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du의 와인 이야기 및 테이스팅 노트
삭막한 무채색 풍경이 사라지고, 어느덧 파릇파릇함과 푸릇푸릇함으로 가득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해가 잘 드는 곳에는 꽃피울 준비가 한창인 나무들이 헤죽거리고, 그늘진 곳은 조금 느긋하게 겨울 색을 지워내고 있다. 봄 빛깔에 마음이 들뜨는 게 진짜 봄인가 싶다. 미세 먼지와 함께 오는 봄이라 아쉽기는 하지만, 가벼워진 옷차림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는다.
곧 전국 곳곳에서는 봄을 알리는 축제가 열릴 것이다. 이 세상 딸기 요리는 다 모여 있는 딸기 뷔페에도 가야 하고 매화꽃, 유채꽃, 벚꽃 등이 흐드러지게 펼쳐지는 거리도 걷게 될 것이다. 꽃가루 알레르기에 코를 훌쩍거리고 가려운 얼굴을 긁적이게 될 것이 뻔하지만, 봄이니까!
눈으로만 봄을 반기지 말고 이제 코와 입으로도 봄을 느껴보자.
와인에서 느껴지는 아로마(Aroma)는 크게 포도 자체에서 느껴지는 과일, 허브나 꽃 향인 1차 아로마, 포도 발효 그리고 와인 양조 중 발생하는 바닐라, 향신료, 커피 등 2차 아로마 그리고 와인이 숙성되면서 느껴지는 가죽, 시가, 버섯 등 3차 아로마 혹은 부케(Bouquet)로 이뤄진다. 그중 봄을 대표하는 꽃(floral) 향이 가득한 와인으로 봄을 맞이해 보자.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 목련(Magnolia). 4월이면 본격적으로 목련을 볼 수 있는데, 머스캣(Muscat) 또는 이탈리아에서 모스카토(Moscato)로 불리는 화이트 품종에서 목련을 느낄 수 있다.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로 구매할 수 있는 모스카토 다스티(Moscato d’Asti, 아스티 지역에서 만든 모스카토)에서 봄을 살짝 맛볼 수 있으니 빨리 지는 목련이 조금 서글프다면 모스카토 한 잔으로 달래 보는 것은 어떨까. 보통 달콤 새콤하고 과일 향도 함께 올라오니 봄을 반기는 와인으로 제격이다.
얼마 전 단골 참치 집에 와인 한 병을 들고 방문했는데, 프랑스 론(Rhone) 지역의 비오니에(Viognier)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었다. 잔에 따르자 퍼지는 꽃 향에 코를 잔에 들이밀고 킁킁대다가 한 모금 마시니 입안 가득 꽃! 그러고 보니 와인 레이블에 꽃이 그려져 있었다. 벚꽃 쏟아지는 나무 아래 피크닉 매트 하나 깔아 놓고 마시는 와인이 이런 맛이 아닐까 상상해 봤는데, 비오니에는 이국적인 맛과 향을 내는 매력적인 품종이다. 꽃을 비롯해 복숭아, 살구, 열대과일 등의 아로마로 경쾌함이 더해진다.
5월이 되면 장미 축제로 떠들썩할 텐데, 이때 떠오르는 포도 품종은 프랑스 피노 누아(Pinot Noir)와 이탈리아 산지오베제(Sangiovese). 꽃 향이 계속해서 올라오지는 않아도 산도와 함께 느껴지는 향기로운 내음은 퍼퓸(perfume)까지는 아니어도 오 드 퍼퓸(eae du perfume)이나 오 드 뚜왈렛(eau de toilette) 정도는 아닐까 싶다. 장미는 와인에서 느껴지는 단골 아로마로 비교적 알아채기가 쉬울 테니 사랑의 상징 장미를 코와 입으로 만끽하기를!
프랑스 프로방스(Provence)의 향기, 라벤더(Lavender). 친구가 내밀었던 사진에 펼쳐진 풍경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라벤더 축제가 열리는 게 신기해 찾아봤었는데, 올해도 열리지 않을까 싶다. 스트레스와 불면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룸 스프레이나 오일 형태로 사용하고 있어 라벤더 향은 익숙한 편이다. 이런 라벤더, 그르나슈(Grenache) 품종으로 만든 와인에서 느껴볼 수 있다. 시라(Syrah 또는 Shiraz) 및 무르베드르(Mourvedre) 품종과 블렌딩 하는 일명 GSM 와인은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만드는데, 특히 영한 와인에서 더 잘 느껴진다. 내가 작성한 테이스팅 노트를 찾아보니 호주 GSM에서 라벤더와 로즈메리 아로마가 난다고 기록했더라.
마지막으로 하나 더 소개하자면, 아이리스(Iris) 머금은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소비뇽 블랑의 청량감 있는 산도, 새콤한 레몬과 갓 벤 풀 내음으로 ‘봄인가?’라는 생각이 꽃 향이 더해지면서 ‘봄이구나!’로 바뀐다. 은은하게 올라오는 꽃 향이 매력적인 화이트 와인으로 지금 마시기에 좋은 계절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와인에서 꽃 향이 반드시 나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와인이란 복합적인 요소가 절묘하게 뒤섞이며 탄생하는 산물이기에 빈티지, 시음 시기, 양조 방식, 양조가, 기후, 토양, 시음하는 사람의 컨디션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래도 와인 마실 때 몇 가지만 팁만 알아 두면 더 맛있게 마실 수 있다. 너무 차갑게 마시면 아로마를 온전히 느낄 수 없고, 너무 빨리 마시면 와인이 변화하는 모습을 즐길 수 없고, 너무 많이 마시면 코와 입이 마비되니,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올라탄 기분으로 즐기면 좋겠다.
*<마시자 매거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텀블벅에서 진행했던 전자책 [와인 좀 마셔볼까]
와인 취향 찾기 프로젝트가 펀딩에 성공해서 후원해 주신 분들께 전자책을 보내드렸습니다! 조금은 뿌듯하네요. 제 글이 와인을 좋아하는 분들, 좋아지고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면 너무 좋을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