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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uwinetasting Jan 31. 2021

드링크 리스트

mandu의 와인 이야기 & 테이스팅 노트

좋아하는 혹은 자주 듣는 음악으로 플레이 리스트를 만드는 거처럼 좋아하는 와인으로 드링크 리스트를 하나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만들어보려고 몇 가지만 꼽아보려고 하니 이게 쉽지 않은 일인 거 같아서 욕심을 버리고 현재 마음이 가는 와인으로 구성해보기로 했다. <와인취향> 매거진이나 브런치 북에는 대놓고 내 취향이 드러나 있기에 드링크 리스트가 대략 어떤 와인으로 구성될지는 예측 가능하건만 코로나 19 방콕 즐기기 수십 가지(?) 일 중 하나로는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드링크 리스트의 제목은 <우울할 때 업 시켜줄 와인 - 화이트 및 샴페인 편>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게 와인 취향이고 내 입맛이 누군가의 입맛과 같을 리는 없겠지만 그저 그동안 마신 와인을 목록화하는 이 일이 80여 페이지가 넘는 문서를 번역하는 일보다는 조금 더 재미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벌렁거린다. 


먼저, 내추럴 와인 (Natural Wine)인 도멘 레 그란데 비뉴 앙주 바렌느 뽀아리에 (Domaine Les Grandes Vignes Anjou Varenne Poirier)다. 핫템인 프랑스 루아르 (Loire) 지역의 화이트 와인으로 슈냉 블랑 (Chenine Blanc) 품종으로 만들어진다. 스스로 놀라운 것은 내추럴 와인을 꼽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와인 중 내추럴 와인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다. 보관 상태에 따라 다른 와인도 마찬가지겠지만 보틀 베리에이션 (bottle variation)이 있다는 점, 다시 말해 동일한 와인이라도 병마다 맛, 향 등이 달라진다는 점 그리고 마구간 냄새가 나는 일부 내추럴 와인에 대한 편견이 나의 선호도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당당히(?) 내추럴 와인을 좋아한다고 말하다니 취향이라는 거도 시간이 지나면서 혹은 경험을 하면서 달라지는 것인가 보다. 와인 병에 붙은 유기농 인증 레이블은 마치 유기농 사과나 딸기처럼 포도나무를 재배하고 수확하는 단계에서 살충제, 화학 비료 등을 사용하지 않고 천연 비료를 사용한다는 의미이며 그만큼 사람 손이 많이 간다는 뜻이다. 친환경, 그린, 지속 가능한 재배 등 토양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건 후손들에게도 미래 빈야드에도 긍정적인 방향이 아닐까. 물론 오가닉 포도 재배가 와인의 맛을 반드시 보장한다고 볼 수는 없다. 내추럴 와인을 생산한다고 전면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와이너리도 이처럼 오가닉 농법을 적용해 포도를 재배하는 추세로 보인다. 그리고 내추럴 와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이산화황. 와인 보존제 역할을 하면서 산화를 방지하고 필요 이상의 박테리아 번식을 막아주는 이산화황이 실제로 와인의 맛과 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와인 양조가들은 필요한 만큼 이산화황을 와인 메이킹 공정 중에 첨가하기도 하고 전혀 넣지 않기도 하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와인을 만들 뿐이다. 여하튼 슈냉 블랑으로 만들어진 이 화이트 와인은 필터링도 파이닝도 거치지 않은 화이트 와인으로 소량 생산되고 있다. 기분 좋은 산도에 라임, 청사과 등 싱그러움이 드러나는 화이트로 우울한 기분 타파에 제격이다.


두 번째는 바스 필립 프리미엄 샤도네이 (Bass Philip Premium Chardonnay)다. 호주의 화이트 와인으로 쉬라즈 (Shiraz) 품종으로 유명한 와인 생산국에서 갑자기 샤도네이라니 생뚱맞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누가 만드느냐, 어떻게 만드느냐, 어떤 환경에서 만드느냐, 어떤 클론을 사용하느냐 등 수많은 요소들이 서로 뒤섞여 와인이 만들어지기에 '이 나라는 이 품종이지.'라고 특정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거 같다. 바스 필립은 1990년대 초반에 오가닉 농법을 도입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 바이오다이내믹 기법을 적용하는 등 최대한 자연에 맡기고 최소한의 개입으로 포도를 수확한다. 1979년에 Phillip Jones가 설립한 와이너리로 엔지니어 출신이었던 그는 과학적 접근법을 통해 엄격하게 포도의 품질을 관리해왔다. 그리하여 바스 필립은 프랑스 부르고뉴 피노누아와도 견줄 수 있는 피노누아를 호주에서 탄생시켰다. 그런 그가 만드는 화이트 와인은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다. 오크 터치가 느껴지면서 견과류의 고소한 내음과 각종 향신료가 조화를 이루는 복합미와 깊이를 두루 갖춘 와인이다. 비싼 값을 톡톡히 해내는 느낌.


