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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uwinetasting Oct 29. 2020

와인, 시간이 필요해요

mandu의 와인 이야기 & 테이스팅 노트

오랜만에 와인 시음회에 다녀왔다. QR 코드로 본인 인증하고 체온을 재고 들어갔는데 자리마다 투명 칸막이가 세워져 있고 시음용 와인 잔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와이너리 관계자들이 한국에 방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시음할 와인에 대한 설명은 화상으로 진행되었다. 웨비나 (Webinar) 형태로 와인 시음을 하는 건데 요즘 온라인으로 와인 강좌를 듣고 있기 때문에 익숙하긴 했으나 직접 궁금한 걸 물어보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살짝 아쉬웠다. 그럼에도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을 시음하는 순간은 항상 설렌다. 와이너리 철학, 떼루아, 와인 특징, 테이스팅 노트, 와인 메이킹 등에 관한 내용을 들으며 차례로 와인을 시음했다. 엔트리급 부르고뉴 샤도네이로 시작하여 그랑 크뤼 피노누아로 이어지는 테이스팅. 작은 와인 잔 8개 중 3개는 비어있고 5개는 채워져 있었다. 잔 속 와인은 서서히 열리는 중이었다. 2018 빈티지이기 때문에 확실히 시간이 더 필요했다. 



레 파셀레르 드 쏘 (Les Parecellaires de Saulx)와 도멘 드 라 꼬마렌 (Domaine de la Commaraine) 와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자는 100년 전통을 지닌 와인 하우스이고 후자는 뽀마르 (Pommard) 지역 모노폴을 생산하는 도멘이다. 레 파셀레르 드 쏘의 엔트리급 샤도네이를 시작으로 하나씩 시음한 결과 나는 지브리 샹베르땡 (Gevrey Chambertin)이 마음에 들었다. 분명 힘이 있으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피노누아 모습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아로마들도 빼꼼히 모습을 보이는 게 몇 년 후면 더 맛있겠구나 싶었다. 지브리 샹베르땡의 프리미에 크뤼급이 궁금해졌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와인 메이커 노트를 읽어보고 나중에 마실 기회가 있겠지 하며 저장을 해두었다 (Fontenay, La Perriere 및 Les Corbeaux). 하우스의 엔트리급 피노누아는 마르사네 (Marsannay) 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레 파셀레르 드 쏘의 꼬르동 (Corton) 그랑 크뤼는 10년 후에나 마셔야겠다고 생각했으며 아직 열리지 않아 짱짱한 모습으로만 기억된다. 그리고 모노폴 (Monopole)인 뽀마르 프리미에 크뤼 "끌로 드 라 꼬마렌 (Clos de la Commaraine)"은 도멘 드 라 꼬마렌에서만 나오는 피노누아다. 다시 말해, 다른 하우스와 밭을 셰어 하지 않고 독점적으로 한 와이너리에서 공급되는 와인이기에 때문에 그 떼루아를 담은 와인은 단 하나만 존재하는 거다. 그것이 꼭 품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테지만 모노폴이 주는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즐겁다.


레이블이 같은 와인이라고 해도 빈티지마다 느낌은 다를 수 있다. 특별히 어떤 해가 다른 해보다 더 좋은 경우도 있고 매해 비슷한 품질의 와인이 생산되는 경우도 있다. 빈티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도멘이나 와인 메이커가 만든 와인인지도 중요하다. 최악의 빈티지 (일명 망빈)라고 평가받는 해에도 다시 말해 열악한 기후 조건에서도 수준 높은 와인을 빚어내는 도멘이나 와인 메이커는 존재한다. 그래서 와인은 천. 지. 인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하나보다. 


도멘 앙또넹 귀용 샹볼 뮈지니 모노폴 끌로 뒤 빌라쥬 (왼쪽) 2012 빈티지 (오른쪽) 2017 빈티지


최근에 시음한 2012 그리고 2017 빈티지 샹볼 뮈지니 (Chambolle-Musigny)가 떠오른다. 도멘 앙또넹 귀용 (Domaine Antonin Guyon)이 생산하는 샹볼 뮈지니 모노폴 끌로 뒤 빌라주 (Chambolle-Musigny Monopole Clos du Village). 위에서 시음한 뽀마르와 동일하게 모노폴이니 앙또넹 귀용에서만 나오는 와인이다. 2017 빈티지를 먼저 시음했었는데 타닌이 살아 있어서 힘이 느껴지고 베리류 향과 꽃향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밸런스가 좋다는 느낌이 들었고 잔 브리딩을 하면서 시간이 흐르자 아로마들이 한껏 뽐내기 시작했다. 몇 년 후에 마시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약 일주일 간의 시간 차는 있다.) 2012 빈티지는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향은 2017년 못지않게 풍성했지만 입 속에서는 몽글몽글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여운이 약해지고 힘이 빠져버렸다. 그렇지만 그게 또 싫지가 않았다. 힘을 뺀 와인이 주는 느슨함과 편안함이 은근한 위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와인이 견딘 세월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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