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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uwinetasting Jul 23. 2020

비 오는 날 와인 한 잔

mandu의 와인 이야기 & 테이스팅 노트

비 오는 날 술이 당기는 건 알코올에 대한 남다른 애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으레 그래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둑해진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방울은 어느새 와인 한 모금으로 바뀌어 있곤 한다. 비 오는 소리를 안주 삼아 마실 수 있는 와인은 무수히 많겠지만 딱 한 잔만 마셔야 한다고 한정하고 나니 깊은 고민에 빠진다. 와인 덕후만이 이런 쓸데 있는 고민을 할 테지. 지금 떠오르는 와인은 두 가지인데 개성이 다른 화이트 와인이다.


포도 품종에 따라 레드 또는 화이트 와인이 되는데 샤도네이와 쇼비뇽 블랑이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 품종이고 피노 누아와 까베르네 쇼비뇽이 레드 와인 품종이다. 다양한 포도 품종이 존재하며 맛도 제각각이다. 일반적으로 마트에서 파는 포도로는 와인을 만들지 않으며 비티스 비티훼라 (Vitis Vinifera, 포도 품종 학명)에서 비롯된 다양한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 화이트 와인의 원재료인 포도는 보통 연둣빛을 띤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청포도 느낌. 그러니 발효를 시켜도 붉은 빛깔을 띠지 않는다. 화이트 와인임에도 레드 와인에 사용되는 포도 품종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에는 포도 껍질을 제거하기 때문에 붉은 색소가 스며들 수 없다. 샴페인에 사용되는 피노 누아와 피노 뫼니에가 대표적인 레드 와인 포도 품종인데도 샴페인이 붉은색을 띠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신중하게 고른 화이트 와인은 샤도네이 (Chardonnay)로 만들어지며 비 오는 날이 아니어도 분명 맛있을 테다. 여하튼 화이트 와인은 비록 "화이트" 와인이라고 불리지만 흰색은 아니고 연하거나 진한 노란색을 띠며 자세히 보면 초록빛이 살짝 나기도 한다. 누군가는 화이트 와인이 레드 와인에 비해 단조롭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최소한 내가 선택한 화이트 와인은 단조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뱅상 댄서 (Vincent Dancer). 부르고뉴 와인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뱅상 댄서의 와인이 한 때 엄청난 인기를 누렸음을 알 것이다. 지금도 구할 수만 있다면 마셔보고 싶은 몇 안 되는 화이트 와인 중 하나다. 뱅상은 알자스 지역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공학을 전공한 뒤 아버지 권유로 부르고뉴 지역 내 가족이 소유한 빈야드에서 한 동안 보내기로 한다. 원래는 사촌들에게 임대를 해준 (샤샤뉴-몽라셰에 있는) 땅이었는데 결국 그는 정착하기로 한다. 매우 작은 규모였지만 그곳에서 만들어진 와인이 특별하다는 걸 사람들이 눈치채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오가닉 인증을 받은 와이너리가 많아지긴 했지만 샤샤뉴 지역에서 최초로 오가닉 인증을 받은 사람이 뱅상이라고 한다.


그가 생산하는 몇 가지 화이트 와인 중 시음할 기회가 있었던 화이트는 뱅상 댄서 샤샤뉴-몽라셰 프리미에 크뤼 떼뜨 뒤 끌로 (Vincent Dancer Chassagne-Montrachet 1er Cru Tete Du CLos 2015)다. 뱅상은 떼루아의 특색을 잘 살린 (그러니깐 땅과 기후적 특성을 잘 반영한) 와인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에게 뱅상 댄서는 꽤나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화이트 특유의 상큼함을 간직하면서도 꽃향이 나다가 고소한 향이 더해지는 와인이 갖추어야 할 것을 다 갖춘 느낌이랄까. 그래서 심심하기는커녕 몰입을 이끌어내는 매력덩어리다. 한 잔만 마셔도 그 진가를 알 수 있으니 이 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겠다 싶다.


도멘 드 몽띠유 (Domaine de Montille)의 화이트는 뱅상 댄서보다는 덜 강렬했지만 은은한 매력으로 지금 이 순간이 지속되기를 바라게끔 했다. 볼네이 (Volnay) 지역을 거점으로 둔 와이너리는 레드와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내가 시음한 도멘 드 몽띠유 퓔리니-몽라셰 프리미에 크뤼 르 까이유레 (Domaine de Montille, Puligny-Montrachet 1er Cru Le Cailleret 2015)는 미네랄리티 (minerality)가 잘 느껴지면서도 깔끔하고 단정했다. 미네랄 (mineral) 향이나 맛을 표현하기 쉽지 않지만 소금기가 느껴지거나 비올 때의 꿉꿉함 또는 예전에 쓰던 칠판에서 나는 분필 향, 부싯돌 느낌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프리미에 크뤼 밭인 Le Cailleret는 그랑 크뤼 밭인 Montrachet와 Chevalier-Montrachet와 이웃하고 있기에 그랑 프리미에 크뤼 밭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제일 좋은 등급인 그랑 크뤼 밭과 견줄 수 있는 밭에서 바이오다이내믹 기법을 바탕으로 수확한 포도의 퀄리티는 좋을 수밖에 없다. 클래식한 부르고뉴 화이트라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잔잔하게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는 화이트 와인이다.


비 오는 날 텐션을 올리려면 뱅상 댄서를 빗방울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멍 때리려면 몽띠유를...



커버 사진은 호텔 델루나 전시회에서 찍은 건데 순전히 테이블에 놓인 와인 잔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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