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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uwinetasting Feb 25. 2021

변한 건 와인일까 내 입맛일까

mandu의 와인 이야기 & 테이스팅 노트

와인을 마시다 보면 마음이 더 가는 와인이 있다. 좋은 기억이 남은 와인은 다시 마셔보기도 전에 마음속으로 후한 점수를 주기도 하고 기대를 비껴가면 아직 시음 적기가 아닌 게 아닐까 하며 나름의 원인을 찾아보기도 한다. 반대로 첫인상이 별로였던 와인은 기대가 낮아서 그런지 다시 마셔본다 해도 180도 다른 평가가 나오지는 않을 거라는 편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물론 내 예상을 빗나가는 경험을 종종 한다. 그래서 와인이 매력 덩어리인 거지만.


끌로 뒤 발 (Clos du Val) 까베르네 쇼비뇽은 파리의 심판에서 이름을 알린 와인이다. 와인에 담긴 스토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눈길이 가는 와인이다. 병을 휘감은 갈색 레이블이 더 멋져 보이는 건 1등이라는 타이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와인을 처음 접했을 때는 강렬했지만 어딘지 균형이 잡히지 않은 모습에 조금 당황했다. 여행을 떠나 설레는 감정으로 오픈한 와인은 맛있어야만 했다. 다소 감성적인 면이 있는 내가 여행지에서 마신 와인에 대한 기억이 평이했던 것은 본래 기대치가 높아서였을 수도 있고 시음 적기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고 같이 먹은 음식과 어울리지 않았거나 이동 중 와인이 흔들리며 안정된 상태가 아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3년을 훌쩍 넘긴 어느 밤, 다시 끌로 뒤 발을 열었다. 3년 전에 마셨던 거와 같은 빈티지. 와인 병에서 잔으로 흘러 들어가는 그 순간 마주하게 된 와인은 달라져 있었다. 사람의 기억은 역시 믿을 만한 게 못한 건지 향도 맛도 내 기억 속의 와인이 아니었다. 변한 건 와인일까 내 입맛일까. 눈에 띄게 달라진 건 부드럽게 녹아든 과실 향이었고 (햇빛 쨍한 곳에서 태어난 와인은 어쩐지 내 입맛에는 달달하다.) 어딘지 거슬렸던 산도도 지나치게 짱짱했던 타닌도 스월링으로 날리고자 했던 알코올도 잠잠해졌다. 뭐지? 이게 이렇게 맛있었나? 셀러에서 3년 넘게 잠들어 있으며 와인이 좋은 방향으로 변한 것일까. 감초, 민트, 모카 등의 향도 느껴지고 무엇보다도 목을 넘기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존재감만을 드러냈던 3년 전과는 달랐다. 혹시 내가 그동안 와인을 하도 마셔대서 웬만한 자극으로는 어림도 없기에 미각이 둔해져서 그런 걸까. 아니면 유독 그날 커디션이 좋아 와인이 맛있게 느껴진 건 아닐까. 내가 애정하는 샴페인과 부르고뉴 블랑을 두고도 끌로 뒤 발이 기억에 남았으니 말이다.


(왼쪽) 끌로 뒤 발 나파 밸리 까베르네 쇼비뇽 2014 (오른쪽) 샤를 뒤푸 뷜 드 꼼뜨와 #8 스틸벤 및 도멘 띠에리 에 파스칼 마트로 생 로망 부르고뉴 샤도네이 2018


와인을 최대한 많이 마셔봐야 와인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10년 전과 비교하면 나도 조금은 성장했지만) 여전히 알쏭달쏭한 게 와인이다. 와인 관련 자격증을 위한 이론 공부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도 하고 웨비나를 통해 배움은 계속되지만 (우리나라와의 시차 때문에 웨비나는 자꾸 새벽에 들어야 해서 조금 불편하다.) 어떤 와인 고수의 말처럼 와인 앞에서는 저절로 겸손해진다. 와인이 잘 숙성되어 변한 것이든 내 입맛이 변한 것이든 와인은 맛있었다. 사실 그러면 되는 거지. 그날의 분위기, 배경음악, 대화 등도 와인에 맛을 더했을 것이다. 




샤를 뒤푸 (Charles Dufour)의 넘버 시리즈 샴페인 중 하나인 스틸벤 (Stillleben)은 8번째 샴페인으로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올라 시음을 했다. 오가닉 샴페인다운 쿰쿰함으로 시작해 시간이 흐를수록 사과향도 느껴지고 미네랄리티도 느껴지는 게 좋았다. 피노 누아 (Pinot Noir), 샤도네이 (Chardonnay) 그리고 피노 블랑 (Pinot Blanc)이 블랜딩 샴페인으로 샤를 뒤푸는 피노 블랑을 사용하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7년에 수확한 포도와 2010~2016년 리저브 와인을 블랜딩했으며 데고르주망 (Disgorgement)은 2020년에 이루어졌다. 조금 더 기다려야겠다.


띠에리 에 파스칼 마트로 (Thierry et Pascale Matrot) 생 로망 (Saint-Romain) 부르고뉴 샤도네이. 뫼르소로 유명한 도멘으로 엔트리급 블랑이다. 단조롭기는 해도 산뜻한 산도와 미네랄리티가 느껴지는 괜찮은 샤도네이이다. 친구들과 함께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그런 부르고뉴 화이트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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