜 주는 패턴을 믿는다. 여러 사람이 주장하거나 여러 사람이 권위 있다고 여기는 사람의 주장은 비판을 더 잘 생략한다.

주식시장에서는 패턴을 '예상'하다가 폭망하는 사람들이 항상 나타난다. 주식을 보면서 뇌가 만드는 예상은 얼마나 달콤한가! 주식 투자자에게 뇌가 지어낸 이야기는 아마도 세이렌의 노래처럼 황홀한 공포다. 그 달달한 예상에 속으면 죽는 거다. (참고로 "주식시장이 왜 저렇게 미쳤는지 이해하려면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를 읽어보라." 라고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말했다.)


- 조삼모사에 잘 속는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이런 류의 착각은 영장류와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말했듯, 어떤 거대한 혁명적 사건으로 사회가 뒤집어져도 1~2년 만 지나면 용수철처럼 원래 상태와 비슷한 정신상태로 돌아온다. 스스로 끌어내린 자들에게 다시 표를 주고도 많은 사람들은 이상한 줄을 모른다. 딱히 2022년의 대한민국을 콕 찝어 하는 말은 아니다. 인류의 진화생물학적 현재라고나 할까. 진화생물학적 견해로는 앞으로 최소 10만 년은 비슷한 수준의 인류가 계속 된다. 이 바보같은 인류의 반복되는 역사를 간단하게 찾아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따끈한 신간으로 톰 필립스의 [인간의 흑역사]와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의 [바보의 세계]를 책꽂이에 꽂으시길 권한다.


- 나뭇잎에서도 사람 얼굴을 상상하고 개오줌 자국에서도 사람 얼굴을 본다. 아무 생각없이 멍하게 보고 있으면 더 잘 보인다. 자동차에서 표정을 읽고 앞과 뒤가 다른 표정이라고 생각한다. 구름을 보며 조각가가 되고 별을 보면서 별자리를 잇는다.


- 인간은 누구나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각자의 기준으로 '해석해서' 인식한다. 타인의 마음도 내 마음대로 착각한다. 혼자 이야기를 만들고 세상이 자기 이야기와 다르게 흘러가면 괴로워하거나 분노한다. 과거의 기억도 왜곡하고 왜곡된 기억을 확신한다. 나중에 객관적으로 틀린 기억이라는 것이 밝혀져도 그 객관적 증거를 외면하기도 한다. 우리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다. 그러므로 회의하는 태도를 훈련해야한다. 회의하는 태도에 대한 역작은, 물론 많겠지만, 내가 읽은 책 중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스완]과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가 충격적인 으뜸이었다. 기억의 왜곡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는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 , [1.4킬로그램의 우주, 뇌]가 게으른 나에게 훌륭한 요점정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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