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취향
와인을 마시다 보면 와인 자체가 주는 감동을 넘어 '이렇게 맛있는 와인은 누가 만든 거지?'라는 순수한 호기심이 든다. 복잡한 와인 양조 과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잠시 접어두고 와인을 만든 사람, 그 천재는 누구인지 찾아보기로 한다.
장 뤽 뛰느방(Jean Luc Thenuvin). 그가 만든 와인을 처음 마셔본 게 한 10년 전인가. 불량한 자세로 서 있는 양 한 마리가 눈길을 끌어 집어든 와인 한 병으로 (심지어 와인 이름도 'Bad Boy'라 작명 센스가 돋보인다.) 시작해 그가 만드는 나의 최애 중 하나인 샤또 발란드로(Chateau Valandraud)까지. 프랑스 부르고뉴와 상파뉴 지역 와인을 조금 더 선호하는 내가 보르도를 좋아하게 만든 장본인. 그를 실제로 본 것은 제임스 써클링이 주최하는 유명 테이스팅 이벤트였지만 그에 대한 나의 관심은 그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가라지 와인(Garage Wine)을 본격적으로 널리 알린 인물이며 천재이자 괴짜 와인메이커로도 알려져 있다. 가라지 와인은 1990년대에 처음 등장했는데 소량 생산되는 혁신적인 와인을 가리키며 엄격한 품질 관리를 통해 선별한 잘 익은 포도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숙성을 위해 새 오크통 사용, 과감하게 필터링을 최소화하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한 와인이다. 그가 만든 와인 이전에도 가라지 와인이라 불리는 와인이 있었지만 대부분 이미 자리를 잡은 와이너리들이 조용히 만들고 있던 와인으로 Chateau Le Pin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가라지(차고)에서 와인을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Decanter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차고가 아니라 빌린 chai(쉐, 포도 저장 창고)을 사용했다고 한다.) 차고만큼 작은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사용해 와인을 만들었다. 그는 보르도 생떼밀리옹(Saint-Emillion) 지역 아주 작은 포도밭에서 기적을 만든 인물이다. 와인 샵을 열어 와인을 팔면서 무역상 역할을 하다가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와인을 만들었는데 기가 막힌 양조기술 덕분에 질투와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그의 아내도 물론 큰 역할을 했다.
장 뤽 뛰느방은 재치와 상상력을 가진 인물로 알제리에서 태어나 은행업에 종사하던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와인에 대한 그의 열정은 차고 넘쳤지만 전통 주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물러서지 않고 숙성이 가능한 집중력 높은 와인이지만 기존의 보르도 와인처럼 15-20년씩 기다려야 마실 수 있는 와인이 아니라 10년 이내에 마실 수 있는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 결과는?
그는 포도밭을 물려받았거나 보르도에서 성장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그의 행보에 우려에 목소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트렌드를 읽는 탁월한 안목에 성실함과 열정을 갖춘 덕분에 샤또 발란드로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생떼밀리옹 그랑 크뤼 클라쎄 1등급을 받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2012년부터 당당하게 그 이름을 올릴 수 있었고 10년마다 등급 조정이 이루어지는데 여전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12 빈티지부터 와인 레이블도 변경되었다.
샤또 발란드로 2011 (JS93)
메를로(Merlot)를 주 품종으로 하며 까베르네 프랑과 까베르네 소비뇽을 블랜딩하고 새로운 오크통에서 100% 숙성했다. 향이 너무 좋아서 황홀했던... 체리, 커피콩 아로마에 목구멍으로 술술 와인이 들어가더라. 잘 익은 와인이란 게 이런 맛이지. 다 마시고도 와인 잔에 코 박고 있었던 경험. (물론 빈티지 차트를 참고하면 2010만큼 좋을 수 없겠지만 만족스러운 시음이었다!)
그는 와인메이커, 네고시앙이자 컨설턴트로 와인 좀 안다는 사람(?)은 모를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장 뤽 뛰느방은 빅뱅의 탑과 함께 티'스팟이라는 와인도 만들었는데 (아직 마셔보지는 못했지만) 70대인 그의 도전은 끝이 없다.