세 번째 와인은 리슬링 (Riesling)으로 샴페인에 빠지기 전 제일 많이 마시던 품종이기도 하다. 리슬링의 좋은 점이라면 특별한 안주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과 가벼운 듯하면서도 각종 아로마가 밋밋하지 않게 들어차 있고 산뜻한 출발을 알리는 느낌을 준다. 알테 레벤 칼 뢰벨 리슬링 (Alte Reben Carl Loewen Riesling) (위의 맨 우측 사진 맨 왼쪽)은 독일 모젤 (Mosel) 지역의 리슬링으로 70년 된 포도나무에서 수확한다. 이곳 빈야드는 필록세라 (Phylloxera)의 피해를 입지 않았기에 원래 뿌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크발리테츠 바인 등급이라 하여 찾아보니 퀄리티 와인을 그렇게 부르는 거였다. 미국이나 호주 리슬링과는 달리 페트롤리움 냄새가 나지 않았고 (셀프 주유할 때 느껴지는 그 냄새) 좋은 꿀을 누가 한 방울 넣은 거처럼 기분 좋게 달았다가 산도가 치고 올라오면서 단맛을 살짝 눌러주니 그 조화가 대단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와인은 (예상하긴 했지만) 샴페인이다. 샴페인은 역시 2008 빈티지라고 혼자 외쳐본다. 대다수 샴페인 하우스에서 2008 빈티지 샴페인을 출시한 것으로 보아 (좋은 해에만 빈티지 샴페인을 출시한다) 분명 2008년은 특별한 해였다. 기후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혹독한 겨울로 수확 후 포도나무는 휴식기를 갖게 되었고 봄과 이른 여름은 따뜻하여 새싹이 돋아났으며 너무 서늘해서 어쩌지 하는 시점에 햇빛이 쏟아져 내려 9월에 기분 좋은 수확기를 맞이했다고 한다. 하늘의 도움으로 좋은 포도를 수확하게 되었으니 당도, 산도, 아로마, 깊이, 밸런스, 여운, 복합미 등에 있어서 빠지지 않는 샴페인들이 많이 등장했다. 샴페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건 정말 축복이고 그래서 떼땅져 꼼뜨 드 상파뉴 2008 (Taittinger Comtes de Champagnes 2008)을 선택했다. 블랑 드 블랑 샴페인으로 샤도네이 품종으로만 만들어진다. 저명한 와인 비평가의 점수가 꽤 높아 (제임스 써클링은 99점을 주었으니) 괜히 더 혹한 느낌도 있었지만 마셔보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분명 어린 샴페인으로 싱그러움이 지배적이기는 하나 최소 10년간 숙성을 마치고 나온 만큼 마냥 어린아이 느낌은 아니었다. 그 싱그러움으로 텐션이 업되는 느낌과 더불어 숙성되었을 때 마주하게 될 깊이와 여운이 기대되기에 한 모금으로 우울함이 가신다. 


그리고 마지막은 폴 바라 브뤼 그랑 밀레짐 2012 (Paul Bara Brut Grand Millesime 2012)다. 물론 폴 바라 샴페인 하우스도 2008 빈티지의 샴페인을 출시했으며 스페셜 클럽으로 등록된 베스트 빈티지 샴페인이다. (스페셜 클럽 (Special Club)은 1970년대에 설립된 샴페인 와인메이커 단체로 엄격한 품질 규정을 준수하며 올드 스쿨 스타일로 와인을 양조한다. 전문적인 포조 양조학자와 와인 메이커가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스페셜 클럽 샴페인을 선정한다.) 2012 빈티지는 스페셜 클럽 샴페인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고소한 토스트와 견과류 향이 나는 샴페인이다. 게다가 SNS를 통해 눈여겨보던 폴 바라 샴페인을 여러 종류 시음하면서 미세한 버블과 부드러운 크림 같은 질감이 마음에 들었다. 고소하고 폭신하여 내 마음을 살살 달래주는 이 샴페인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주 하나씩 마셔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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