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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피캇 Aug 18. 2022

신념이 만든 마음의 좁은 문

앙드레 지드, 좁은문

앙드레 지드, 좁은문, 1909


 사촌 간의 결혼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시대의 프랑스. 주인공 제롬과 알리사는 사촌 지간이다. 알리사는 제롬의 외사촌으로서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자란다. 가족들은 모두 두 사람이 결혼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주인공들이 어렸을 때 알리사의 어머니는 젊은 장교와의 외도 끝에 남편과 세 아이를 버리고 집을 나간다. 제롬의 1인칭 관찰에 의하면 알리사의 어머니, 그러니까 제롬의 외숙모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바람피우는 상대를 자녀들이 함께 있는 집으로 들이거나 제롬의 아버지가 죽어 집안이 상 중일 때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였다. 제롬이 기억하는 외숙모는 짧게 서술되어 있지만 독자들은 그녀가 요염하고 교태로우면서 과한 색욕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알리사의 외모는 엄마를 닮았다. 딸이 엄마를 닮았다는 말은 특별할 것이 없는 정보이지만 작가는 절묘한 위치에 이 문장을 배치하였다. 그러나 알리사는 어머니와 철저하게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간다. 모두의 예상대로 알리사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했다. 제롬은 그녀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알리사도 제롬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제롬을 사랑하면서도 이성을 사랑하는 것을 죄악시하고 점점 수도자와 같은 삶을 추구한다. 제롬이 알리사에게 빠져들수록 알리사는 종교적 엄격주의로 빠져든다. 제롬에 대한 사랑과 엄격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알리사의 양가감정에 제롬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알리사 자신도 인지부조화를 벗어나지 못한다.

  

 작품 초반 알리사의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면 알리사의 심리적 성장이 왜 저런 식으로 되었을지 추론할 수 있다. 알리사의 성격은 단순히 잘못된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알리사가 외숙모와 닮았다고 했다. 그러나 알리사의 성격은 자랄수록 그녀의 엄마와 극단적으로 반대가 된다. 저자는 작품 초반 알리사에게서 외숙모 같은 노골적이고 개방적인 성에 대한 태도를 기대(또는 예상)하게 했지만 나중에 이 기대를 뿌리까지 뽑아버린다. 그러니 독자들은 알리사에게 더욱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작가가 노린 독자의 심리 변화일지도 모른다.


 이로써 독자들은 알리사의 성격에 대해 폭넓은 고찰을 요구받는다. 종교의 잘못이 아니라 종교적 가치를 해석하는 사람의 본성이 문제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앙드레 지드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좁은 문>은 -종교심을 소재로 하지만- 교심을 넘어 인간이 어떤 생각을 신념화하게 되는 보편적 심리의 본질을 고민한 것 같다.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더라도 신앙행위 또는 신앙생활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믿음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굳게 믿는 마음을 독실함이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종교가 쌓아온 윤리와 규범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독실한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도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경우가 많다. 종교를 빙자한 수많은 사건들이 종교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일어난다. 알리사의 행동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신앙적으로도 별 의미 없지만 당시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장려되었고 그녀 개인적으로도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방식이었다. 이와 반대로 독자들은 그런 그녀의 삶을 보고 종교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어서 이런 비극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양측은 모두 각자의 생각에 갇혀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뇌는 독백을 하고 모든 대화는 독백의 충돌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이런 구구절절한 감상이 내 마음속에 살고 있 또 다른 알리사가 쏟아낸 일방적인 독백일 지도... 작가 러셀 T. 데이비스는 좋은 작품은 언제나 자기 생각만 하는 독백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좁은 문>은 굉장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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