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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uwinetasting Apr 04. 2020

나만의 위로주, 쇼비뇽 블랑과 알리고떼

mandu의 와인 이야기 & 테이스팅 노트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맘껏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 19 사태는 우리 삶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먼저, 비자발적 갇힘 상태로 인해 몸과 마음이 답답하다. 최소한의 동선으로 움직여야 하기에 집과 직장 또는 재택근무의 연속이다.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집 앞 공원에 나가면 벌써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구경하려고 모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물론 마스크를 끼고.


국가적 위기 상황, 재난기금, 경제적 타격, 폐업한 상점들, 수출입 지연,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까지.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일상에 나아가 전 세계에 침투해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영국에 사는 친구와 연락이 닿아 안부를 물었다. 마스크와 손 소독제 가격은 터무니없었고 화장지가 동이 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시간강사를 하는 그는 불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일자리가 있음에 감사하다고 했다.


"Stay safe."


친구의 마지막 한마디에 힘을 내보자 생각했다. 물론,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을 단숨에 날려버릴 수는 없겠지만 그 마음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루를 살아내면서도 덜 지칠 수 있는 그런 방법 말이다. 불안한 나날 속에서 필요한 건 위로다. 직접 내린 커피 한 잔의 여유가 나를 위로해주는 토닥임일 수 있다. 소울메이트와 1시간 넘게 통화를 하면서 지친 마음을 들어주는 거 또한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일 수 있다.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꼬옥 껴안고 실컷 우는 거도 지친 영혼을 달래는 위로다. 마스크로 무장한 채 새벽 공기를 마시며 가볍게 뛰거나 요가 동영상을 켜놓고 동작을 하나씩 따라 해 보는 거도 축 늘어진 육체에 대한 위로다.


어떤 방식이든 좋다.

답답함과 불안감이라는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말이다. 한 가지 방법이든 여러 가지 방법의 조합이든 상관없다.


나를 위로하는 쇼비뇽 블랑과 알리고떼를 마신다.


화이트 와인의 대표적인 품종인 샤도네이 (chardonnay) 보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쇼비뇽 블랑 (sauvignon blanc) 그리고 과거에 천대받았던 알리고떼 (aligote)를 선택한 이유는 가심비가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 와인에 지불한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은 기대한 바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일 때가 종종 있다. 쇼비뇽 블랑 품종의 화이트 와인은 싱그러운 봄을 연상시킨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하는 요즘 봄을 간접적으로 느끼기에 제격이다. 산뜻한 시트러스 (citrus) 계열의 아로마 (aroma)가 주는 톡 쏘는 상큼함에 어디선가 갓 벤 잔디 내음이 나는 듯 한 쇼비뇽 블랑. 프랑스 루아르 밸리 (Loire Valley)와 일부 보르도 (Bordeaux) 지역에서 시작된 쇼비뇽 블랑은 현재 호주, 남아프리카, 캘리포니아, 뉴질랜드 등 다양한 국가에서 출시된다. 특히, 뉴질랜드 말보로 (Marlborough) 지역의 쇼비뇽 블랑은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왼쪽부터) 도그포인트 쇼비뇽 블랑, 클라우디 베이 쇼비뇽 블랑 그리고 소호 쇼비뇽 블랑


한 때, 클라우디 베이 (Cloudy Bay) 쇼비뇽 블랑이 화이트 중 최고인 줄 알았다. 호텔이나 레스토랑 와인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단골 와인이기도 했고 잡지나 SNS 등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니 막연히 최고겠지 했다. (여전히 클라우디 베이를 좋아한다.) 시간이 흘러 테이스팅한 와인이 내 입과 간을 장악하자 대체할 수 있는 쇼비뇽 블랑이 꽤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근래에는 잘 보지 못했지만 좋았던 도그 포인트 (Dog Point)와 가성비까지 좋은 소호 (Soho)가 좋은 예다.


엠마뉴엘 후제 알리고떼, 프랑수와 미쿨스키 알리고떼 그리고 알렉스 감발 알리고떼


알리고떼는 프랑스 부르고뉴 (Bourgogne) 지역의 화이트 품종으로 대체적으로 샤도네이 품종보다 저렴한 편이다. 사과, 복숭아, 꽃 그리고 신선한 허브류의 느낌이 물씬 나는 품종이 알리고떼다. 기온이 올라 완연한 봄이라지만 막상 야외활동은 자제하라고 하니 속 터질 노릇이다. 한 여름에 맥주 한 캔이 더위를 식혀주듯 차갑게 칠링한 알리고떼 한 잔은 답답한 속을 달래줄 수 있다.


와인 한 병을 4~5캔에 만원 남짓하는 맥주와 비교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750ml 와인 1병을 여러 차례 나눠 마실 수 있다면? 쇼비뇽 블랑이나 알리고떼의 장점이라면 한두 잔 마시고 코르크를 막아 냉장 보관해서 2~3일 정도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코르크를 여는 순간, 산화가 시작되어 와인이 변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쇼비뇽 블랑과 알리고떼의 상큼함은 꽤 오래간다. 답답함이 상쾌함으로 바뀌는 마법 같은 일이 정말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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