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인 의식 차원의 욕망과 잠재의식 차원의 욕망은 대체로 같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심리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페르소나라고 부르는 이 가면을 쓰고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사실은 연기를 한다.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에 맞게 내 말과 행동과 생각을 검열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만일 세상에 나 혼자 뿐이었다면 페르소나를 연기할 필요가 없다. 사회적 역할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人間)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우주의 관계는 우리 존재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본성적 자아와 세상에서 어느 배역으로서의 페르소나를 동시에 살게 된다. 겉으로 드러내는 욕망은 가면을 쓴 배역으로서의 욕망이다. 따라서 무의식의 기저에 깔린 숨겨진 욕망은 보여주는 욕망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 트리거가 될 만한 사건이 발생하면 무의식적 욕망과 의식적 욕망은 반드시 서로 모순을 확인하고 충돌하게 된다.
그렇다면 본성적 자아는 나이고 가면을 쓴 자아는 내가 아닌 것일까?
내 아이들은 나처럼 공황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마음이 건강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너무 추상적이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끝도 없이 미궁으로 빠지는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막막하다. 그래서 반대로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것이 어떤 상태인지를 생각해보았다. 공황장애나 우울증, 강박증, 신경증, 지나친 나르시시즘, 시기와 질투,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등 내면을 다스리지 못하고 타인과 또는 세상과의 관계를 편안하게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마음의 건강을 잃은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심각한 증상은 외부와의 소통의 문을 닫는데서 비롯한다. 소통의 문을 닫았다는 것은 생각과 결론이 내 머릿속에서만 맴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되면 적절한 자기표현이 안된다.
그래서 심한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적절한 시점에 올바른 페르소나를 입지 못한다. 소통이 어려운 사람이므로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교사로서, 제자로서, 경영자로서, 정치인으로서, 군인으로서, 단체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연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뇌는 다른 사람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세상과 이웃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페르소나가 너무 옅어지면 잠재된 무의식적 욕망을 거르지 않고 분출하여 사회와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 페르소나를 잘못 입게 되면 자기 본성을 심하게 거스르거나 잘못된 신념을 형성하여 자신과 자기 주변까지 억압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의 건강이란 페르소나를 잘 쓴 상태, 즉 인간답고 인격(persona)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이다.
페르소나는 또한 나 자신이다. 엄밀히 말해 가면이 아니라 진면이다. 여러 가지 진면이 있을 뿐이다. 삐딱하게 쓴 페르소나는 나의 삐딱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