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du의 와인 이야기 & 테이스팅 노트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맘껏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 19 사태는 우리 삶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먼저, 비자발적 갇힘 상태로 인해 몸과 마음이 답답하다. 최소한의 동선으로 움직여야 하기에 집과 직장 또는 재택근무의 연속이다.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집 앞 공원에 나가면 벌써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구경하려고 모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물론 마스크를 끼고.
국가적 위기 상황, 재난기금, 경제적 타격, 폐업한 상점들, 수출입 지연,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까지.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일상에 나아가 전 세계에 침투해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영국에 사는 친구와 연락이 닿아 안부를 물었다. 마스크와 손 소독제 가격은 터무니없었고 화장지가 동이 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시간강사를 하는 그는 불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일자리가 있음에 감사하다고 했다.
"Stay safe."
친구의 마지막 한마디에 힘을 내보자 생각했다. 물론,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을 단숨에 날려버릴 수는 없겠지만 그 마음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루를 살아내면서도 덜 지칠 수 있는 그런 방법 말이다. 불안한 나날 속에서 필요한 건 위로다. 직접 내린 커피 한 잔의 여유가 나를 위로해주는 토닥임일 수 있다. 소울메이트와 1시간 넘게 통화를 하면서 지친 마음을 들어주는 거 또한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일 수 있다.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꼬옥 껴안고 실컷 우는 거도 지친 영혼을 달래는 위로다. 마스크로 무장한 채 새벽 공기를 마시며 가볍게 뛰거나 요가 동영상을 켜놓고 동작을 하나씩 따라 해 보는 거도 축 늘어진 육체에 대한 위로다.
어떤 방식이든 좋다.
답답함과 불안감이라는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말이다. 한 가지 방법이든 여러 가지 방법의 조합이든 상관없다.
나를 위로하는 쇼비뇽 블랑과 알리고떼를 마신다.
화이트 와인의 대표적인 품종인 샤도네이 (chardonnay) 보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쇼비뇽 블랑 (sauvignon blanc) 그리고 과거에 천대받았던 알리고떼 (aligote)를 선택한 이유는 가심비가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 와인에 지불한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은 기대한 바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일 때가 종종 있다. 쇼비뇽 블랑 품종의 화이트 와인은 싱그러운 봄을 연상시킨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하는 요즘 봄을 간접적으로 느끼기에 제격이다. 산뜻한 시트러스 (citrus) 계열의 아로마 (aroma)가 주는 톡 쏘는 상큼함에 어디선가 갓 벤 잔디 내음이 나는 듯 한 쇼비뇽 블랑. 프랑스 루아르 밸리 (Loire Valley)와 일부 보르도 (Bordeaux) 지역에서 시작된 쇼비뇽 블랑은 현재 호주, 남아프리카, 캘리포니아, 뉴질랜드 등 다양한 국가에서 출시된다. 특히, 뉴질랜드 말보로 (Marlborough) 지역의 쇼비뇽 블랑은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한 때, 클라우디 베이 (Cloudy Bay) 쇼비뇽 블랑이 화이트 중 최고인 줄 알았다. 호텔이나 레스토랑 와인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단골 와인이기도 했고 잡지나 SNS 등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니 막연히 최고겠지 했다. (여전히 클라우디 베이를 좋아한다.) 시간이 흘러 테이스팅한 와인이 내 입과 간을 장악하자 대체할 수 있는 쇼비뇽 블랑이 꽤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근래에는 잘 보지 못했지만 좋았던 도그 포인트 (Dog Point)와 가성비까지 좋은 소호 (Soho)가 좋은 예다.
알리고떼는 프랑스 부르고뉴 (Bourgogne) 지역의 화이트 품종으로 대체적으로 샤도네이 품종보다 저렴한 편이다. 사과, 복숭아, 꽃 그리고 신선한 허브류의 느낌이 물씬 나는 품종이 알리고떼다. 기온이 올라 완연한 봄이라지만 막상 야외활동은 자제하라고 하니 속 터질 노릇이다. 한 여름에 맥주 한 캔이 더위를 식혀주듯 차갑게 칠링한 알리고떼 한 잔은 답답한 속을 달래줄 수 있다.
와인 한 병을 4~5캔에 만원 남짓하는 맥주와 비교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750ml 와인 1병을 여러 차례 나눠 마실 수 있다면? 쇼비뇽 블랑이나 알리고떼의 장점이라면 한두 잔 마시고 코르크를 막아 냉장 보관해서 2~3일 정도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코르크를 여는 순간, 산화가 시작되어 와인이 변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쇼비뇽 블랑과 알리고떼의 상큼함은 꽤 오래간다. 답답함이 상쾌함으로 바뀌는 마법 같은 일이 정말 일어난다.
브런치 글쓰기 또한 나에게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